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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May 04. 2024

어린이날 마지노선 끝!

일단 딸의 경우

2024. 5. 3.

< 사진 임자 = 글임자 >


"5월에는 어린이날도 있고 합격이 생일도 있네. 근데 이제 어린이날도 올해가 마지막 날이네?"

마지막이라는 그 단정적인 단어가 이렇게나 홀가분하게 느껴질 줄이야!


"엄마, 올해 어린이날은 어떻게 할 거야?"

"어린이날이고 뭐고 일단 엄마 몸부터 나아야지. 지금 엄마는 빨리 낫기나 했으면 좋겠다."

4월 초 갑자기 몸이 안 좋아졌는데 그 기간이 꽤 길어졌다.

아이들은 4월 말이 되어가자 달뜨기 시작했고 나는 시름이 더 깊어졌다.

이 지긋지긋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할 수만 있다면(그게 불가능해서 더 절박하긴 하겠지만) 그나마 멀쩡하다고 착각하고 살았던 4월 이전으로 돌아가고만 싶었다.

하지만 여자는 약하지만 (비록 성치 않은 몸이긴 하나) 6학년에 재학 중인 딸을 둔 어머니는 강한 법, 딸의 마지막 어린이날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했다. 뭐라도 준비해야 했다. 꼭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이번 어린이날이 더 애틋해졌고 다시는 딸에게 돌아오지 않을 어린이날이라 생각하니 아쉽고 아깝기까지 했다. 게다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어린이날'까지 공식적으로 졸업해야 한다는 법은 세상에 없었으므로 그 마지막 어린이날이라는 한정적인 단 하루가 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도 잘 모르겠다.

"너희 뭐 하고 싶어?(=설마 혹시 그런 게 있기라도 한 거라니? 없어도 대환영이야.) 어디 가고 싶은 데 있어?(=나가 봐라. 사방이 사람들 천지다. 사람 구경하러 굳이 바깥으로 나가고 싶진 않겠지?) 꼭 안 나가도 되는데.(=편한 집 놔두고 나갈 필요까지는 없지 않으냐?) 집에서 우리 가족끼리 맛있는 음식 2박 3일 동안 실컷 먹고 노는 게 어때?(=내가 말한 대로 실천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일단 한 번 해 본 말이란다.)"

"엄마 선물은?"

딸과 아들이 정색을 하고 물었다.

"너희 두 어린이를 낳은 사람이 이 엄마니까 우선 엄마 선물부터 챙겨줘야 하는 거 아니야?"

라는 식상한 제안은 그 마지노선이 끝난 지가 한 오백 년 전이다 물론. 게다가 작년에 그 양반에게 끈질기게 몇 년 간 저 타령을 한 결과 나는 어린이날에 프라이팬 세트를 선물로 받았다.

"선물도 줘야 하는 거야?"

"아니, 꼭 줘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주면 좋지."

내 몸이 편치 않으니 어린이날이고 선물이고 아무 생각이 없었다, 솔직히.

"그래. 올해 합격이 어린이날도 마지막인데, 설매 중학교 가서도 어린이날 챙기진 않겠지?"

"엄마, 중학교 가는 거랑 어린이날이랑 무슨 상관이야?"

라는 말을 시작으로 딸은 그동안 우리 부부가 얼마나 어린이날을 허술하게 보냈는지, 얼마나 대강 넘겼는지에 대해 기억을 더듬어 하나하나 따지기 시작했다.

"엄마는 어린이날 우리랑 어디 놀러도 잘 안 갔잖아."

"그땐 엄마가 근무할 때니까 그렇지. 어쩌겠어. 어린이날 행사를 어린이날에 하는데 일하러 나가야지. 어쩔 수 없었잖아."

실제로 공무원으로 재직할 당시 하필이면(주민 입장에서는 '마침'이겠지만, 공무원 입장에서는 '하필이면'이다) 어린이날에 행사를 치르느라 출근을 해야만 했던 적이 많았다. 나도 어린이날에 아이들 데리고 소풍 나가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다. 내가 어린이날 출근을 하면 아이들은 할 수 없이 집에 얌전히 있어야 했다.

그 양반은 나도 없는데 혼자서 굳이 두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까지 가시는 자비 같은 건 베풀지 않았으므로.


다 지난 일이다.

아이들이 그때는 별 말 안 하더니 이제 와서 서운한 마음을 고백했다.

그때의 아쉬움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딸의 마지막 어린이날을 잘~ 보내고 싶은데 아직도 몸이 성치 않다.

"당신 몸도 안좋은데 괜찮겠어?"

다행히 그 양반이 철두철미하게 가족 여행을 계획하셨다.

그런데  비가 온다고 한다, 하필이면, 하필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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