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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Mar 15. 2024

그럼 내가 급식 싸 올까?

아서라 아서!

2024. 3. 14.

< 사진 임자 = 글임자 >


"오늘도 너희는 맛있는 급식 먹네. 엄마도 같이 가면  안 될까?"

아침부터 아이들에게 한다는 소리가, 엄마라는 사람이 한다는 소리가 하나마나한 소리였다.

"너희 엄마는 또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그런대?"

아침부터 아이들에게 한다는 소리가, 아빠라는 사람이 한다는 소리가 아내를 타박하는 소리였다.

"엄마, 그럼 내가 급식 싸 올까? 내가 싸 올게."

아침부터 엄마에게 한다는 소리가, 아들이라는 녀석이 한다는 소리가 엄마에게 효도하는 소리였다.

"엄마는 걸핏하면 그 소리 하더라?"

아침부터 한다는 소리가, 딸이 돼서 한다는 소리가 엄마의 간헐적 급식 욕심을 지적하는 소리였다.

이렇게나 평화로운 아침이라니.


"너희 학교는 정말 맛있는 급식 많이 나오더라. 오늘도 맛있었어?"

"응. 진짜 맛있었어."

"너흰 좋겠다. 날마다 맛있는 급식 먹고. 엄마도 가면 안돼?"

"안돼. 대신 내가 싸 올게. 엄마 반찬통 줘봐."

"아니야. 그냥 해 본 소리야."

"진짜로 싸 올 수 있어. 반찬통만 챙겨 가면 되잖아."

"장난이야, 장난."

"엄마 우리 반에 진짜로 급식 싸 가는 친구 있어."

"뭐? 정말?"

"응. 진짜야."

"급식을 진짜 싸 간다고? 집에?"

"그렇다니까. 자기 엄마가 싸오랬대."

"엄마가?"

"응."

"뭐 하러 싸 오라고 했을까? 진짜 그랬을까?"

"나도 몰라. 아무튼 내 친구는 몇 번 싸 갔어."

"너무 맛있어서 그 친구가 나중에 먹으려고 그런 거 아니고?"

"아니야. 엄마가 싸 오라고 해서 싸 간다고 했어."

"그래? 그게 가능해?"

"몰라. 싸 가던데?"

"그랬구나. 엄만 괜찮아. 안 싸와도 돼. 너희들이 맛있게 먹었으면 됐지."

딸이 언제가 내가 하는 실없는 소리에 세상 진지하게 '반찬통을 챙겨 달라'고 요구한 적이 있었다. 반 친구 중에 누구도 자주 반찬통을 챙겨 와서 싸간다면서 말이다. 듣고도 믿기 힘든 일이었다. 도대체 뭐 하러 싸 오라고 했을까? 뭔가 사정이 있겠지? 그 사정이 뭘까? 과연 그 친구는 어떤 메뉴를 싸 갔을까? 나랑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에 생각할수록 궁금했다.

내가 장난으로 한 말을 아이들이 곧이곧대로 듣고 만에 하나 급식을 싸 오는 비극을 막기 위해 나는 한참 동안 내가 얼마나 쓸데없는 소리를 주책맞게 하면서 장난을 쳤는지 해명을 해야 했다.

그냥 아이들이 점심 맛있게 잘 먹고 학교 잘 다니면 됐지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그러면서도 가끔, 아주 가끔, 평소 입맛이 없는 나도 급 입맛이 도는 내가 좋아하는 메뉴가 나올 때는 잠그고 잠그는 그 투명한 손바닥만 한 반찬통 하나를 가방에 넣어주고도 싶었다. 물론 그 양반이 안보는 자리에서 감쪽같이 말이다.

차갑게 식지 말라고 보냉가방이라도 원 플러스 원으로 살포시 얹어 주고 싶었다, 주책맞게도.

이 사실을 우리 집 어떤 양반이 알면 또 한소리 하겠지? 지긋지긋한 훈화말씀에서 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냥 생각만 해봤다는 거다.

생각은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만큼 학교 급식이 괜찮다는 거다.

이렇게나 이유는 단순하다.


자고로 남의 떡이 커 보이고, 남의 점심이 맛나 보인다고, 학교도 안 다니고 직장도 안 다니는 나는 아이들 학교 급식까지 탐낼 때가 다 있다. 가끔 그 양반의 점심 메뉴도 한 번씩 전수조사 하곤 한다.

먹는 일, 먹는 것도 내겐 일이다.

그런 내가 한 오백 년 만에 입맛이 돈다는데, 아이들도 기꺼이 협조하겠다는데, 결정적으로 외부인은 출입금지다, 아쉽게도.

아니다, 아이들 급식까지 탐내는 건 아니 될 말이다. 도시락 안 싸는 것만도 어디냐.

매일 학교에서 잘 차려주는 점심에 나는 늘 감사한다.

오늘도 아이들이 일용할 양식을 준비해 주시는 모든 고마운 분들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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