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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un 13. 2024

그런 식으로 살림 합치는 거 아니야

뚫려 버렸다

2024. 6. 11.

< 사진 임자 = 글임자 >


"얘들아, 스파티필름 뿌리가 화분 밑바닥까지 나와버렸어."

"진짜네. 어떻게 저렇게 자랄 수가 있지?"

"엄마가 고무나무 화분이 크고 저건 작아서 그냥 고무나무 화분 빈 공간 남는 곳에 놔뒀거든. 그랬더니 저렇게 됐어."

"신기하다."

"그러게. 화분 바닥이 뚫려 있으니까 가능하겠지?"

"그럼 이제 어떻게 해?"

"어떻게 하긴. 그냥 뿌리를 조금 잘라 주든지 따로 키우든지 해야겠지."


집에 화분이 너무 많이 늘어나는 바람에(=식물 키우는 재주가 있다고 확신한다, 물론 간헐적으로.) 화분들이 어떻게든 바닥에 공간을 덜 차지하게 하려고 나름 머리를 굴려서 한 게 화근이었다.

스파티필름이 너무 창가 쪽으로 드러누워서 위치도 옮기고 잎도 샤워시키면서 물도 줄 겸 해서 무심코 화분을 들어 올렸다가 거실 한쪽을 초토화시키고 말았다.

별생각 없이 전처럼 그냥 화분만 가뿐히 들어 올려서 물을 줄 생각이었다.

크기가 크지 않기 때문에 종종 욕실로 들고 가서 샤워기로 물을 살살 뿌리면서 잎사귀 먼지도 닦고 물도 주면서 관리하던 거였다. 그 화분은 그나마 다른 화분들에 비하면 작고 그렇게 무겁지도 않은 편이라 생각날 때마다 그런 식으로 키워왔었다.

그런데 이번엔 화분을 집어 드는데 뭔가 느낌이 달랐다.

그냥 드는 대로 위로 올라와야 하는데 중간에 잠깐 멈칫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단순하게 위로만 들 생각을 하고 그대로 실행에 옮겼을 때 고무나무 화분 표면의 흙들이 사방팔방 튀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저 작은 화분 밑에 뭔가 대롱거렸다.

물론 흙무더기와 함께 말이다.

내가 잠시(잠시라고는 하지만 조금 게을러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소홀히 한 사이 남몰래 스파티필름 뿌리가  고무나무 화분 흙속으로 파고들고 있었던 것이다.

2024. 6. 11

처음에는 거실 바닥에 놓고 키웠었는데 바닥 청소를 할 때 잠깐 고무나무 화분 위로 옮겨 놓고 하다 보니 거기 그대로 올려놓고 키우는 것도 나름 괜찮겠다 싶었다. 고무나무 화분은 내가 두 팔로 감싸 안아도 양쪽 손끝이 닿을까 말까 할 정도로 꽤 큰 것이었다. 어차피 고무나무가 심어져 있는 가운데 부분 말고는 나머지 부분이 휑한 것도 같아서, 그 위에 작은 화분들을 올려놔도 괜찮을 것 같아서, 그러면 바닥에 너저분하게 늘어놓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그렇게 하기 시작한 게 발단이었다. 호야도 놓고 레몬밤도 놓고 바질도 올려 뒀었다.

그렇게 놓고 키우다가 고무나무에 물을 줄 때면 먼저 그 위에 놓인 작은 화분들에 먼저 물을 주면 어차피 그게 다시 고무나무로 흘러들 것이니까 조금은 수고로움을 덜 수도 있는 것 아니겠냐며, 내가 생각했지만 그런 발상을 한 내가 너무 대견한 나머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얘들아, 봐봐. 여기 화분에 물을 주면서 엄마는 동시에 고무나무에도 물을 주고 있는 셈이야. 이런 게 바로 '일석이조' 아니야? 어때?"

아이들은 시큰둥한데 나 혼자만 신이 나서 자꾸만 아이들을 부르기도 했다.

더부살이(?)이긴 하지만 한 집에서 같이 사이좋게 살아보라며 고무나무 화분 위에 얹힌 올망졸망한 그것들을 보며 나는 얼마나 뿌듯해했던가.

그러나 그 뿌듯함의 말로는 거실에 흙세례를 퍼붙고야 말았다.

스파티필름은 키울수록 정말 눈감고도 키울 수 있을 만큼 힘들이지 않고 기를 수 있었고 분갈이를 할 때마다 느끼는 거였지만 정말 번식을 아주 잘하는 편이었다.

여기저기 나눔 할 요량으로 종종 그 풍성한 뿌리를 보며 분갈이를 할 때마다 혼자만 흐뭇해하던 내가 후회스러울 지경이었다, 오죽하면.

뿌리가 제법 고무나무 화분 흙 속으로 깊이 파고든 것 같았다.

내가 들어 올려서 그나마 뿌리가 끊긴 거였다.

무슨 연리지도 아니고 왜 고무나무랑 그런 식으로 합가를 하려고 하는 건지...


정말 생각도 못해 본 일이었다.

작은 화분 구멍 아래로 스파티필름이 뿌리 내려서 고무나무 화분까지 침투하리라고는.

일 좀 덜 수고롭게 하려다가,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요령을 피우다가 나는 그만 그 과보를 받고 말았던 것이다.

지은 인연의 과보는 피할 수 없다더니, 나는 한동안 거실을 쓸고 닦고 쓸고 닦는 일을 무한정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렇지.

그런 식으로 은근슬쩍 살림을 마음대로 합치면 안되지.

너희 사이 내가 인정하지 않는다고.

신중해야 해.

내가 허락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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