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이 어디 계시나 잠깐 마당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가니 아버님이 다시 나를 밖으로 쫓으셨다, 어서 가라고, 빨리 가라고.
물론 아버님과 원수 진 사이는 아니다.
내가 보기 싫어서는 더더욱 아니다.
비 때문이다.
강풍이 불고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고, 하필 재난 안전 문자가 왔고, 밖이 어두컴컴해지고 있었으며, 바람 또한 심상치 않게 불고 있었다.
막 이른 저녁을 시부모님과 같이 한 직후였다.
나는 우리 네 식구가 가서 가뜩이나 설거짓거리가 몇 배 더 늘어난 상황이라 설거지를 다 마치고 갈 생각이었다. 내가 먹었으니까 내가 치워야지.
그런데 아버님은 막무가내셨다.
"설거지는 할 생각도 하지 말고 얼른 짐 챙겨서 가."
"짐 챙기고 말 것도 없어요, 아버님. 가방만 들고 가면 돼요."
"비 오기 전에 가야지. 비가 많이 온다고 해서 걱정이네."
"네, 온다고 하긴 했는데 저녁에나 올 것 같아요."
"그래도 비 오면 성가시니까 얼른 가야지."
"설거지 금방 해요. 제가 하고 갈게요."
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는 처음으로 낯선 아버님의 모습을 보았다.
장갑도 안 끼시고 맨손으로 직접 설거지를 하시려고 하는 게 아닌가. 먼저 그릇에 살짝 물을 뿌리는 동작을 시작으로 이내 수세미로 그릇을 닦기 시작하셨다.
"아버님, 제가 할게요. 얼마 안 걸려요."
"됐다니까. 얼른 짐이나 싸."
짐은 진작에 어머님과 내가 몇 보따리 다 싸놨다, 기원전 3,000년 경에.
지난주에 안 가고 어제 갈 거라는 긴급 속보를 들으신 어머님이 다 만반의 준비를 해 두셨던 거다. 그러면서 어머님은 우리가 가고 나면 자꾸 빼먹은 것들이 있더라며, 어제는 시가에 도착하자마자 냉장고를 샅샅이 뒤져 내게 줄 오만가지 먹을거리들을 챙겨 두셨다.
어머님이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동안 아버님 혼자서 살림을 하시더니 음식도 해 드시고 설거지도 하셔서 그런지 제법 설거지 폼이 괜찮았다.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비가 온다고 해도, 10분 정도 설거지 마치고 간다고 해서 벼락 돌풍이 불지는 않을 테지, 아버님이 설거지하시는 걸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하지는 않아서 나는 자꾸 설거지를 하겠다고 했고 아버님은 그저 날씨가 심상치 않아 보이니까 운전하고 갈 일이 걱정이어서 자꾸 나를 쫓아내셨다. 나중에는 거의 화를 내다시피 하셔서 그냥 아버님 뜻대로 얼른 짐을 챙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