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스파티필름은 우리 집에서 가장 개수도 많고 잘 크고 있으며 별 탈도 없다. 벌써 8년이 다 되어가는데 처음에 하나였던 화분이 종종 분갈이를 해서 지금은 넘쳐날 지경이다. 우리 가족이 사는 집에 그들이 들어온 게 아니라 스파티필름이 사는 집에 우리 집 멤버들이 들어와 사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내가 식물을 좋아한다고 해도 자꾸만 번식하는 그들을 다 감당할 재간은 없다.
거실 창쪽에 늘어놓기는 너무 많아서 여기저기에 서 너 개씩 분산시켜 놨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또 번식할 텐데 이쯤에서 다시 나눔을 할 필요성을 느꼈다.
마침 친구가 우리 동네로 올봄에 이사를 왔다.
집들이 선물로 화분을 생각해 냈다.
솔직히 전에 내가 그 친구에게 준 화분들을 잘 건사하고 있는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 적이 없으니 살짝 못 미더워서 미리 간 화분들이 무사한지 안부를 물었던 거다.
주는 게 아까워서가 아니다, 절대.
다만 나는애지중지 키운 화분들이 새로 간 집에서 관심도 못 받고 시들어질까 봐 그게 다소 걱정되었을 뿐, 다른 의도는 전혀 없었다.
이왕이면 받아서 잘 키워 줄 사람에게 나는 보내고 싶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그들이 별 탈 없이 잘 지내는지 불쑥 물어봐도 허물없이 확인할 수 있는 그런 사이의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보내고 싶었다. 줬으면 그만이지 웬 간섭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같이 산 정이 얼만데? 솔직히 잘 있는지 종종 생각날 때가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 친구가 낙찰됐다.
다행히 친구의 7살 딸이 물도 주며 관리를 도맡아서 잘하고 계신단다.
그래, 나는 그런 식집사를 원했어.
어쩔 땐 아이들이 더 세심하게 살필 수도 있는 법이니까 친구보다는 그 친구의 딸을 믿고 결심했다.
이번에도 보낼 화분이 두 개다.
막 꽃봉오리가 올라오는 참이다.
화분 하나에 각각 한 그루씩이라 화분 크기에 비해 좀 휑해 보일지 몰라도 몇 달만 지나도 풍성해질 예정이니까 그 점을 감안해 달라고 친구에게 미리 말했다. 받아가자마자 분갈이를 해야 할 일이 생기면, 그러다 자칫 잘못해서 사고라도 날까 봐 말이다.
친구가 보내 준 증거 사진을 보니 처음엔 좀 빈약해 보인다 싶게 심은 스파티필름이 몇 달 만에 화분을 꽉 채운 느낌이었다.
요단강을 건너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내가 불시에 중간점검 잘 거야. 긴장하고 있도록!."
한번 줬으면 이미 내 손을 떠났으니 미련을 버리고 친구에게 맡겨야 하는데 나는 그게 또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러면서 또 물색해 본다. 믿음직한 이가 주위에 누가 있을까, 하고 말이다.
내 잔소리를 가뿐히 흘려들으면서 데리고 간 생명들을 잘 보살펴 줄 수 있는 그런 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