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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May 20. 2024

소일거리 만담

살림 만담

2024. 5. 7.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여보, 이거 어떻게 하면 돼?"

"손질해야지."

"어떻게?"

"어떻게 하면 되겠어? 생각을 해 봐."

"가르쳐 줘. 어떻게 하면 되는지."


10년을 넘게 가르쳐 줬는데 또 뭘 더 가르쳐 달라는 걸까?

해년마다 하는 일인데 왜 또 난생처음 하는 일 보듯 하는 걸까?


"마늘종을 뽑아 왔는데 이 많은 걸 언제 다 다듬지?"

라고 말하면서 우리 집 세 멤버를 번갈아 보았다.

그러나 누구 하나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 하나 없었다.

아이들은 매일 할 일을 하느라 내 말을 들은 것 같지도 않았고 우리 집 성인 남성도 못 들은 건지, 못 들은 척하는 건지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저녁을 준비하려고 다른 일을 하는데 어디선가 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마늘종 다듬어야 된다며? 어디 있어?"

"현관에 있어."

"얼마나 돼?"

"얼마 안돼. 10분 정도밖에 안 걸릴 거야.(=내 입장에서는 10분이면 끝나.)"

"그래? 그럼 내가 해 줄게."

그 양반이 적극적으로 나서자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냅다 현관으로 가서 '약소한 소일거리'를 챙겨 왔다.

"얼마 안 된다며? 이게 얼마 안돼?"

"그거 금방 끝나. (어디까지나 내 기준에서만) 진짜 조금이야."

"10분 가지고 안 되겠는데?"

"그럼 끝날 때까지 하면 되지. 그래봤자 얼마 안 걸릴 거야.(=물론 내 기준에서만)"

"난 얼마 안 된다고 해서 한다고 한 건데 괜히 한다고 했네."

그럴 줄 알고, 사실대로 말하면 도망부터 갈까 봐 내가 사실과 다소 다르게 말한 거다.


하지만 그 양반을 '가르치는 일'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결코.

가르쳐 주고 가르쳐 줘도 매번 난생처음 해 보는 일 하듯 하신다.

"이거 윗부분까지 남겨서 해 먹으니까 맛있더라. 이번엔 윗부분 조금 남기고 다듬어 봐."

라고 말하면서 시범을 보여도 내 말은 곧이곧대로 듣지 않으신다.

"그러지 말고 그냥 다 먹자."

일 하기 싫어서 다 먹어치우자는 소리로밖에 안 들린다. 물론 다 먹는다고 해서 큰일 날 일은 없겠지만 소일거리라도 하면서 움직여줘야 그나마 앉아있기라도 하실 테니 없는 일도 만들어야 했다.

"그냥 내 말대로 해."

"아깝게 뭐 하러 버려? 그냥 다 먹으면 되지."

"아낄 걸 아껴. 그냥 하란 대로 하라니까!"

"난 아까우니까 그러지."

"진짜 아까운 게 뭔지도 모르면서."

나도 이럴 줄 진작에 알긴 했다, 기원전 2,000년 경에.

무슨 일을 맡기면 한 번도 군말 없이 하는 법이 없으시다. 몰라서 알려주면 잔소리한다고 듣기 싫어하고 나름 요령이라고 비법을 전수하면 절대 그대로 따라 하는 법이 없다.

나름 호기롭게 마늘종 앞에 섰으나, 내 말 같은 건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그냥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일처리를 하신다.

"내가 알아서 할게."

지금 막 세 돌 지난 아기도 아니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본인이 다 알아서 하겠다고 한다.

"모르니까 가르쳐 주는 거잖아. 배우려고 안 하고 꼭 듣기 싫어하더라. 가르쳐 달라며? 가르쳐 달라고 해서 가르쳐 주는 거잖아."

안 가르쳐 주면 안 가르쳐 준다고 뭐라고 하고, 가르쳐 주면 잔소리한다고 그러고 그럼 물어보지 말든가.


"이거 너무 오래 걸릴 거 같은데. 뭐 빨리 할 수 있는 방법 없나?"

"눈같이 게으른 게 없고 손같이 부지런한 게 없다고 했지?"

그 양반은 하나씩 집어 무슨 보물 다루듯 했다.

보고 있으니 속이 답답했다.

하지만 내가 언제까지 하나하나 다 가르쳐야 하나?

"뭐든지 다 해봐야지. 나중에 혼자 살면 다 해야 될 텐데. 뭐 다 사 먹어도 되긴 하지만. 아무튼 알아서 해."

"내가 왜 혼자 살아? 당신 있잖아."

"내가 평생 있을 줄 알아?"

"당신 어디 가?"

"어디 가고 싶다."



"근데 진짜 너무 많다."

"생각을 해 봐. 어떻게 하면 일을 좀 더 빨리 끝낼 수 있을지."

"오래 걸릴 거 같은데..."

당연히 오래 걸리지. 그거 하나씩 하면 어느 세월에 다 하겠냔 말이다.

잠시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는 마늘종을 어느 순간 한 줌씩 집어 들고 다듬고 있었다.

"그래도 요령은 있네?"

저런 생각을 해냈다는 게 신통방통해서 내가 한마디 했다.

"이렇게 쉬운 방법이 있었는데 왜 말 안 해줬어?"

"그걸 일일이 내가 알려 줘야 돼? 딱 보면 그렇게 해야겠단 생각이 안 들까?"

"나 고생하라고 일부러 말 안해줬지? 너무 한 거 아니야?"

눈치라곤 없는 양반이 귀신같이 잘도 아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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