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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un 10. 2024

그래, 이 맛이지

사진 찍는 기술 없음 주의! 음식 꾸미는 재주는 더 없음 주의!

2024. 6. 9.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고마워요."

아드님이 한 그릇을 다 잡수고 그릇을 내밀며 내게 말했다.

다짜고짜였다, 정말로.

"갑자기 뭐가 고마워?"

잘 드시고 왠 느닷없는 소린가 싶어 내가 물었다.

"엄마가 알리오올리오 맛있게 만들어줘서요."

아,

그게 그 말이었구나.

"어쩜, 우리 아들은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이렇게 예쁘게 할까? 엄마가 만들어준 보람이 있네. 엄마도 고마워, 맛있게 잘 먹어줘서."

와중에도 나는

"엄마가 힘들게 만들었다."

라는 거짓부렁 같은 건 절대 하지 않았다.

그냥 만들었지, 힘들게 만든 것은 결코 아니었으므로.

나는 음식은 최소한의 시간과 최소한의 노력으로 만들려고 하는 사람이므로.

꾸미고 또 꾸미고 예쁘게 보이려고 굳이 애쓰는 사람이 아니므로.

그저 내가 요리하기 편한 게 제일이고 음식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 아니므로.

음식 만드는 일이 정말 '일이 되는 일'이 되지 않도록 말이다.

그리하여 내가 만들고 찍은 음식 사진은 대개가 저런 식이다.

마지막에 남은 것을 모조리 냄비째 쏟아부었더니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용케도 얌전히 잘 담겼다.


"우리 합격이랑 아빠가 마늘 좋아하니까 마늘 많이 넣어서 만들어 줄게."

친정에서 햇마늘을 두 줌 집어 왔다.

지난번에 이미 올해 수확한 마늘을 알리오올리오 스파게티와 멸치 볶음으로 첫 개시를 했는데 우리 집 멤버들의 반응이 좋았다.(그렇다고 나는 믿는다.)

"먹고 사람 되자."

라면서 그날도 우리 집 어느 한 멤버에게 아낌없이 마늘을 퍼주었다.

"얘들아, 아빠는 엄마랑 결혼하기 전에 스파게티는 빨간색만 있는 줄 알았어."

느닷없이 그 양반은 음식 앞에서 '스밍아웃'까지 하셨다.

나도 음식에 대해 아주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나 외국 음식에 대해 문외한에 가까운 편이지만, 음식에 그다지 애착이 있다거나 관심이 많은 편도 아니지만(나는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쩌면 그냥 배가 고프니까 먹는 쪽에 더 가까운 사람이다.) 간헐적으로 어떤 의욕이 생길 때면 열과 성을 다해 요리를 하기도 한다.

물론 그건 백 년 만에 한번 정도이다.

촌수저에게는 낯선 음식들, 하지만 알고 보면 별거 아닌(별거일 수도 있고, 어쨌거나 사람 해 먹고사는 건 다 비슷비슷하려니) 음식들을 만들어보며 결혼 후 그 양반에게 신문물도 많이 전파하곤 했고 그 양반은 나로 인해 '그나마' 개화되었다.(고 또 나만 굳게 믿어 왔다.)

친정에 마늘 수확하는 일을 도우러 갔을 때 사실 나는 속셈이 따로 있었다.

가장 먼저 수확한 것을, 제일 먼저 내가 챙겨 와서 음식을 해야겠다고 남몰래 다짐했던 것이다.

기분상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 해에 처음 나는 오만가지들은 겨우내 땅속에 영양분을 품고 있다가 움트고 나온 거라 무조건 좋다고(아마 좋을 것이다.) 맹목적으로 믿고 어떻게든 새로 난 것들을 멤버들에게 먹일 요량으로 집으로 바리바리 싸 오는 편이다. 물론 내가 득달같이 달려들기도 전에 부모님이 미리 다 준비해 두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올해도 친정 햇마늘을 내가 제일 먼저 맛보았다.

뭐랄까,

1등이 된 기분이라니!

그거 1등 해서 뭐 한다고, 어디 쓸데 있는 1등이라고, 쓰잘데기 없는 데에 집착까지 하고 말이다.

각자 한 그릇씩 비운 후에는 작년에 이모댁에 김장도와 주러 갔다가 따온 레몬으로 만든 레몬청으로 입가심까지 하고 나니 새삼 촌수저는 흡족했다.

찰나, 마늘빵을 만들어 주겠다고 어린 것들 앞에서 선포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래, 이 맛이었어.

불과 며칠 전에 완두콩을 토 나오기 직전까지 지겹도록 까느라 잠시 소속을 옮기고 싶은 충동마저 들었던 촌수저는 고작 며칠 만에 햇마늘 요리로 그 충동을 다스리기에 이른다.

촌수저의 맛,

촌수저만 아는 맛,

촌수저라 가능한 맛,

이런 촌수저의 맛, 뉘가 알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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