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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un 25. 2024

경찰이 어떻게 알았지?

경찰은 나한테만 그래

2024. 6. 19.you

<사진 임자 = 글임자 >


"웬 경찰이 저렇게 많이 있지? 누굴 잡아가려고?"


아이들과 오랜만에 친정에 가는 주말 아침이었다.

겨우 오전 9시가 조금 넘었다.

좀 이르다, 고 나는 생각했다.

벌써, 이렇게까지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거리낄 게 없는 사람이었으므로 하나도 무섭지는 않았다.

다만 괜히 살짝, 위축되었다는 점은 분명히 인정하는 바이다.


"또 저기 경찰이 있네. 저번에도 있더니. 경찰 차도 두 대나 있어."

이젠 경찰이나 경찰차는 그다지 아이들의 관심을 끌만 한 대상은 아니었으나 토요일 아침 일찍, 그렇게 가까이서 경찰을 본다는 건, 흔한 일은 아니었다.

"엄마, 저기서 경찰들이 뭐 하는 거야?"

"아무래도 음주 단속하는 거 같은데? 사람들이 뭘 불고 있잖아."

"이렇게 아침부터 해? 아침부터 술 마시는 사람이 있어?"

"그거야 모르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음주 단속 같아."

내 앞의 차들이 서서히 멈추고 창문을 내리는 등 같은 행동을 하는 동안 나도 마음의 준비를 했다.

나는 전날 술도 마시지 않았고(술을 안 마신 지가 오백 년은 더 된 것 같았다.) 그날 아침에 이상한 발효 식품도 섭취하지 않았으며 언제 어느 때고 갑자기 불러 세워서

"한 번 불어 보시라."

라고 요구해도 당당했다.

그러나 이상하게 경찰 앞에만 가면 움츠러든다.

이건 비밀인데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고 한다. 물론 내 주위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이다.

태어나서 운전을 시작한 이래 두 번 정도의 음주 측정을 당해(?) 봤다.

평소 술을 입에만 대도 절대 운전할 생각도 하지 말라고 우리 집 양반을 단단히 단속해 왔다.(고 나는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게 말하는 나는 애초에 술 같은 건 좋아하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좋아할 일이 없을 것 같고 평생 만날 날이 없는 사이 같다.

마시지도 않은 술인데 당장 경찰이 눈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괜히 꿈에서라도 내가 한 잔 걸친 건 아닐까, 터무니없는 생각까지 든다. 음주 단속은 둘째치고 괜스레 내가 그동안 잘못한 것은 없나, 경찰 앞에 한 점 부끄럼 없다고 말할 수 있나, 쓸데없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세수하고 최대한 자연인의 얼굴로 나섰다. 이런 걸 고급 전문용어로 '생얼'이라고 한다지 아마?

단지 그날은 친정에 가는 길이었으므로 화장 같은 건 먼 나라 남의 나라 얘기였고 챙이 넓은 모자를 눌러쓰고 팔토시를 하고 얼굴이 타지 않도록 하는 천을 둘렀다. 그걸 뭐라고 이름 붙여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눈만 빼고 다 가렸다. 이런 나를 보고 어떤 이는 '전형적인 아줌마'라느니, '딱 김여사'라느니 했지만 아줌마든 아저씨든, 김여사든 박여사든 일단 안 타면 그만이었다.

누군지 못 알아보면 그만이었다.

너무 가려서 오히려 수상쩍어할까 봐 경찰과 가까워질수록 나는 모자챙을 접고 얼굴도 드러냈다.

앞 차가 볼 일이 끝난 것 같아서 나도 서서히 멈추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물론 창문은 진작에 저 지하까지 내린 뒤였다.

'갑자기 면허증을 요구하면 어떡하지? 그 사진과 이 얼굴이 왜 이렇게 다른 거냐고 따져 물으면 어떡하지?'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걱정을 다 하고 슬금슬금 다가갔다.(왜 드라마 같은 걸 보면 그런 장면이 왕왕 나오지 않던가, 공항에서, 혹은 길에서 신분증과 실물을 대조하며 불일치한다고.)

고백하건대 나는 음주 단속을 드라마로 배웠다, 사실.

경찰 바로 앞에 멈춰 섰을 때, 그러나 나는 뜻밖의 말을 들었다.

"그냥 지나가세요."

그는 단호했다.

아니 내가 들을 말은 그게 아니라

"한번 불어 보세요."

라야 맞는 거 아닌가?

"네?"

생각지도 못한 경찰의 말에 내가 놀라 되물었다.

"그냥 가시라고요."

사람 차별하는 거야?

왜 앞 차는 불라고 하고 나는 불지도 못하게 하는 거지?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하지만, 나는 경찰이 하라면 하라는 대로 말을 고분고분 듣는 대한민국의 운전자다.

미련 없이 액셀을 밟았다.

물론 창문도 하늘 끝까지 꼭꼭 올려 닫았다.


"엄마, 왜 엄마는 검사 안 해?"

아이들이 뒷자리에서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긴 왜겠어? 딱 봐도 엄마는 술 안 먹게 생겼잖아. 전형적인 모범 운전자, 안 그래? 경찰은 그냥 얼굴만 봐도 아나 봐. 그래서 엄마는 바로 통과시켜 줬나 봐."

"아, 그래?"

아이들에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혼자만의 짐작을 일장연설했다.

서, 설마 내 생얼을 도저히 못 봐주겠어서 얼른 보내버린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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