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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May 22. 2024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뽑아 먹을 때다

대파를 뽑는 황금시간대

2024. 5. 21.

< 사진 임자 = 글임자 >


"이거 꽃이 다 피려고 하는데 먹어 되나?"

"그렇게 보여도 먹는 데는 아무 지장 없다."


뽑아야지 뽑아야지 하다가 몸이 안 좋아서 거의 한 달을 고생하는 바람에 때를 놓쳤다.

놓쳤다고 생각했다.


친정에 가면 빈 손으로 오는 법이 절대 없다.

달래 한 줌이라도 부추 한 그릇이라도 베어 오고 상추 한 봉지라도 챙겨 온다.

물론 주인(?)의 허락 하에 말이다.

부모님 소유이므로 자식이라 하더라도 마음대로 채취해서는 아니 될 일이다.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엄마가 미리 다 손질해서 대기하고 계실 때가 많긴 하다.

"엄마, 저거 대파 저렇게 놔두다가 뻣뻣해서 못 먹겠는데?"

텃밭에서 가장 외진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신경 쓰였다.

주인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데 엉뚱한 내가 신경을 쓴다.

"나중에 이모 오믄 주고 오빠네도 뽑아 주고 OO이(내 친구다)도 좀 갖다 줘라, 누구도 주고 누구도 주고..."

엄마는 다 계획이 있으셨다.

하나 둘 대파 꼭대기에서 꽃이 피려고 하고 있었고 동이 섰다.(친정 시골에서는 줄기 가운데가 심지 같은 게 생기면서 딱딱해지는 줄기 비슷한 것이 새로 생겨나는 걸 그걸 동이 선다라고 하는데 그런 말이 정말 존재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면 줄기도 딱딱해지고 맛이 예전만 못해진다.(단지 느낌일 뿐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저러다 자손까지 퍼뜨리기 전에 얼른 해치워야지 했는데 엄마는 그 대파들을 나눔 할 생각으로(결정적으로 아직 이모님이 오지 않으셔서) 계속 키우고만 계셨다. 아니 그냥 내버려 뒀다고 해야 맞다. 하지만 저렇게 계속 두다가는 못 먹고 버리게 될지도 몰랐다. 조금이라도 어릴 때(?) 그나마 동이 서기 전에 뽑아서 다듬어 놔야 1년 동안 쓸 수 있는데 말이다.

날이 점점 더워지고 있었고 대파는 날로 여물어가고 있었다.

대파는 내가 좋아하는 식재료라서 여기저기 많이 쓴다.

남들은 그냥 육수 내는 정도로 쓴다고 하지만 나는 찌개에 들어간 대파도 다 건져 먹을 만큼 대파를 좋아한다. 특히 떡국을 끓일 때는 떡국인지 대파국인지 헷갈릴 만큼 심하게 많이 넣기도 한다.

저 대파가 더 뻣뻣해지고 맛 없어지기 전에 얼른 정리해서 냉동실에 넣어야 하는데 엄마도 나도 바쁘다 보니 자꾸 차일피일 미루게 됐다.

그 사이 대파는 '장성'해 있었다.

안 보면 잊힌다는 그 말, 나는 또 새삼 체험했다.

친정에만 가면 대파 생각을 했다가 집에 오면 잊어버리고 마트에 가서 대파를 볼 때면 가서 대파 뽑아야지 하다가 잊어버리고 다시 친정에 가면 다른 일만 하다가 또 깜빡하는 것이다.

친정 집에 있는 것을 다 뽑아서 우리 집 화분에 옮겨 심어야지, 그래서 오랫동안 두고두고 먹어야지 이런 철없는 욕심까지 다 냈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갈 때 대파 가져가라."

엄마는 마침내 결심을 하셨던 거다.

대파는 다 뽑혔다.

"근데 이거 안 질길까?"

주는 대로 먹기나 할 일이지 말도 많은 딸이다.

"보기에만 그렇게 보이제 맛만 좋더라. 하나도 안 뻣뻣해."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늦은 때란 없다.

아마 없을 거다, 적어도 대파에 한해서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그나마' 빠를 때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뽑아 버릴 때다.

대파는 시도 '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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