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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un 07. 2024

엄마 죽으려면 아직 많이 남았어

아직은 아니야

2024. 6. 6.

< 사진 임자  = 글임자>


"엄마, 엄마는 안 예쁘다는 게 좋아? 빨리 죽는다는 게 좋아?"

"그건 또 갑자기 무슨 말이야?"

"둘 중에 어떤 게 나아? 골라봐."

"꼭 골라야 돼?"

"응. 하나만 골라 봐. 엄마는 어느 쪽이야?"


그러니까 그날도 아들이 자그마치 '사장성어'씩이나 공부하신 날이었다.

또 시작이다.


"엄마, '미인박명'이라는 말 들어봤어?"

"당연히 들어봤지."

"어디서?"

"어디서 듣긴 어디서 들어? 엄마가 항상 들어온 말이 그거지."

라고 다소 심한 과장에 가까운, 증인도 없는, 일종의 아무 말대잔치를 그날도 벌였다, 나는.

그것도 자그마치 아드님 앞에서 말이다.

"어? 엄마가 왜 그런 말을 들어?"

"우리 아들, 잘 생각해 봐. 엄마가 왜 그런 말을 들었겠어?"

"진짜야?"

아니, 가짜야.

"엄마, 그럼 그 뜻도 알겠네."

"당연히 알지. 엄마가 항상 듣던 말인데."

"진짜로 들었던 거 맞아?"

아니, 가짜로 들었던 거 맞아.

상상으로 들었어.

"우리 아들은 그게 무슨 뜻인지 아실까?"

"당연히 내가 알지. 그것도 모르겠어?"

"그게 무슨 뜻인데? 엄마한테도 좀 알려 주라."

"엄마 지금 나를 시험하려는 거야? 내가 진짜로 그 뜻을 아는지 그거 알아보려고?"

"아니, 네가 안다고 하니까 그렇지."

"어머니, 그 말은! 미인은 빨리 죽는다~ 이 말씀이지."

"우리 아들, 정확히 아시네!"

"내가 좀 알지."

"그래. 그렇구나.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운 거야?"

"책 보니까 그 말이 나왔어."

아들은 사자성어가 있는 책을 자주 보신다.

항상 펼쳐놓고 즐겨보지 마지않으신다, 정확히는 만화책을.

아드님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사자성어를 만화책에서 배우셨다.

"그래서 말인데, 엄만 정말 걱정이야."

"갑자기 뭐가?"

"미인은 빨리 죽는다잖아. 엄마 얼마 못 살겠지?"

"어허, 어머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미인박명이란 말이 있잖아. 그래서 그렇지. 그 말대로라면 엄만 진작에 저세상 사람돼서 한번 더 태어나고도 남았겠다. 그치?"

"에이, 엄마는 걱정할 거 없어."

"왜?"

"엄마는 아주 오~~~~~~래 오래 살 거야."

"뭐야?!"

"농담이야 농담. 걱정하지 마, 엄마. 엄마는 예쁘지만 오래오래 살 거야."

참, 사회생활 잘할 어린이다.

"그런데 엄마는 안 예쁘고 오래 사는 게 좋아? 아니면 예쁘고 일찍 죽는 게 좋아?"

그래서 그 말이 나온 것이다.

"그냥 예쁘고 적당히 살면 안 될까?"

"안돼. 둘 중에 하나만 골라야 돼."

"그건 너무 선택하기 힘들어."

"그래도 골라."

"그냥 엄만 이대로 살다 죽을래. 죽을 때 되면 죽겠지."


걸핏하면 책에서 본 것을 엄마에게 실험하고 적용하고 시험에 들게 하고 농담 따먹기 하느라 공사다망하신 아드님아, 새겨듣기 바란다.

엄마, 그렇게 빨리 안 죽는다.

아직은 더 살아야지.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아, 아직은.

갈 때 되면 어련히 알아서 갈까.

최소한 너희에게 피해는 안 주도록 노력하겠어.

짐이 되기 전에, 최소한 이 엄마를 짐스러워하기 전에 떠나고 싶단다.

그렇잖아도 언제 죽는 게 좋을지 생각하고 있어.

엄마 욕심이겠지만, 그런데 더 이상 너희를 못 보게 된다는 게 그게 걸려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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