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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un 04. 2024

공무원들은 왜 그렇게 야구를 좋아할까

자주 야구장  갔으면 좋겠다

2024. 6. 3.

< 사진 임자 = 글임자 >


"나, 다음 주에 친목 활동한다고 야구장 갈 것 같아."

"그래?"


 근래에 그 양반에게서 들은 가장 아름다운 문장이었다.

나는 또 그렇게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 헛살지 않았어.

나도 분명히 전생에 지은 복이 하나라도 있긴 있어.

있겠지?

있을 거야.

있어야 해.


"그런 싫어하는 사람이 또 억지로 가게 생겼네. 어떡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렇게 말하는 얼굴은 세상 기쁜 마음을 감출 수는 없었다.

그냥 좋았다.

늦을 거라는 얘기에 좋았다.

그것도 자그마치 밤늦은 시각에 귀가할 거라는 암시에 오래간만에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하지만 그런 내 속마음을 누구에게 들켜서는 아니 된다.

"다음 주는 비 예보도 없던데 어떡해? 할 수 없이 끌려가게 생겼네. 안 됐다."

"진짜 가기 싫은데."

"안 가면 안 돼?(=제발 가줘.=무조건 가줘.)"

"아마 빠지기 힘들 거야. 윗사람부터 다 가는데 내가 어떻게 빠져?"

"가기 싫으면 안 가면 되지 윗사람이면 다야? 하여튼 공무원들 야구 좋아해. 걸핏하면 여기나 거기나 야구장 가재. 좋아하면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나 갈 것이지 싫다는 사람을 왜 억지로 데려가려고 그래? 너무하는 거 아니야? 안 간다고 말이나 해 봐."

내가 말하고도 너무 멀리 간 거 아닌가 싶었으나, 이러다가 그 양반이 정말로 중대발표를 해버리면 어쩌나 잠시 아찔해지기도 했지만, 이미 뱉어버린 말이었다. 그냥 그 양반 장단이나 맞춰주자고 한 말이었다. 가기 싫다는데 억지로 끌려가야만 하는 운명에 놓인 가엾은 그 양반을 위로하는 셈 치고, 그러니까 그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입에 발린 소리 한다.'라고 한다지 아마?

"진짜 큰 일 있는 거 아니면 절대 못 빠질 거야."

"결혼한다고 해, 그날. 결혼한다고 하면 빼 주겠지."

"아마 그래도 안 빼줄걸? 갈 확률이 커."

당연히 그래야지.

100% 가야지. 남들 다 가는데, 그 윗분도 행차하신다는데 무조건 따라나서야지. 야구를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 개인의 기호와는 전혀 상관없이 '친목 도모'를 위하여 가야지.

"무슨 사람들이 야구 보러 가면서 친목 활동한다고 하나 몰라. 나도 옛날에(분위기상 또 기원전 5,000경 내 과거를 끄집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난데없이 내가 일을 그만둔 일에 대해 또 되새김질하면서 염장을 지를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이미 다 끝난 사안이었지만, 그래도 마침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이었을 뿐이다, 그냥) 첫 발령받고 면사무소 갔는데 출근한 지 며칠 만에 갑자기 단합 대회 하자고 전 직원 야구장 가자고 하더라. 난 갔다 오면 한 밤 중 될 텐데 야구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급히 추진해 가지고 무조건 빠지지 말고 강제로라도 가야 한다고 그러면서 말이야. 그렇게 일방적으로 몰아부치는 거 정말 싫었어.."

"그랬어?"

"그랬다니까. 그땐 신규자라 가기 싫다는 말도 못 하고 제발 비나 쏟아지라고 빌었다니까. 근데 알고 보니까 나만 빼고 다 야구 좋아했나 봐. 안 가겠다는 사람이 없었어. 그전부터 다들 그렇게 다녔대, 직원들이랑 친목 활동 차원에서. 근데 나는 이해 안 되더라. 야구장에서 무슨 친목활동을 해? 그냥 핑계 아니야? 자기들이 가고 싶으니까 그런 것 같던데."

"당신이나 나나 야구 별로 안 좋아하지 좋아하는 사람 많아."

"그러니까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만 가면 되는 거 아니야? 이왕이면 다 같이 좋아하는 거 하면 좋잖아. 하긴 의견 일치 보기도 힘들긴 하겠다. 나는 야구도 안 좋아하고 술도 안 좋아하고 사람들 많고 시끄러운 것도 질색인데, 집에서 조용히 혼자 책이나 보면 좋겠던데 말이야."

"나는 작년에도 몇 번이나 갔는지 모르겠다. 그전에 학교에 있을 때도 가고."

"하긴 전에도 매년 한 번 이상씩은 간 것 같긴 하다. 말이 좋아 친목 활동이지, 그런 거 싫어하는 사람은 오히려 의만 상하겠어. 안 그래?"

"근데 그런 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더라."

"하여튼 공무원들 야구 좋아하는 것 같다니까. 차라리 축구를 보러 가자고 하면 가겠다. 다른 면사무소 발령 났을 때도 직원들이 또 야구장 가자고 막 추진하고 그랬었는데 말이야."

'야알못'인 나는, 야구에 문외한인 나는, 정말 야구는 재미가 없었다.

뭘 알아야 재미도 있는 것인데 모르니까 재미가 있을 리가 있나.

이 정도 위로해 줬으면 됐겠지?

"아무튼 안 됐지만 잘해 봐."

"하여튼 언제 야구장 간다는 것만 알고 있어."

"그럼 갔다 오면 늦겠네?"

"응."

"좀 많이 늦겠네?(=이게 웬 횡재냐)"

"아무래도 그렇지. 경기도 밤에 끝나고 다시 집에 운전하고 오려면 밤 10시나 11시 되지 않을까?"

세상에, 이렇게 기쁠 데가!

"나 그날 늦을 거니까 그리 알고 있어."

"그래, 걱정 마. 몰라도 알고 있을 테니까. 천천히 와, 최대한 천천히. 들어올 때 요란하게 들어오지 말고."


옛날에 나보고 야구장 가자고 할 때는 야구를 철천지 원수 보듯 하였는데 그 양반 직원들이 단체로 이렇게 나를 위해 주니 이보다 더 흡족할 수가 없다. 전 우주가 나를 돕는구나.

내 친구 중에는 남편이 빨리 퇴근해서 집에 왔으면 하는 친구도 있는데 나는 정말 그 친구가 이해되지 않았다.

집에 시도 때도 없이 분유 먹여야 하는 신생아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하루에도 몇 번씩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는 아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내 기억에는 못마땅했던 친목활동, 그러나 지금은 남의 일이라 반가운 친목활동, 앞으로 그런 친목활동은 더 자주 했으면 좋겠다.(고 그 양반 몰래 비나이다, 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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