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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un 12. 2024

거실의 질풍노도

스파티필름의 정체를 생각하며

2024. 6. 11.

< 사진 임자 = 글임자 >


"진짜 신기해. 이런 식물들도 해를 다 따라 가나 봐. 스파티필름이 완전 누웠네."

"엄마, 그거 다 시들어버린 거 아니야?"

"시든 게 아니라 한쪽만 햇볕을 계속 쬐서 그런 것 같아. 이파리에 힘이 있잖아. 시든 거면 이파리에 힘이 없거든."

"그렇네, 정말."

"해바라기가 해를 따라가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잖아. 스파티필름도 마찬가지네. 전생에 해바라기였나 봐."

"그럴 수도 있겠다. 근데 저렇게 비뚤어졌는데 어떡해?"

"화분 방향을 반대로 돌리면 되지. 그럼 어느 정도는 일어나겠지?"

"아, 그럴 수도 있겠다."

"엄마가 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거든. 가만 보면 다른 화분들도 해가 많이 비치는 쪽으로 기울더라."

"엄만 별 걸 다 아네."

"그냥 키우다 보니까 알게 됐어."

"그렇구나."

"식물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하던 대로 하고 있던 대로 있고, 이런 습관이 진짜 무서운 것 같아. 한 번 그쪽으로 기울어지면 쉽게 돌아오기 힘들잖아. 아마 저건 오랜 시간 동안 저렇게 굳어진 걸 거야."

"하긴 그렇겠다."

"처음엔 눈에 띄지도 않았을 거야. 그치?"

"아마 그렇겠지?"

"그런데 날마다 저렇게 같은 위치에 계속 두니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저렇게 거의 누워버렸잖아."

"그러게. 처음엔 저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엄마도 물 주면서 자세히 안 보니까 잘 몰랐지, 처음에는."

"엄마가 너무 건성으로 물 준 거 아니야?"

"그랬을지도 모르지. 크게 관심을 주지 않으면 놓치게 되는 것들이 있긴 하거든."

"저게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그럼!"

"엄마가 어떻게 알아? 확실해?"

"거의 확실해. 전에도 몇 번 그런 적 있었다고 했잖아."

"그런 것 같기도 하네."

"엄마 경험상 저랬다가도 방향 바꿔주고 한 위치로 오래 두면 다시 가운데로 서 있어."

"하긴 다시 해를 보려고 따라갈 테니까."

"그렇지."

"이제 자주 확인해 봐야겠네."

"혹시 관심받고 싶어서 누워버린 건 아닐까?"

"에이, 엄마 그게 말이 돼?"

"식물도 다 감정이 있다고 했어. 엄마가 자기한테 좀 소홀한 것 같으니까 신경 좀 쓰고 관리해 달라고 그런 건 아닐까? 혹시 스파티필름한테 사춘기 온 거 아니야? 그래서 비뚤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엄마는 하여튼! 식물이 무슨 사춘기야?그런 걸 믿어?"

"당연히 믿지. 과학 실험으로도 밝혀졌어."

"그런가?"

"아무튼 생명이 있는 건 아마 다 감정이 있을 거야. 엄마가 유난히 더 신경 쓰는 식물은 더 잘 크는 것도 같더라니까. 사람하고 똑같아. 다를 게 없어."

"뭐, 그럴 수도 있겠네."

"전에 엄마가 어디서 들었는데 식물한테 계속 예쁘다고 말하고 쓰다듬고 사랑한다고 좋은 말만 한 거랑 안 좋은 말만 하고 방치한 거랑 완전 달랐대. 좋은 말을 들은 식물은 더 싱싱하게 잘 자라고 안 좋고 부정적인 말만 들을 식물은 나중에 시들시들해졌다가 말라죽었대."

"그래? 정말 신기하네."

"그게 식물도 다 감정이 있다는 증거 아닐까?"

"그런가?"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동물한테도 클래식 음악 들려주고 키운다잖아. 전에 엄마가 어디 가니까 소 키우는 축사에서 노랫소리가 들리더라. 소들한테 노래 들으라고 그랬나 봐. 소만 그런 게 아니야."

동물들이 호강하네."

"닭 키울 때도 그런 사람들 있어, 요즘엔. 그런 환경에서 자란 닭고기는 맛도 더 좋다잖아."

"갑자기 먹는 얘기네."

"그런 실험  결과가 있더라 이 말이지. 그렇게 자란 동물들이 더 강하게 잘 자랐다잖아. 그것도 실험으로 밝혀 낸 거야."

"엄마는 하여튼 실험 좋아하더라."

"어느 정도 입증이 됐다는 말이잖아. 그러니까 신뢰가 가는 거지."

"하지만 다 똑같진 않겠지."

"그래도 어느 정도는 맞을 수도 있겠지. 엄만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럴 수도 있지."

"아무튼 저 화분을 보니까 습관이 무섭단 생각이 들었어. 사람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한 번 비뚤어졌다고 해서 평생 비뚤게 살아야 하는 건 아니야. 엄마가 하고 싶은 말은 그거야. 식물도 다시 자리 잡을 수 있는데 사람은 더 잘할 수 있겠지? 그래서 말인데 우리 합격이도 만에 하나 나중에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을 때는 그걸 알아차리고 다시 바로잡으면 되는 거야. 한두 번 일이 틀어졌다고 해서 너무 실망하거나 좌절할 필요는 절대 없어."

"알았어요."

"어차피 사람 사는 게 마음먹은 대로 다 되는 건 아니잖아. 살면서 실수도 할 수 있고 잘못된 일을 할 수도 있는 고야. 그러니까 사람인 거야, 신이 아니라. 기울기도 하고 쓰러지기도 하고 다시 일어나기도 하고 그런 거 아니겠어? 그리고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면 엄마나 아빠한테 도움을 청해도 돼. 그럴 때 너희를 도와주기 위해서 엄마랑 아빠가 있는 거니까."

"응. 나중에 모른 척이나 하지 마요."

"걱정 마. 우리 딸, 아들 일이라면 엄마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테니까."

"엄마는 잠귀가 밝아서 그럴 것 같긴 한데, 아빠는 잘 안 일어날 것 같은데?"

"엄마가 모든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서 깨우면 되지. 다 방법이 있지. 아무튼 너희한테는 항상 엄마 아빠가 있다는 걸 잊지 마."

"네, 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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