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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Mar 18. 2024

역사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주의 요망

2024. 3. 16.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이게 뭐야? 설마 사탕이야?"

백 만년 만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그 '단 덩어리'를 눈으로 직접 보고도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딸이 물었다.

설마 사탕이야?=엄마가 이것을 돈까지 주고 절대 샀을 리가 없을 것이다.=이건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다.=그렇지 않으면 엄마의 심경에 무슨 중대한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추측된다.=이게 웬 횡재냐.

평소에 과자 구경도 안 하고 사는 것도 아니면서, 종종 어떤 반사적 이익도 잘 누리고 살면서 호들갑스럽기는.


물론 내가 사탕을 사는 일은 거의 없었다.

과자도 그리 자주 사는 편은 아니다.

그런 내가 한 줌씩이나 되는 사탕의 탈을 쓴 그것을 가져왔을 때 딸과 아들은 환호하면서도 믿을 수 없어하면서도 의심을 강력하게 했다, 나를.

"엄마, 이거 어디서 났어?(=웬 사탕?) 이거 진짜 사탕이야?(=웬 사탕?) 사탕 맞네.(=웬 사탕?) 엄마가 이런 걸 왜 가져왔어?(=웬 사탕?)"

그러니까 딸의 질문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웬 사탕?'이다.

"엄마가 오늘 외할아버지 일 도와주고 왔잖아. 풋마늘 중에서 너무 가늘고 작은 건 상품성이 없어서 못 팔아. 버리긴 너무 아깝고 반찬 해 먹으려고 좀 챙겨 왔거든. 근데 엘리베이터에서 어떤 할머니가 엄청 관심을 보이시더라고. 엄마가 들고 있는 검정 봉지를 유심히 보시면서 자꾸 쪽파냐고 묻는 거야. 그래서 엄마가 '좀 드릴까요? 풋마늘이에요. 이랬더니 좋아하시더라. 어차피 다 못 먹으면 버리게 되는 건데, 그냥 버려질 수도 있는 걸 엄마가 아까워서 가져온 거잖아. 그래서 좀 덜어 드렸지. 계속 고맙다며 엄청 좋아하시더라. 그 할머니 보니까 돌아가신 엄마 할머니 생각도 났어. 그 많은 풋마늘을 다 먹을 자신도 없어서 어차피 엄마 친구랑 나눠먹으려고 했던 건데 그러면 하루 이틀 더 묵혀야 하는데 그러다가 시들고 그러면 주기도 그래서 마침 잘 됐다 싶었지. 우린 우리 먹을 양만 조금 있으면 되잖아. 그거 드리니까 할머니가 뭐 줄 거 있는지 찾아본다면서 가방을 뒤져서 이 사탕을 주신 거야."

"아, 그랬구나. 하긴 엄마가 사탕을  살  사람은 절대 아니지."

사건의 전말을 다 파악한 딸은 이번에도 '엄마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뭐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란 건지...

"그걸 왜 줘? 우리가 먹지."

어떤 성인 멤버가 끼어들었다.

"너무 많이 가져왔어. 다 못 먹어."

"언제 봤다고 그걸 남한테 줘?"

"어차피 다 못 먹어. 못 먹고 버리는 것보다 나눠먹으면 좋지."

"누군지 알고 주냐고?"

"누군지 알아야 주는 거야? 줄 수도 있지."

"요즘같이 각박한 세상에 어떤 사람인 줄 알고. 그렇게 주면 나중에 더 바란다고."

"바라긴 뭘 더 바라? 얼굴도 서로 모르는데. 어차피 양도 많아서 다 못 먹는다고."

"못 먹긴 왜 못 먹어. 내가 다 먹을 거야."

"지금 가져온 저것도 다 못 먹을 거다."

내가 돈 주고 사서 준 것도 아니고, 뭘 바라고 준 것도 아니고, 그냥 우리가 먹기엔 좀 많다 싶어서, 밭에 그냥 두면 썩어 버려질 거, 상품성이 없다  뿐이지 못 먹을 것도 아니고 그저 크기가 좀 작고 가늘 뿐인데, 부모님이 힘들게 농사지으신 건데, 거기에 들인 정성이 너무 아까워서 어쩌나 하던 차에 마침 잘 됐다 싶어서 나눈 건데 그걸 가지고 누가 한참이나 물고 늘어졌다.


"에이, 아빠 어차피 이웃끼리 서로 나누고 사는 거야."

이 상황을 지켜보던 딸이 저런 기특한 말을 다 했다.

"요즘 세상이 얼마나 험한데, 그리고 그거 가져가서 먹을 줄 알아? 그냥 준다니까 받기만 하고 버리는 사람도 있을걸? 겉으로만 좋은 척하고?"

사실 나도 그런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다.

그래서 무엇이든 나눔을 할 때는 확실히 먹을 건지 물어보고 주는 편이다.

그런 사람이 설사 있다 한들 난 이미 줘버렸는데 내가 그런 뒷일까지 예상하고 있어야 하는 건가?

나는 그냥 주면 끝이다.

원해서 주면 그만이다.

받은 사람 양심에 맡길 뿐이다.

먹든 버리든 이미 내 손을 떠났단 말이다.

이제 와서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가서 다시 달라고 하리?

"할머니가 관심을 많이 보이고 진짜로 반찬 해 드실 것 같아서 드린 거야. 드리니까 엄청 좋아하면서 진짜 고맙다고 하시더라."

누구 말마따나 겉으로만 기뻐하고 속으로는 안 그럴지 몰라도, 그냥 한 번 해 본 소리였을지 몰라도 이미 지난 일을 이제 와서 자꾸 꼬투리 잡으면 뭘 어쩌자는 거지? 본인 소유의 물건을 내가 몰래 준 것도 아니고 아빠가 나눠 먹으라고 주신 거라 그렇게 한 건데, 물론 처음 보는 사람인데 느닷없이 줬다니까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일 수도 있지만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사람을 보면 끝이 없는 거 아닌가? 그 할머니가 그 풋마늘을 가지고 어떻게 할지 나는 전혀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다. 그냥 단순히 생각하면 다 지난 일이다.

워낙 세상이 흉흉하니 나도 평소에 많은 일에 의심을 좀 하는 편이지만 무조건 의심부터 하는 것은 너무  좀 그렇지 않은가? 옆집, 앞집 들락날락하며 지내는 사이까지는 아니더라도, 비록 처음 본 사람이라도 좀 나눠 줄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물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거란 것도 안다. 그냥 자기 마음 가는 대로 하면 그만 아닌가?


가족끼리 어느 부분에 있어 너무 의견이 상반되면 그것만큼 피곤한 게 없다. 살아 볼수록 그렇다.

그렇다고 무조건 본인 입장만 내세우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나는 나대로 상대는 상대대로 그저 입장 차이가 있을 뿐인 것인데, 물론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고 상대 말이 옳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그냥 입장 차이라고 생각하면 별 큰 일도 아닌 것을.

상대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나랑은 생각이 다른 것이다.

어떻게 모든 면이 똑같을 수 있겠냔 말이다.

세상살이란 게 결국엔 나는 그게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또 상대는 그것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일들일 뿐 인 거다.

내가 이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상대도 저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정도의 아량(?)은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최소한 남에게 피해를 줬다거나 민심을 흉흉하게 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선량한 미풍양속을 해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결국 입이 방정이었다.

곧이곧대로 이실직고 한 죄, 내게 죄가 있다면 그것뿐이겠지. 내친김에 다시 한번 기원전 5,000년 경의 과거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옛날에 내가 친정에서 로즈메리 꽃 핀 거 꺾어왔을 때도 어떤 여자가 꽃도 예쁘고 향기도 좋다고 자꾸 그러길래 로즈메리도 좀 나눠준 적도 있었어."

아, 그때도 엘리베이터 안이었구나.

길이 남을 역사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루어지는 거였어,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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