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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ul 05. 2024

이젠 정말 다 끝난 줄 알았는데

김수한무거북이와두루미스파티필름~

2024. 7. 2.

< 사진 임자 = 글임자 >


"이젠 얘도 나이 먹었나 보다. 더 이상 꽃은 안 피려나 봐. 하긴 나이도 많이 먹었겠다."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으니 나는 그만 단념하려고 했었다.

"엄마, 꼭 꽃을 피워야 하는 건 아니잖아."

딸의 말에 정신이 번쩍, 했다.

"정말 네 말이 맞다. 꼭 꽃을 피워야만 되는 건 아니지. 엄마가 뭔가 오해했네. 꽃이 없어도 이렇게 잘 자라고 있으니까 그걸로 된 건데 말이야."

"그래. 그리고 한번 기다려 봐. 혹시 알아? 기다리다 보면 다시 꽃이 필지도 모르잖아."

나는 딸이 그저 나를 위로하는 말로만 하는 것이려니 했었다.

꽃을 참 좋아하는 나는, 어지간한 꽃은 다 예뻐 보이는 나는, 호박꽃 보고 왜 못생겼다고 하는지 도통 이해되지 않는 나는, 은근히 꽃에 집착하며 살았던 거다.


저 꽃봉오리가 줄기 사이에서 삐져나왔을 때가 언제였더라?

거의 한 달 전일 것이다.

물론 나는 기쁨에 겨워 소리쳤다.

"합격아, 네 말이 맞았어. 아직 멀쩡해. 꽃이 피려고 해!"

딸은 화들짝 놀라 답했다.

"엄마,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이야?"

내겐 놀랄 일이다, 충분히.

"그럼! 엄마가 꽃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잘 알잖아."

"꽃 피면 어떻고 안 피면 어떻다고 그래?"

"그래도 이왕이면 꽃이 피면 좋잖아. 볼 때마다 엄만 좋더라. 넌 안 그래?"

"나는 상관없어."

"꽃이 피면 엄마가 일년 동안 잘 돌봐줘서 잘 자란 증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그래서 그런 거야."

아마도 나는, 기쁨의 강도는 관심의 정도와 정비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 집에 사는 네 명 중 화분 하나에서 꽃이 피어나는 일에 대해 기대하고 기쁨을 누리는 그런 일에 가장 관심이 많은 이는 단연 나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나 혼자만 그러는 건지도 모른다.

"사람도 나이가 들면 몸이 병들고 여기저기 아프기도 하고 결국 죽잖아. 이 스파티필름이 우리 집에서 제일 나이도 많아서(발가락 대신 나랑 나이가 닮았다.) 오래 살았으니까 이젠 꽃은 꿈도 못 꿀지도 몰라. 사람이나 식물이나 다 비슷하구나."

불과 한 두 달 전에 저런 말을 딸에게 한 적이 있다.

그때는 잎만 무성한 그것이 끝났다고만 생각했다.

꽃 같은 건 앞으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 그 당시 나의 가장 큰 근심거리이기도 했다.

사람이 주름지고 하얘지고 기운 빠지듯이 식물도 저렇게 사위어 가는 걸까?

매일매일 조금씩 시들어 가는 것일까?

꽃도 못 필 거라면 주책맞게 내 얼굴보다 더 큰 저 새파란 잎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다르다.


우리 집에서 자라고 있는 다른 스파티필의름의 왕할머니 정도 되는 '저분'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한 번은 스파티필름의 수명을 찾아본 적이 있었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수명이 짧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이제 더 이상은 저 뿌리에서 새 싹이 돋아나오지는 않지만 올해도 한 송이씩 꽃을 피울 만큼 정정하다.

제 살을 주고 키워 낸 다른 스파티필름들은 화분마다 꽃을 일제히 피우는 중이다.

만수무강하기를,

감히 방정맞게 섣불리 단정 짓지 않기를,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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