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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May 19. 2024

잘라야 할 때와 심을 때

2024. 5. 18.

< 사진 임자 = 글임자 >


"자르긴 잘라야 하는데 어떻게 하지?"

"내가 잘라 줄게. 어디 자르면 돼?"

"무조건 자르면 되는 줄 알아? 미리 잘 알아보고 잘라야지."

"그냥 자르면 되지 뭐."

"안된다니까. 그것도 다 요령이 있어. 아무렇게나 하면 안 돼. 그러다가 죽으면 어떡해?"

"그렇게 이것저것 따지다가는 평생 못 자를 거다."


평생 못 자르는 말든 일단은 조심하자 이거 아니냐고, 내 말은.

게다가 지금 살아 있잖아.

나도 쉽게 엄두가 안 난단 말이다.


"이제 가지 치기를 해야 하는데 언제 하는 게 좋을까?"

이 말을 작년부터 해왔던 것 같다.

그때는 겨울이었으니까 봄이 되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보자 하다가 벌써 여름이 다가오려고 한다.

그동안 수많은 영상을 보면서 예습을 했지만 정말 쉽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영상 속에서는 시원시원하게 싹둑 잘도 잘라 냈지만 나는 이런 일은 처음이라 겁부터 덜컥 났던 것이다.

올해로 우리 집에서 키운 지 8년 째다.

처음에 크기가 어땠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데 매일 보니까 눈치도 못 챘는데 이젠 저대로 뒀다가는 점점 더 감당하기 힘들어 보였다.

그냥 놔둬서 안될 건 없지만 사방팔방 가지가 뻗어 나가는 걸 보고 있자니 나중에는 고무나무가 밤에 나랑 같이 자자고 누울 것만 같았다.

잎이 내 얼굴을 다 가릴 만큼 컸다.

이러다가 아이들이랑 나무 아래에서 숨바꼭질도 할 수 있겠다.

"지금 가지가 위로 안 자라고 점점 아래로 쳐지고 있잖아. 이런 건 잘라내줘야 돼."

어느 날 그 양반이 아는 체를 다 하셨다.

"그러게. 너무 아래로 쳐지는 것 같긴 하네. 그래도 잘못 자르면 죽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지."

"저런 가지들을 잘라 줘야 영양분이 다른 가지로 가서 잘 자라지. 위로 올라가는 가지는 두고 아래로 쳐진 가지들은 다 자르면 되겠네."

"그렇긴 한데, 그래도 안 죽고 살 수 있을까?"

"죽으면 죽는 거지 뭐."

이 양반이 지금 말하는 것 좀 보게.

죽으면 그만이라고?

어쩜 말을 그렇게 야박하게 할 수 있담?

난 어떻게든 다 살려내고 싶은데 내 마음도 모르고.

물론 다 살려 보겠다는 건 내 욕심이다.

그래도 나무가 죽는 건 싫다.

이론은 수 십 번 예습했지만 선뜻 실습하기가 망설여진다.

"먼저 전지가위를 소독해야 돼."

"내가 잘라 줄게. 어디 자르면 돼?"

"아니야. 더 알아봐야겠어. 더 있다가 해야겠어."

참 이해 안 되는 사람이다.

정말 도움이 필요해서 도와달라고 할 때는 안나서고 도와달라고 입도 뻥끗 안 할 때는 저렇게나 적극적으로 나서 주신다.

그 양반 없을 때 남몰래 해치우고 싶다.

물에서도 키워 보고 흙에도 심어 봐야지.

하지만 또 혼자서는 자신이 없다.

차라리 아이들과 같이 이 거사를 치러야겠다.

그전에 먼저 어떻게 하면 잘라 낸 가지를 죽이지 않고 다 살려 낼 수 있을까.

이렇게 망설이고만 있다가 올해도 그냥 흘려보내는 건 아닌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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