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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May 18. 2024

촌수저의 '오픈런'

나만 하는 오픈런

2024. 5. 9.

<사진 임자 = 글임자 >


"너 머위 나물 좋아해? 나 머위 많이 가져왔는데 너랑 나눠 먹을까 하고."

그날도 나는 친정 이바지를 친구에게 나눔 할 생각으로 살짝 욕심을 부려 최대한 많이 챙겨 왔다.

"양잿물만 빼고 난 다 좋다니까!"

라고 늘, 언제든, 내가 주는 무엇이든 환영하는 친구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친정에 가서 오랜만엔 '채취'를 했던 날이다.

나는 나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것도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그것을 남에게도 자주 권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특히 같은 동네로 이사 온 친구에게 말이다.

머위 나물은 일단 베어서 위쪽 잎사귀 부분은 떼어내고 줄기만 남기고 삶은 후 껍질을 벗기든, 껍질을 벗긴 후 삶든 어쨌거나 손이 많이 가는 편이지만 그런 번거로움을 감안하고라도 무조건 욕심내고 싶은 식재료다.

지난번에 먹을 때보다 며칠 더 자랐다고 통통해진 그 줄기를 보자 나눠먹어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시가 갈 때 내가 머위 나물 해서 줄게 갖다 드릴래?"

엄마는 지난주에 내가 시가에 가겠다고 하자 직접 나물 만들어 줄 테니 좀 갖다 드리지 않겠냐고 하셨다.

나물 같은 건 사람마다 취향이 다른 법이니까, 혹시 시부모님이 안 좋아하실 수도 있으니까 그냥 안 가져가겠다고 했다. 나물을 좋아하시는 시어머니지만 시가에 갔을 때 머위 나물을 먹은 기억이 없었다. 취나물, 고사리나물, 고구마 줄기 나물 같은 건 많이 먹었지만 머위 나물은 없었다. 과연 좋아하지 않아서 안 드시는 것인지, 없어서 안 드시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리 엄마가 정성을 다 해 나물을 만들어 주셔도 만에 하나 안 드시면 그것도 천덕꾸러기가 될까 봐, 그래서 거절하고 말았다. 물론 엄마의 마음은 고마웠지만 말이다.

대신 머위 나물도 확실히 좋아하는 친구에게 보시를 하기로 했던 것이다.

봄이면 볼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고 지천에 수확할 것은 더욱 많다.

물론 다 내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내 것은 하나도 없지만 말이다.

평소에도 친정에 가는 게 좋긴 하지만 이런 봄날에 친정에 가면 새파란 것들로 뒤덮인 산이 좋고 삐쭉빼쭉 이제 막 돋아난 싹들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하필 올봄에는 한창 들판과 산을 누비고 다닐 시기에 몸이 안 좋아서 거의 한 달 동안 그렇게나 좋아하는 일들을 못 해본 게 한이 다 맺혔다.

내 낙이라면 그런 건데, 남들은 다른 종류의 오픈런을 한다지만 나는 봄이면 뭔가를 해 내려고 친정으로 오픈런을 하곤 했는데, 올봄은 참으로 아쉬움이 많았던 계절이다.

지금도 몸이 아주 편한 건 아니지만 그날도 그놈의 욕심 때문에, 그동안 풀지 못한 '한' 때문에 조바심이 나서, 더 더워지기 전에 사방을 누비고 다녔던 것이다.


오픈런까지는 사실 안 해도 된다.

자연은 언제나 열려 있다.

굳이 욕심 가득 차서 새벽같이 일어나 득달같이 달려들지 않아도 좋을 일이다.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들르는 곳, 나를 이만큼이나 잘 키워 준 곳, 그냥 그곳에 안기고 싶은 마음에 자꾸만 발길을 향하는 것이다.

이래서 나는 어쩔 수 없는 촌수저인가 보다.

불현듯 그런 생각도 들었다.

시골에서 태어난 게 가장 큰 복 중의 하나라고 항상 믿는 나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수저는 바로 '촌수저'라고, 다이아몬드 수저도 능가하는 것이 '촌수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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