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임자 Mar 01. 2024

사랑해요 원 플러스 원

협상하는 다섯 단계

2024. 2. 28.

< 사진 임자 - 글임자 >


"얘들아, 잠깐 이리 와 봐. 엄마가 할 말이 있어."

보통은 저런 말을 잘하는 편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딱히 심각하게 해야 할 말이 있을 때가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때 심각했다.

이제 어떻게든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우리 아들이 가서 누나 좀 불러 올래?"

방에서 뭘 하는지 한참 동안 나오지도 않는 딸에게 심부름꾼을 보냈다.

"누나, 얼른 나와 봐. 엄마가 갑자기 할 말이 있대."

솔직히 갑자기는 아니다. 전부터 말을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어쩌다 보니 봄방학이 끝나갈 때가 다 되어 버렸다.

"어? 엄마, 갑자기 왜?"

평소와 다른 내 태도에 딸도 약간 긴장한 듯했다.

"둘 다 손부터 깨끗이 씻고 와 볼래?"

다짜고짜 할 말이 있다더니 손은 왜 씻으라는 거냐는 표정으로 남매는 손을 씻고 왔다.

"근데, 엄마. 갑자기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눈치란 게 있는 딸은 여느 때와 다른 엄마 모습에서 자꾸만 뭔가를 알아내려고 했다.

"진짜 갑자기 왜 부른 거야? 손은 왜 씻고 오라는 거야?"

아들도 궁금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엄마가 너희한테 할 말이 있어서 그래. 손은 다들 깨끗이 씻었겠지?"

벼르던 말을 하기로 했다.

"일단 파를 다듬으면서 이야기하자. 너희 지금 급한 일 있어?우리 셋이 하면 금방 끝날 거야. 이걸로 맛있는 요리 해 먹게."

"뭐야? 그래서 엄마가 손 씻고 오라는 거였어?"

남매는 당황스럽다는 표정이었다.

"파도 다듬고 엄마랑 얘기도 하고 좋잖아."

"하여튼 엄마는."

아들이 한마디 했다.

"어차피 집안일은 다 같이 하는 거야. 엄마가 할 말도 있고 파는 다듬어야 하고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하면 좋잖아."

"누나, 엄만 다 계획적이었어."

아들이 두 번째 마디를 했다.

"진짜 내일모레면 개학이잖아. 학년도 바뀌고. 근데 그동안 엄마가 몸 안 좋아서 너희들한테 신경을 못써서 너희 생활이 좀 흐트러진 것 같아서 말이야. 예전 같으면 개학하기 2주 정도 전부터 학교 갈 준비도 하고 했을 텐데 벌써 방학도 다 끝났어."

슬슬 본론으로 들어갔다.

"너희가 그동안 쌓아온 게 있는데 그동안 엄마가 옆에서 신경을 못써줬더니 평소에 잘하던 일도 흐지부지 되고 그런 것 같아. 너희가 얼마나 잘하고 있었는데, 공든 탑이 무너질 것 같아서 아까운 생각이 들어. 기껏 잘해 놓고 방학 때 그걸 무너뜨려버리긴 너무 아까워서. 너희가 보기엔 어때? 솔직히 전만큼은 아니지?"

양심 있는 남매는 순순히 내 말을 인정했다.

"이젠 진짜 학교가게 생겼어. 엄마가 방학에는 실컷 놀고 늦잠도 자라고 그래서 솔직히 놀기도 많이 하고 늦잠도 많이 자긴 했지? 그건 너희도 인정하지?"

남매는 이것도 곧바로 인정했다.

"하지만 이젠 학교 가려면 달라져야 돼. 방학 때처럼 살 수는 없어. 그렇게 살아서도 곤란하고. 일단 저녁에 자는 시간이 요즘 너무 늦은 것 같아. 어쩔 땐 10시 넘어서도 자잖아. 학교 다닐 때는 그래도 9시 반에는 잤던 것 같은데. 방학이라고 그냥 편하게 자게 했더니 이렇게 됐어. 너희 하는 대로 보고 있었던 과보가 이거야. 1월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늦게 자도록 놔뒀더니 너희가 늦게 자는 게 습관이 돼버린 것 같아. 너희 생각은 어때?"

나는 사실만 말했다.

그리고 남매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기 하지."

딸이 먼저 수긍했고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아, 그럼 우리가 좀 더 일찍 자야 된다 그 말이야?"

우리 아들은 눈치도 빠르지. 어쩜 이렇게 찰떡같이 잘 알아듣는담?

"그렇지. 엄마 말이 그거야. 앞으로 좀 더 일찍 자도록 하자. 그리고 아침에 이젠 늦잠 자기 힘들 거야, 학교 가려면."

솔직히 방학 내내 남매는 9시 전후에 기상했고 어쩔 땐 더 늦게 일어나기도 했다.

어차피 학교도 안 가고 당장 나가야 할 학원도 없었으니 잠이라도 푹 자라고, 언제 원 없이 늦잠 한번 늘어지게 자는 게 소원인 나는 별로 간섭하지는 않았다.

잠을 잘 자야 아침에 개운하고 기운도 나는 법이라고 생각했으므로.

하지만 개학이 코앞인데 이대로는 곤란하다.

"이젠 7시에서 7시 30분 사이에는 일어나야 할 것 같은데? 학교 다닐 때는 그랬었잖아. 그래야 아침밥도 먹고 학교에 가지. 늦게 일어나서 급하게 가면 좋은 게 없을 것 같아. 너희 생각은 어때?"

"그건 그래."

언제나 대답도 잘하는 아드님이 단번에 인정했다.

"며칠 동안 좀 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연습을 해 보자. 개학날 당장 하려면 잘 안될 거야. 그치?"

"알았어."

"근데 엄마, 파 이게 다야? 벌써 다 다듬은 거야?"

"응, 같이 하니까 정말 빨리 끝났지?"

"진짜 외할머니 말이 맞네. 눈같이 게으른 게 없고 손같이 부지런한 게 없다!"

"그래. 쪽파랑 당근이랑 넣고 달걀말이도 해 먹자."


이렇게 그날 협상도 성공.

쪽파도 다듬고 할 말도 하고.

이게 바로 진정한 원 플러스 원,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원 플러스 원이다.

작가의 이전글 비와 (막무가내) 당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