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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un 14. 2024

어찌합니까? 어떻게 할까요?

촌수저의 부작용

2024. 6. 10.

< 사진 임자 = 글임자 >


"호박 봐봐. 저렇게 많아. 언제 다 먹지? 밭에도 애호박 천지야."

"호박전 몇 번 해 먹으면 금방 다 먹겠는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호박으로 장아찌 같은 건 못 만드나?"

"그런 얘긴 처음 들어 봐.(=할 생각 없다.) 수분이 많아서 다 물러져 버릴 것 같은데?"

"그냥 다른 장아찌 만드는 것처럼 만들면 안 돼?"

"안될 것 같은데."

"그럼 뭐 해 먹지?"

"정 안되면 말려서 나중에 나물 해 먹어야지."

"그럼 되겠네. 말렸다가 해 먹자."

"국수 할 때도 많이 넣어서 먹어야겠다. 볶음밥 같은 데도 넣고. 무조건 사방에 다 넣어 먹어야겠어."

"호박죽은 못 쑤어 먹나?"

"애호박으로 죽 쑤어 먹는다는 얘기는 아직 못 들어봤어. 앞으로도 들을 일 없을 것 같아."

"왜 안돼?"

"생각을 해봐. 늙은 호박이나 단호박이랑 다르잖아."

"그냥 늙은 호박으로 하는 것처럼 하면 안 돼?"

"안될 것 같은데(=생각도 하기 싫다.)."

"그럼 애호박을 늙을 때까지 놔뒀다가 하면 되지."

"애호박 오래 두면 가운데에 씨 생기고 호박은 딱딱해지고 먹을 것도 거의 없어."

"그냥 하면 될 것 같은데?"

"그럼 본인이 직접 해 보시든가."


하여튼, 뜬금없는 '시도의 아이콘'이셔.

우리는, 아니 나만 진지했다.

저 많은 호박들을 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이틀 연속 친정 텃밭에서 애호박을 열 개씩 땄다.

물론 그 전날에도, 전전날에도 엄마가 많이 따서 보관 중인 것도 있다.

앞으로도 계속 따게 될 것이었다.

저건 그냥 내가 딴 것만 몇 개 가져온 것이다.

호박꽃이 피었네, 하고 뒤돌아섰더니 금세 주렁주렁 달렸다.

앙증맞게 손가락만 한 것이 여기저기 달려 있을 때만 해도 저것을 하나씩 따 먹을 생각을 하며 혼자 흐뭇해했다.

첫 수확은 서 너 개였지만 날이 갈수록 이것들(?)이 무섭게 불어났다.

여기서 하나 따면 저기도 있다고 아우성이었다.

이쪽에서만 따고 있으면 저쪽에도 있다고 애호박 차별하는 거냐고 말이다.

촌수저는 호박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법이다.

주고 따고, 퍼주고 따고, 그래도 호박 넝쿨에 애호박은 넘쳐났다.

한창 농번기라 잠시 신경을 못쓴 며칠 사이 무섭게 자라나 있었다.

생각만으로 오만 가지 애호박 요리를 하던 나는 넘쳐나는 애호박에 지레 질려버렸다.

정작 호박 요리를 본격적으로 해 먹기도 전에 먹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 버렸다.

넘치면 정말 부족한 것만 못한 것이었다.

이제 친정 텃밭에는 흔해 빠진 게 애호박이었다.

나는 급기야 요리를 할 의욕마저 상실해 버렸다.

입맛이 없어져버렸다.

비싸고 없을 때는 그렇게 꼭 임신한 사람처럼 애호박 생각이 간절하더니, 이젠 널린 게 그것이었다.


"와서 호박 가져가라. 벌써 또 많이 열었다. 애기들이랑 와서 같이 따라."

처음에 엄마가 저런 전화를 하셨을 때만 해도 엄마의 과장이 심하다고만 생각했다.

이제 몇 개씩 달리기 시작한 것 같던데 벌써 딸 때가 되었다니.

외손주들이 보고 싶어 '애호박 따기 체험 학습'을 빌미 삼아 그들을 유인하려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엄마는 정직하셨다.

엄마 말대로 사방에 애호박 천지였다.

"작은 집 할머니가 애호박 많이 열었다고 나보고 따 먹으라고 하더라. 내 것도 귀찮다고 안 먹는다고 했다."

작은집 할머니는

"나는 애호박은 맛도 없어서 안 먹어.'

라고 하시며 엄마에게 처분해 줄 것을 긴급 요청하셨다고 한다.

떠 넘기려고 하셨다.(고 나는 넘겨 짚었다.).

어디서 모종이 생겨서 그냥 심은 것이지, 좋아해서 심은 것은  절대 아니라고 분명히 선을 그으시면서 말이다.

이에 엄마는

"우리 집에 열린 호박도 귀찮소."

라고 하시며 과감하게 사양하셨단다.

텃밭의 그것도 매일 따서 처리하기 힘든 마당에 남의 것까지는 무리였다.

"엄마, 그냥 따서 다 나눠주면 되지. 너무 아깝다."

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나는.

나눠 주는 것도 일이다, 엄마에게는.

내가 그 밭이 어디인 줄 알면, 엄마의 애호박 딸 자격을 나에게 승계만 해준다면야 당장에 그것들을 다 깔끔하게 정리해 줄 수도 있는 일인데 안타깝게도 엄마는 단칼에 거절해 버리신 거다.


"엄마, 또 호박 들어갔네."

아드님이 한마디 하셨다.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반찬투정'이라고 한다지 아마? 하긴 연속 애호박을 교묘하게 여기저기에 마구 넣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큰일이네, 이제부터가 시작인데.

이러다가 지난번 완두콩 사태가 다시 오는 건 아닌가 몰라.

흔하니까 귀한 걸 모르는구나.

그러나,

애호박에게는 죄가 없다.

그저 쑥쑥 발육상태가 좋을 뿐이다.

촌수저의 숙명이랄까  나름의 간헐적 부작용이랄까.

한꺼번에 너무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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