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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May 14. 2024

선생님한테 그러지 마, 제발!

물어보니까 하는 말인데

2024. 4. 23.

< 사진 임자 = 글임자 >


"OO이 선생님한테 아무것도 안 드려도 될까?"

"드리긴 뭘 드려? 쇠고랑 차고 싶어?"


알 만한 애가 왜 이러나 싶었다.

물으나 마나 입 아픈 소리를 왜 하나 싶었다.


"병설 유치원은 선생님한테 아무것도 드리면 안 되나?"

친구에게 급히 연락이 왔다.

내가 병설 유치원 선생님도 아닌데 그걸 왜 나한테 묻냐면, 내가 병설 유치원 학부모였던 적이 있어서? 그 양반이 학교에서 근무했던 적이 있어서?

"도라지청 이런 것도 안돼?"

"거긴 김영란법 적용 될걸? 어린이집은 해당사항 없는 걸로 아는데 병설은 적용된다고 알고 있어."

나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줄은 알고 있다.

알고 있는 거 맞겠지?

도라지청이고 뭐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오지랖 넓게 또 나서고 말았다.

아니, 나는 그저 친구가 물어보길래 내 경험을 비추어서, 평소 그 양반 옆에서 들은풍월은 있어서, 서당개 옆에 사는 개도 그 정도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는 대로 알려 줬다. 다소 격하게 반대도 했다.

친구는 자꾸 신경이 쓰이는 눈치였다.

"괜히 뭐 보내려고 하지 말고, 그냥 편지나 정성스럽게 진심으로 써서 드리든지."

그 편지를 선생님이 좋아하실지 어쩔지, 그마저도 반기지 않으실지 모르겠으나 당장 내가 생각해 낸 건 그게 다였다. 편지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편지 한 줄도 안되려나?

"편지는 자신 없고."

"그럼 만날 때마다 진심으로 반갑게 인사드려."

"그런 걸 내가 또 못하잖아."

하긴 우리가 또 그런 건 잘 못하긴 하지.

넉살이 좋은 편도 못돼서.

솔직히 정말 선생님들이 고마워 뭐라도 다 드리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김영란법'때문에(?), 아니 덕분에(?) 공식적으로 무작위로 일관해야만 했던 적이 있었다.

가끔 너무 정이 없어져버린 건 아닌가 싶을 때도 있긴 했다.

서로 고마워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그런 순수한 스승과 제자 사이가 되기란 정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걸까?


딸만 하나 둔 그 친구는 결혼도 좀 늦었고 출산도 늦은 편이라(본인이 늘 그렇게 말해서 그런가 보다 한다) 올해 7살인 딸이 처음으로 병설 유치원에 들어갔는데 어린이집을 다닐 때와는 환경이 달라져서 신경도 쓰이고 조심스럽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이 말만 했다.

"그냥 조신하게 있어. 괜히 나서지 말고. 만약에 선물이라도 드렸다가 괜히 선생님 입장 난처해지면 어떡해?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느니만 못할 것 같은데? 내 생각은 그래. 나라면 그냥 안 할 거야."

선생님께 선물을 안 드린다고 선생님이 고마워한다는 걸 모르실까?


"어린것이 어른이 주면 받아야지. 거절해?"

벌써 거의 20년 전의 일이긴 하지만 교사인 친구가 학부모가 건넨 무언가를 정중히 거절하자 대뜸 이랬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때 내가 받은 충격은 말도 못 한다. 친구도 너무 충격받았다고 했다. 세상에는 저런 학부모도 있구나. 친구가 백 번 맞는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저런 부류의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경악스럽기까지 했다. 선생님을 선생님으로 대우하는 것도 아니고 그 극단적인 언어 선택이 내겐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본인의 자식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어린것'이라고 대놓고 말하는 수준의 학부모라니.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그래도 할 사람들은 다 어떻게든 해."

이런 말도 수 없이 들어왔지만 나는 '어떻게든 할 사람들'의 그 부류에 속하지도 않고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엉뚱한 데 한눈팔지 말고 선생님이 지도하는 대로 믿고 맡기는 수밖에. 표현은 항상 안 하지만 남매의 두 선생님께 늘 고마운 마음은 있다. 그래서 어쩌다가 연락을 해야 할 일이 생기면 항상 고맙다, 선생님 덕분이라는 인사는 빠뜨리지 않는다.

뭐라도 성의를 보이고 싶은 학부모와 법이라는 울타리에 나름 난처한 입장에 놓인 선생님도 서로 불편해질 수도 있는 날이 다가온다.

차라리 올해처럼 쉬는 날이 겹치는 스승의 날이 제일 좋다고 말하는 또 다른 교사 친구가 생각났다.

나도 한때 그 친구에게, 지금도 여전히 학교 생활과 관련된 이것저것을 묻곤 한다.

선생님들마다 성향은 다 다르겠지만 그냥 그 친구를 나 혼자만 표준으로 삼고 말이다.


학부모들만큼이나 선생님들도 싱숭생숭해질지도 모르는 날,

진심이 있다면 전해지기 마련일 거라고,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진심으로 대하면 되지 않겠냐고 그보다 더 최고가 어디 있냐고 친구에게도 내게도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가장 당부하고 싶은 말이다.

사람 사이의 진심, 겉치레 말고 가식적인 허울 말고, 진짜 마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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