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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un 08. 2024

가아끔, 지겨울 때가 있지, 촌수저도

내 아들의 완두콩 포비아

2024. 5. 28.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오늘 외할머니 집에 갔다 올게. 혹시 집에 왔는데 엄마가 없으면 그리 알아. 알았지?"

"설마, 또 완두콩 가져오는 건 아니겠지?"

"그건 왜?"

"어휴, 너무 지긋지긋해."

"그렇게 지긋지긋해?"

"응, 제발 그만 가져와."

"알았어. 걱정 마. 우리 아들이 지긋지긋하시다는데 안 가져 오지."

"진짜지? 가져오면 안 돼!!!"

"어차피 완두콩은 이제 없어.(=정확히는 올해에 한해서만.=내년에는 다시 완두콩 비우스의 띠가 시작될 것이야.)"


아들이 그렇게까지 말할 줄은 미처 몰랐다.

역시 뭐든 지나치면 안 되는 법이란 것을 아들 덕분에 새삼 깨달았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아들은 내가 친정에 가는 일에 예민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외할머니 집에 가서 일 좀 도와주고 올게. 할머니도 아파서 일 못하니까 할아버지 혼자 하시려면 힘들잖아. 엄마 없어도 할 일 하고 놀고 있어. 엄마가 맛있는 거 많이 가져올게."

올봄, 엄마가 퇴원하시고 본격적인 농번기가 시작되면서부터 나는 바빠졌다.

그때만 해도 아이들은 이렇게 곧잘 말하곤 했다.

"할아버지 혼자 힘드시겠다."

"그래, 엄마가 가서 도와드리고 와요. 우린 알아서 잘하고 있을게. 걱정 마."

제법 어른스러운 말까지 하는 바람에 나는 그만 눈물이 찔끔 날 뻔했다.

하지만 나의 외출이 잦아지고 내가 들고 오는 농산물의 종류가 다양해지다 못해 그 양이 점점 늘어났을 때는, 예전의 그 남매가 아니었다, 더 이상.

"엄마가 가서 완두콩 따 올게. 합격이 너 콩 까는 거 좋아하잖아."

"정말 좋아하지. 나도 따러 가고 싶다. 엄마 많이 따 와요."

딸은 어려서부터, 서 너 살 때부터 콩을 까던 아이였다.

유난히 그런 걸 좋아하기도 했다.

그래서 친정 엄마는 콩만 생기면 외손녀에게 와서 콩을 까라며 외가 방문을 부추기곤 했고 딸은 그 유혹을 쉽사리 물리치키는커녕 매년마다 콩 깔 날만 기다리고 있다시피 했었다.


첫 수확은 대개가 양이 많지 않은 법이다.

올 들어 처음으로 완두콩을 한 줌 정도 따왔을 때 남매는 말했다.

"엄마, 이게 다야? 더 없어? 왜 이렇게 조금만 가져왔어?"

"그래, 너무 적잖아. 다음엔 더 많이 가져와요."

이렇게 나를 독려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완두콩의 양이 5kg이 되고, 10kg이 되고, 20kg짜리를 몇 개씩 내가 이고 지고 오기 시작하자 남매가 돌변하기 시작했다.

콩깍지에 콩이 열두 개까지 들어 있다며 기념사진을 찍고 호들갑을 떨던 아이들은 간데없고 슬슬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만 갔다.

"엄마, 또야?"

"설마, 이거 다 까야하는 건 아니지?"

"도대체 언제까지 까야해?"

"이건 좀 너무 많은 거 아니야?"

그들의 성난 민심은 쉽사리 가라앉을 줄 몰랐다.

나도 눈치도 없이 너무 들이밀었던 게 화근이었다.

하루는 아들이 심각하게 물었다.

"엄마, 이걸 우리가 다 먹을 건 아니겠지? 팔 거지? 팔려고 가져온 거지? 그치?"

"아닌데? 우리가 다 먹을 건데?"

"이렇게 많으면 일 년 내내 먹겠다."

"정확해! 맞아, 일 년 내내 두고 먹을 거야."

"이 많은 걸 다?"

"냉동시켜 두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어."

아들이 한숨을 쉬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주야장천 내가 우리 집 멤버들에게 콩밥만 먹이자, 민심이 다시 들끓었다.

"또 콩밥이네."

"엄마, 그냥 맨밥 주면 안 돼?"

아니, 엄마가 콩밥 좀 먹여 주겠다는데, 왜?

아닌 게 아니라 나도 연속 콩밥을 먹으니 질리려고 했다.

나도 지겨워졌다.

매일 밤 콩을 까는 것도 콩을 쪄 먹고 밥 해 먹는 것도...

하물며 아이들은 말해 무엇하랴.


콩 까기를 멈춰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알고 멈추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나, 그 시기는 콩을 다 따야 멈출 수 있는 것이다.

눈 질끈 감고 며칠을 더 콩자루를 집에 나른 후 마침내 그 '지긋지긋한' 체험활동을 끝낼 수 있었다.

긴 병에 효자 없고, 엄마가 눈치 없이 따오는 완두콩에도 효자, 효녀는 없었다.

그런데 얘들아, 내가 비밀 하나 말해 주랴?

사실 그 어마어마한 양이, 이미 여기저기 다 나눔을 하고도 남은 양이었느니라.

다 퍼주고도 그렇게 남아돌았단 말이다.

그래봤자 몇 백 킬로 안됐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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