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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un 28. 2024

오오, 나는 당신께 건빵을 원하지 않았어요

그것도 100 봉지나

2024. 6. 26.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아빠 건빵 장사 해?"

현관에 넘쳐나는 건빵 봉지들을 보며 딸이 입을 못 다물었다.

"그럴 건가 봐. 아빠가 우리 몰래 건빵 팔 건가 봐."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많은 건빵을 사들인 건지, 나는 심드렁하게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속을 알 수 없는 양반이다, 살 수록, 겪을수록.

그러나, 적어도 나는 그 양반에게 건빵을 원하지는 않았다.

한 두 봉지도 아니고 박스째 배달 온 건빵이라니.

(군대에서 건빵을 준다는 흉흉한 소문을 들은 적은 있었지만 아직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군대라도 다시 가고 싶은 걸까?

설마?

그럴 리가?


"아버님 건빵 다 드셨나?"

"몰라. 드셨겠지?"

불과 이틀 전에 그런 대화(그런 것도 대화라면 말이다.)가 오갔다.

그 말을 꺼낸 것부터가 불길했다.

느닷없이, 난데없이, 뜬금없고 갑작스레 그 양반은 우리 부모님을 살뜰히 챙기신다.

"어머님 갖다 드려."

라든지

"아버님 드리면 되겠다."

라든지

"당신 집에 갈 때 가지고 가."

라면서 소소하게(가끔은 지나치게 소소해 굳이? 이런 걸 다?라는 생각이 들 만큼) 이것저것을 들이밀면서 말이다.

또 아무것도 모르는 남이 보면 장인, 장모에 대한 사랑이 대단한 줄로 단단히 착각할 것이다.

안 살아봐서 그런다.(고 나는 항상 주장한다. 안 살아 봐서 그래, 안 살아 봐서, 같이 안 살아 봐서.)

"아니야, 안 줘도 돼. 그러니까 그냥 사지 마. 우리 엄마 아빠 생각은 안 해줘도 돼. 절대 사지 마."

아마도 내가 그 양반에게 자주 하는 말의 8할은 저런 종류의 것일 것이다.

"내 생각은 해 주지도 마, 제발."

이라든가

"우리 집은 신경 안 써도 돼."

라든가

"우리 부모님은 알아서 사시니까 사위가 안 해줘도 돼."

혹은

"아무것도 안 해주는 게 도와주는 거야."

라든가 하는 그런 말들 말이다.


그러니까 건빵 100 봉지의 시초는 며칠 전이었다.

"아버님 건빵 다 드셨으면 주문할까?"

그 양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는 제지했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아니! 절대 사지 마. 없으면 그만이지. 뭘 또 사?"

"잘 드시는 것 같던데?"

"잘 드시는 게 아니라 있으니까 드시는 거야. 없으면 안 드셔."

"뭘 그래. 건빵 좋아하시는 것 같던데."

"좋아서 드시는 게 아니라니까. 갖다 주니까 드시는 거라니까. 안 갖다 드리면 안 드셔."

"아닌 것 같던데? 기다려 봐. 내가 또 주문해 줄게."

"기다리긴 뭘 기다려? 하지 마, 제발!"

"주문한다."

"하지 말라니까."

"주문했어."

이 인간이 정말!

그래도 100 봉지나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전에도 그런 전과가 있긴 하지만 이제 장마철이고, 여름이고, 괜히 한꺼번에 많이 샀다가 보관 중에 상태가 변할까 봐, 그래서 말렸던 거다.

그리고 우리 아빠도 건빵을 사달라고 하신 적은 단연코 한 번도 없다, 실수로라도.

안 사도 되는데 굳이 '또' 주문을 하시겠단다.

이미 하셨단다.

"할 거면 조금만 하지 또 양껏 한 건 아니지?"

그러나 입이 무거운 그 양반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그 침묵은 며칠 후 택배로 답했다.

"건빵 왔네? 내가 100 봉지 했어. 아버님 갖다 드려."

"조금만 하라니까 또 저렇게 많이 했어?"

솔직히 100 봉지는 적잖은 양이다.

뭐야, 설마 우리 아빠한테 팔아달라고 하기라도 할 건가?

 "아버님 많이 드시라고 해."

"저걸 언제 다 드셔? 여름에 많이 사는 거 아니라니까. 그냥 갖다 팔아. 우리 아빠가 맨날 건빵만 드시겠어? 그냥 아버님 보내 드린든가."

"우리 아빠는 됐어.(아버님은 막걸리만 확실히 좋아하신다.)그럼 스무 봉지 정도 남겨 놓고 드려. 나 회식 갔다 올게."

내 말은 가뿐히 흘려들으시고 그 양반은 자리를 떴다.

아니, 가기만 하고 안 와도 돼. 

왜 허구한 날 내 말만 안 듣는 거야?

나는 그 건빵을 고이 간직했다가 그 양반이 승진하는 날 사무실에 몸소 장바구니에 담아 가 직원들에게 한 봉지씩 나눠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바야흐로 사위와 처가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들의 관계의 재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위 사랑은 장모' -> '장인, 장모 사랑은 사위' -> '건빵 사랑은 사위'

그 양반은 이 시대의 진정한 장인 사랑꾼, 아니 건빵 사랑꾼인가, 그것도 아니면 나한테만 영원한 훼방꾼인가.

나는 이미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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