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임자 Jun 23. 2024

괜찮아, 나 말고 세 명이나 더 있어

그 중에 나만

2024. 6. 22.

< 사진 임자 = 글임자 >


"이상하네, 왜 가방이 없지?"

나의 반려 카트를 아무리 뒤져도 가방이 안보였다.

"엄마, 도서관에 두고 온 거 아니야?"

딸은 귀신같이 추리해 냈다.

"설마 그랬을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말 '설마'가 사람을 또 잡았다, 제대로.


혹시나 싶어 거실 바닥을 뒤지고 다시 한번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이 잔뜩 들어있는 카트를 샅샅이 뒤졌다.

뒤질수록 엄습하는 불길한 예감이라니. 없는 것이 뒤진다고 나올 리가 있나.

그렇다면 딸 말마따나, 아니 확실히 거기에 두고 온 것이 틀림없을 터였다.

"진짜 도서관에 두고 왔나 봐."

현관에서 황망해하며 혼잣말을 했다.

"엄마, 그걸 거기 두고 오면 어떡해?"

거실에서 아드님이 그렇잖아도 어이없어하는 내게 기름을 골고루 들이부어주셨다.

만에 하나, 행여라도 열린 문 틈 사이로 진작에 퇴근하신 그 양반이

"얘들아, 무슨 일이야? 너희 엄마가 또 무슨 일 저질렀어?"

라고 몇 마디 던지기 전에 그럴 땐 잽싸게 집에서 나오는 게 상책이다.

가끔 어떤 영상에 빠져있는 상황이 다행스러울 때가 있다.

고마울 때가 다 있다.

그 양반은 지금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관심도 없고 들리지도 않은 눈치다.

뭔가에 빠져 있는 게 틀림없다.


현관문 밖에서 우선 도서관에 전화부터 했다.

거기 아니면 있을 곳이 없었다.

오픈런이 아니라 '클로즈런'이라도 해야 할 것만 같다.

도서관이 문 닫기 전에 해결해야만 한다.

"제가 좀 전에 도서관에 갔는데 거기 가방을 놓고 온 것 같은데 혹시 확인 좀 해 주실 수 있나요?"

급한 대로 일단 거기 무사히 있는지라도 확인하고 싶었다.

"아..."

직원은 (물론 내 느낌상이지만)선뜻 내켜하지 않았다.

물론 내가 가서 직접 확인해야 맞지만 너무 급한 나머지 전화부터 한 거였다.

"죄송한데 한 번만 확인해 주세요. 손바닥만 한 파란색 가방인데요. 크로스백처럼 생겼어요."

물론 미안한 마음은 있었다.

도서관은 절대 한가한 곳이 아니므로.

나는 직원이 찾아보지도 않고 무조건 없다고 할까 봐 조바심이 다 났다.

굳이 일어나 가보지 않아도 직원들이 앉아 있는 곳에서 보면 다 보일 그 위치의 책상 위에 내가 가방을 두고 왔기 때문에 (물론 내 기준에서만) 그런 건 일도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내 입장에서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는 일 아닌가 하고 말이다.

사람은 이렇게(아니  어쩌면 나만)자기중심적이다.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직원과 나는 찰나의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가방 색깔이 파란색 맞습니까?"

"네, 맞아요."

"가방에 끈이 있나요?"

"있어요."

"끈이 무슨 색입니까?"

"노란색인가? 파란색인가? 아마 노란색일 거예요."

"크기가 어느 정도입니까?"

"손바닥만 해요. 안 커요."

"오셔서 직접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네, 지금 바로 갈게요."

직원이 나를 약간 미심쩍어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는 듯이 말이다.


단숨에 달려간 도서관에서 반가운 그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였지만 그렇게 내 속을 태우던 그 가방은 그러나 손바닥만 하지도 않았고, 줄 색깔이 파란색도, 노란색도 아니었다. 몇 년을 가지고 다닌 것이었는데 그렇게도 나는 몰랐다.

크기는 손바닥을 활짝 편 것보다도 더 컸고, 줄 색깔은 어이없게도 녹색이었다. 다만 길이를 조절하는 플라스틱 부분이 살짝 노란색이었다. 내 것을 내가 제대로 설명도 못하다니.

어쩐지 그 직원이 내 말을 못 미더워하더라니.

"괜찮으니까 한 번 가방을 열어 보세요. 맨 바깥 위쪽 지퍼를 열면 집 키가 있고 아래쪽을 열면 검은색 차 키가 있을 거예요. 가운데를 열면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고 요것, 조것 다 있어요."

라고 하마터면 열과 성을 다 해 설명할 뻔했다.

그렇게 샅샅이 잘 아는 사람이 가방 주인인 나 밖에 더 있겠냐고 항의라도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 가방의 줄 색깔도 모르는 주인일 뿐이었다.

시조카가 쓰던 가방인데 둘째 시누이가 우리 아이들 쓰라며 거의 새것이나 다름없는 것을 주었다, 그것도 두 개나 말이다.

하지만 남매는 그것을 수락하지 않았고 나는 옳다구나 내가 써야겠다 하면서 번갈아 쓰고 있는 중이었다. 시장을 갈 때나 도서관을 갈 때나 친구를 만날 때에도 항상 내 반려 가방이 되어주었다.

"애들이 쓰던 건데 왜 그런 걸 써?"

그 양반은 별 걸 다 못마땅해했지만 애들이 쓰든 어른이 쓰든 가방으로서의 역할만 하면 되는 것이지, 게다가 완전 새 거나 다름없었는데 우리 아이들이 하필 안 쓰겠다고 하는데 버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나는 물건을 굳이 따져가며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단지 내가 쓰고 싶으면, 용도에 맞으면 쓸 뿐이다.

그 가방을 쓰기 전에는 신혼여행 가서 쓰려고 시장에서 급히 산 가방을 10년도 넘게 쓰고 있었다.

가방이 썩질 않으니 버릴 수가 없었다.

내겐 실용적이면 그만이었다.

변명하자면 그렇다.

시누이가 그 가방을 주지 않았다면 아직도 그 가방을 쓰고 있었을 것이다.


"저, 가방 찾으러 왔는데요."

잃어버린 물건만 찾고 최대한 빨리 바로 자리를 뜨려는데 직원이 나를 붙잡았다.

"여기 분실물 대장에 한 번 적어 주세요."

그 사이에 대장이 작성되었나 보다.

이름과 연락처를 남기며 슬쩍 위칸을 보았다.

나 말고도 같은 날에 뭔가를 잃어버린 사람이 세 명이나 더 있었다.

이렇게 반가울 데가!

역시 난 혼자가 아니었어.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세상은 넓고 나 같은 사람은 또 있어.

나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은 아직 아무도 찾아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루에 4건이나 그런 일이 있었으니 직원도 성가셨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돈도 천 원이 끼워져 있는 걸 보니 돈을 잃어버린 사람도 있는가 보다.

다급하고 황당한 마음은 오간데 없고 느닷없는 뿌듯함이 밀려들었다.

내가 비록 건망증이 심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잃어버린 물건을 바로 알아채고 이렇게 다시 되찾았어.

그 정도면 양호해, 양호한 거야.

결정적으로 나만 그런 것도 아니잖아?

동시에 안도했다.

내내 지저분한 가방을 들고 다니다가 미리 세탁해 둔 다른 것으로 최근에 바꿔 들기를 잘했다고, 최소한 때가 타서 더러워 보이는 가방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서.

다시금 되새겼다.

이래서 사람은 평소에 깔끔하게 하고 다녀야 해.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작가의 이전글 증거 사진을 받고 보내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