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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un 24. 2024

근평을 잊지 말아요

내조라고 부를 수 있을까

2024. 6. 23.

 < 사진 임자 = 글임자 >


"근평 했어?"

"아, 맞다."

"지금쯤 해야 하는 거 아냐?"

"아마 그럴걸. 하라고 한 것 같은데 너무 바빠서 깜빡했다."

"그럴 줄 알았어. 바빠서 생각도 안 하고 있었지? 어차피 할 거 해야지. 나나 되니까 알려 주는 거야. 나밖에 없지?"


뜬금없이 나는 생색을 다 냈다.

(편)의 근평이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정작 직장인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신경도 못쓰고 있었는데 나 혼자만 벼르고 있었다. 그 양반이 집에 오면 다짜고짜 근평에 대해 토킹 어바웃 해봐야겠다고.


7월은 정근수당이 나오는 날이라 은근히 신경 쓰고(=기다리고) 있고, 6월은 근평이 있기 때문에 또 나 혼자만 남몰래 신경 쓰는 중이었다. 내가 평가하는 것도 아니고, 내 근평도 아니지만 그래도 집에서 내가 이 정도는 신경 써 줄 수 있는 일이 아닌가 하면서 말이다.

그 양반이 매우, 심히, 극도로 바쁜 관계로 깜빡할까 봐 슬쩍 말해본 것이었다.

"보통 6월 중순에 내라고 하잖아. 나도 그쯤에 냈던 것 같은데 거긴 별 소식 없었어?"

"그러고 보니까 하라고 한 것 같기도 하다. 너무 바쁘니까 신경을 못썼네. 얼른 해야겠다."

"아무리 바빠도 할 건 하고 내라는 건 얼른 해서 내야지. 난 자료 내라고 할 때 제때 안 내는 사람이 제일 싫더라."

"그래야지. 월요일에 가서 해야겠다."

결코 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단지 부부라는 이유로 아내가 남편의 할 일을 대신할 수만 있다면 옆에서 뭐라도 거들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애초에 직렬이 달랐던 과거의 우리는, 아니, 지금의 나는 그 양반의 업무에 대해서는 문외한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아무리 부부라지만 함부로 남의 일에 발 들이는 것도 아니다.

벌써 2년째 아주 바쁜 직장생활을 하시는 그 양반에게 뭐라도 내가 대신할 수 있다면 해 줄 의향은 충분히 있었다. 물론 한글만 알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그런 수준의 일감이라야 할 것이다. 물론 그런 일이 아니라면 내 차지가 될 일도 없을 것이고 말이다.

부부 좋다는 게 뭔가?

서로 도울 일이 있으면 돕고 한 사람이 너무 바쁠 때는 잠깐 손도 넣어주고 그러는 거지.

지난 주도 어김없이 금요일까지 정신없이 일하고도 일요일 저녁에도 일하느라 초췌해진 그 양반을 위해 '참고하시라고' 근평에 주관적인 내 의견을 동반한 '사실'을 세세한 사연으로 첨부해 주고 싶을 지경이다.

근평 시기마다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평가를 하는지 그때도 몰랐고 지금도 모르겠는 나는 다만 휴일에도 전혀 나태하지 않게 그 양반이 1년이 넘도록 살고 있음을 살짝, 그러나 대놓고 언급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우리 집 멤버들만 보는 광경이고 전혀 참고하지도 않을 사항이지만 말이다.

"상기인은(공무원들을 저런 말을 잘 쓰더라.) 현 부서로 발령받은 시점부터 현재까지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함으로써 휴일에도 담당 업무에 매진하는 책임감 있는 직원임을 (배우자만) 증명합니다."

라고 내가 입이라도 뻥끗할 수 있는 입장이라면 시도 때도 없이 팔불출이 되어 줄 수도 있었다.


솔직히 평소에는 나와의 사이가 항상 원만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공과 사는 구별되어야 마땅하므로 객관적인 입장에서(그래도 가족은 가족인데 객관적일 수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열과 성을 다해 주장하고 싶다.

막내라는 이유로, 마흔도 넘었지만 가장 어리다는 이유로 이리저리 치이는 상황에서 그것 좀 감안해 주십사, 나름 고충이 대단히 많은 양반이라고, 다들 겪어 봐서 잘 알지 않으시냐고, 막내의 설움 경험해 본 사람이 알아주지 않으면 누가 알아주겠냐고 구구절절 읊고 싶다.

그러나 내가 간절히 하고 싶은 한마디는 이것뿐,

아무 영양가 없는 내조는 단지 이것뿐,

'잘 좀 봐주세요~'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아부한다'라고 한다지 아마?

내 사전에는 평생 없을 것 같은 그 표현,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과거에도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고 앞으로도 아닐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게 저 말부터 나오려고 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만큼 서글픈 일이 없는데 그래도 가족이라도 알아주는 게 어디냐고, 직장에서는 몰라줘도(하지만 직장에서 알아줘야 하는데) 나라도 알아주면 다행 아니냐고 나 혼자만 단정 짓고 한 말씀 올린다.

오늘도 성실할 예정인 직장인이여, 내가 다 알고 있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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