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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un 06. 2024

내 것은 아니지만 내 것이 될 것 같은 너

특가는 이제 필요 없어

2024. 6. 5.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벌써 호박이 저렇게 많이 열렸어?"

"저것이 잘 큰다. 올해도 원 없이 따 먹겄다."


어쩜 예쁘기도 하여라.

친정 텃밭에 주렁주렁 열렸다.

물론 내 소유는 아니지만 벌써부터 나는 눈독을 들이고 있고 입맛을 다시는 중이다.

여름은 싫지만 여름에 나오는 애호박은 좋다.


애호박을 처음 친정에서 심은 건 불과 작년의 일이다.

수박이며 오이고추, 참외 그런 모종을 사면서 '얻어서' 심은 거였다.

평소 애호박을 즐겨 먹는 나는 그때도, 모종을 땅에 심은 그날부터 단단히 눈독 들였었다.

올해도 또 어디에선가 '얻어서' 애호박 모종을 심었다.

작년에는 두 그루였던 것 같은데 올해는 자그마치 다섯 그루나 된다. 내가 다 든든하다. 물론 내 소유는 아니지만 말이다. 나에게도 콩고물은 떨어지리라 진작에 예상하고 있다. 정확히는 기대하고 있다고 해야 맞겠지?

요즘은 친정에 가면 저런 앙증맞은 것들을 보는 재미에 가도 가도 또 가고 싶다. 토마토도 새파랗게 오밀조밀 열리고 오이도 길쭉길쭉 미끈하게 열리는 중이다.

물론 내 것은 아니지만, 보는 것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솔직히 내가 능력만 된다면, 우리 집 거실에서도 키울 수 있는 위대한 초능력이 있다면 참외, 수박, 오이, 오이고추, 가지, 애호박, 둥근 호박, 꽈리고추 이런 오만가지들(=친정 텃밭의 모든 모종)을 다 옮겨 심고 싶을 지경이다. 물론 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부모님께 말을 잘해보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결정적으로 저런 농산물들을 아파트에서 키운다는 흉흉한 소문은 여태 들어보지 못했다,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이래로. 물론 저들 중 토마토나 고추 정도 몇 가지는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우리 집에서는 아니다. 가장 욕심나는 것이 애호박인데 저거 하나만이라도 어떻게 가져와보고 싶은데 그런 말을 하면 분명히 부모님은 한마디 하실 거다.

"알지도 못하는 것이 뭣을 키운다고?"

틀린 말이 아니니 나는 잠자코 듣고만 있어야 할 거다.

대강 애호박 개수를 세어 봤더니 스무 개는 열린 것 같았다.

벌써부터 나는 주위에 나눔 할 생각을 하고 있다.

친구도 주고 청소해 주시는 분들께도 드릴 생각이다.

그래도 주체할 수 없이 남아돌면 그 양반 팀원들에게라도.

하지만 내겐 강력한 라이벌이 있다.

바로 아빠다.

아빠도 나눔 하는 걸 아주 좋아하신다, 지나치다 싶을 만큼.

그래서 동네 사람들에게 많이 보시를 하시는데 아빠가 행동 개시를 하시기 전에 내가 먼저 서둘러야지.

내 것도 아니면서 원 주인보다 먼저 선수 치겠다고 하다니.

어쩔 때 보면 아빠와 나는 '누가 누가 더 많이 나눠주나' 대결을 하는 것도 같다.

나눔 리스트는 농산물 품목이 바뀌어도 항상 거기서 거기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나눠 먹을 생각을 하니 내가 다 배부르다.

물론 내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주말 특가, 애호박 한 개에 980원!'이라는 알림 문자에 예민하게 굴지 않아도 될 것이다.

겨울에는 거의 3,000원 가까이하던 것이 이젠 1,000원 대로 가격이 많이 내리긴 했지만 작년에 직접 친정에서 농사지은 애호박을 먹어본 이후로는 마트에서 봉지에 터질 듯이 꽉 찬 그 애호박은 (물론 내 기분에만) 그렇게 맛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고 감히 허풍까지 떨고 있다.) 내가 농사지은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내가 친정에 갈 때면 종종 텃밭에 물을 주는 일도 여러 번 했으니까 나에게도 지분이 어느 정도는 있는 거겠지?

촌수저 좋다는 게 뭔가?

시도 때도 없이 품목 가리지 않고 크면 큰 대로, 익으면 익은 대로 갓 따온 오만가지를 맛보는 호강, 그런 거 아닌가?

물론 내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보기도 아까운 (내 것이 될 것이 유력한) 애호박들, 아까우니까 먹어버리자, 조만간.

따 버리자, 미련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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