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임자 Jun 30. 2024

결국,,, 남편이 이실직고했다

이밍아웃하던 날

2024. 6. 27.

< 사진 임자 = 글임자 >


"오늘 얘기했어."

다짜고짜 그 양반이 내게 고백을 해왔다.

설마,

"나 가정이 있는 남자다."

라든가,

"나를 단념해라."

라든가,

"이쯤에서 그만두자."

내지는

"난 가정을 지키기로 했어."

라는 말을 어떤 여성에게 단호히 말하고 관계를 정리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와 비슷한 말을 하려는 건가?

그런 종류의 말은 절대 아닐 테고, (하지만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던가? ) 도대체 느닷없이 뭘 말했다는 게지?

하지만 내가 쓴 삼류 소설이 차라리 더 나을지도 몰랐다.(언제라도 나는 그다지 믿지도 않는 도끼에 발등이 찍힐지도 모르는 미래의 까마득한 날에 대비를 하는 중이다, 물론 나의 삼류 소설 속에서만. 이런 내 마음을 알면 그 양반은 또 '쓰잘데기 없는 소리만 한다'고 한마디 하시겠지?)


"직원들이랑 얘기하다가 난 당신이 집에서 이발 직접 해준다고 했지."

"그냥 밖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말라니까. 묻는 말에 대답만 하고 있으라니까 왜 또 묻지도 않은 말에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거야? 말을 할수록 실체가 드러나서 불리하다니까."

"그러게. 가만히 있었어야 되는데."

"이제 실체를 알아버렸네, 사람들이?"

"응."

"이젠 앞으로 머리만 쳐다보게 생겼네, 에휴~"

"괜찮아."

"괜찮긴 뭐가 괜찮아? 몰랐으면 모를까, 이젠 다 알았으니까 더 유심히 보게 될걸?"

"그런가?"

"그런가가 아니라 그래."

"뭐 어때?"

"안 어때!"

"내가 직원들한테 머리 어떤가 물어봤거든. 근데 그런대로 괜찮대."

"그럼 차마 못 봐주겠다고 그러겠어? 당사자 앞에서?"

"당신이 육아 휴직할 때 평생교육원 가서 배웠다고 했지. 배운 후로는 계속 집에서 나 이발해 준다고 했어."

"꼭 주말 아침 일찍이나 일요일 밤늦게 한다고 하지."

"근데, 한 직원이 처음엔 괜찮다고 하더니 나중에 내 앞머리를 보고 어쩐지 앞머리가 좀 이상하다고 그러더라. '그날 부인이 기분이 별로 안 좋았나 보네?' 이러면서."


도대체, 왜 말을 한 거람?

그냥 잠자코 있을 것이지.

그렇잖아도 3년이나 넘게 이발을 하면서도 들쭉날쭉한 내 이발 실력에 가끔은 나도 민망할 지경인데 난데없이 무슨 '이밍아웃'이냔 말이다.

솔직히 이런 미용사(자격증은 없지만 이발해 주는 사람이 바로 미용사 아니겠나?)가 세상에 어디 있어?

주말 아침 8시가 됐든, 일요일 밤 10시가 됐든 원하는 시간에 아무 때고 출장이발을 해 주는 미용사 봤어?

"내가 이발비 준다고 했어. 근데 사람들은 우리가 외벌이라 이발비 아끼려고 그러는 줄 오해하는 것 같더라."

"뭐,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집에서 이발하면 제일 좋은 건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는 거지. 미용실 한 번 가려면 기본 한두 시간은 기다려야 하고 요즘은 예약 안 하면 아예 손님도 안 받는 곳도 있다던데. 주문만 하면 바로 이발해 주고(물론 관계가 원만할 때의 경우에 한해서만이다.) 기다리는 시간도 없으니까 그게 좋잖아.(=하지만 매번 일정하게 헤어스타일이 안 나온다는 건 나도 유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내 이발 실력이 문제라기보다 머리카락의 성질 때문인 것 같다.)"

"그래, 진짜 미용실 한 번 갈 때마다 스트레스였는데 당신이 해주니까 나야 좋지."

"나 같은 사람 없어.(=나처럼 해도 해도 이발 실력이 늘지 않는 나이롱 미용사는 없어.) 그걸 알아야 해."

"알지. 고마워."

"그런 의미에서 이발비를 조금 올려 주는 건 어때?"

"완전 날강도네. 솔직히 당신이 돈 받을 실력은 아니잖아?"

뭬야?!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그래도 100원, 아니 1,000원 정도는 받을 수 있는 거 아니야?

나도 내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여서(물론 아주 사알짝)하는 거라고!

물론, 올해 1,000원이 올라서 1회 이발비가 16,000원으로 인상된 지 반년 정도밖에 안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나도 다소 무리수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냥 해 본 말이다. 안 올려주면 그만이지.

"솔직히 그거 받아서 내가 혼자 과자 사 먹는 것도 아니고 결국 우리 집 수입(과연 한 집에서 나갔다가 같은 집으로 되돌아오는데 수입이라고 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지만)이잖아. 그러니까 난 결국 봉사한 셈이지. 안 그래?"

내친김에 아무 말 대잔치를 시작한다.

하도 여러 번 해서 그 양반에게 먹히지도 않을 돌림 노래지만 또 생색은 내고 싶었다.(고나 할까?)


다시 돌아온 이발 주간,

최소한 뒤통수에 핫스폿만은 만들지 않기를...

그러기 위해서는 그 양반이 내 심기만 안 건드리면 된다.

나는 내 감정을 고스란히 그의 헤어스타일에 반영하는 용한 재주가 있는 사람이니까.




작가의 이전글 오오, 나는 당신께 건빵을 원하지 않았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