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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May 17. 2024

걱정 마, 364일 밖에 안 남았어

눈 깜짝할 사이에 돌아올 거야

2024. 5. 15.

< 사진 임자 = 글임자 >


"아, 아쉽다, 벌써 내 생일이 다 지나버렸어."

딸은 어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세상 의기소침한 얼굴로 그 말부터 했다.

생기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지극히 슬픈 얼굴이었다.

딸은 생일만 사는 그런 어린이 같았다.


"넌 그렇게 생일이 기다려져?"

"당연하지, 엄마. 생일 되면 좋잖아."

"그래, 그런 의미에서 아침은 떡국을 먹자. 한 살 더 먹는 거니까."

라고 아무 말 대잔치를 하며 나는 미역국 대신 생일 아침에 떡국을 끓였다.

"에이, 엄마 그렇게 따지면 우리 집은 걸핏하면 떡국 먹는데 우리 나이가 도대체 몇 살인 거야?"

잠자코 계시던 제 누나의 2살 연하의 남동생이 나서주셨다.

"우리 아들, 말이 그렇다 이거지 뭐."

"아니지, 떡국을 먹으면 한 살 더 먹는 거라면 하루에 열 그릇 먹으면 하루에 열 살을 더 먹는 거야? 그게 말이 돼? 엄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래. 말 안 된다."

말이 그렇다 이거라고 했잖아, 이 녀석아.

하여튼 잘 나가다가 우리 아드님은 엉뚱한 데서 끝장을 보려는 성미가 있으시다.

"생일이니까 너무너무 좋다."

딸은 그저 5월 15일이 자신의 생일이라는 점만 중요했다.(고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랬던 어린이가, 하루아침에 무기력해지고 말았던 것이다.

"이렇게 순식간에 내 생일이 다 지나가버리다니!"

딸은 혼신의 힘을 다해 하루를 산 사람이 어떤 목표를 잃어버린 것처럼 아침부터 기운 없어 보였다.

"합격아, 솔직히 '순식간에'는 아니지. 하루는 항상 24시간이야. 누구에게도 1초라도 더 주지 않고 1초라도 더 모자라지 않아. 어제 네 생일도 전하고 똑같이 24시간 제대로 돌아간 거 맞아. 그런데 순식간이라고 표현하는 건 좀 아니지 않아? 말은 똑바로 해야지. 비록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하루 24시간의 날이지만 특히 네 생일이어서 어제 하루가 너무 기쁜 나머지 순식간에 지나간 것처럼 느껴졌다고 표현해야 맞지, 안 그래?"

라고 분위기 파악도 못하는 소리 같은 건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물론.

사춘기인가 단순한 호르몬의 변화로 인한 변덕인가, 그도 아니면 타고난 본연의 기질인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은 정체불명의 그것을 지닌 딸의 요즘 심경상의 감정기복을 충분히 감안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엄마였으므로, 나는.

"그래. 그만큼 어제 네 생일이 즐겁고 좋았다 이거지? 엄마가 그렇게 생각해도 되겠지? 한마디로 만족스러웠다는 거지?"

"응, 정말 어제 좋았어."

아무렴 그렇고 말고, 좋고 말고.

하루 종일 먹고 마시고 놀고 까불고 생일을 빙자하여 어떤 특혜도 다 누리고 가끔은 이건 좀 도가 지나친 게 아닌가 싶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도 있었으니, (어디까지나 내 생각에만) 원도 한도 없는 하루를 보냈다고 나는 느꼈던 것이다.

"내 생일이 너무 빨리 지나가버려서 너무 아쉬워."

고작 생일이 지난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건 너무하는 거 아니야?

안 되겠어, 사기를 북돋아 주어야겠어.

"하지만 걱정 마. 네 다음 생일은 이제 고작 364일밖에 안 남았어. 365일이 안 남은 게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이야? 눈 깜짝할 사이에 또 돌아올걸?"

딸의 얼굴이 금세 환해지는 걸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런가?"

"그렇지."

"그렇게 따지면 그렇긴 하네."

"내년엔 우리 합격이가 중학생이 돼서 처음 맞는 생일이 되겠네. 과연 내년엔 우리 딸이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중학생이 되니까 생일 선물을 최대한 3만 원선에서 해 달라고 해야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이 됐다고 거금 1만 원씩이나 생일 선물 상향선을 노리다니!


생일이 지나간 것을 아쉬워하던 딸은 이제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두고 고작 364일 앞으로 다가온 다음번 자신의 생일에 (불확실하지만) 어떤 희망을 꿈꾸었다.

정말, 그 기다림 하나만으로도 그날은 눈 한 번 깜빡하고 나면 닥칠 것이다.

산다는 건, 특히 초등학생이 산다는 것의 의미는 기다림과 아쉬움의 연속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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