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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un 18. 2024

생존 수영 준비할 때 엄마 나이를 세어 보아요.

느닷없는 나이 확인

2024. 6. 17.

<사진 임자 = 글임자>


"엄마가 나이 먹는 걸 생각해 봐. 저번에 마흔 살 됐는데 지금은 벌써 몇 살이야?"

"갑자기 엄마 나이가 왜 나와?"

"그만큼 시간이 빨리 간다는 거야. 진짜 금방이야."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겠어, 안 해야겠어?"

"해야겠다."

"미리미리 준비해 놔요. 한 달밖에 안 남았으니까. 알겠지?"

"그래. 알았어."


대답은 당장 그러마 하고 했지만 느닷없이 내 나이까지 들먹이며 벌써부터 준비를 단단히 해 두라는 아들의 말에 나는 황당하기까지 했다. 거기서, 왜 내 나이가 나오느냔 말이다.

아들이 생존수영을 하러 가는 것과 엄마가 나이 먹는 것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지?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데, 물론 내 생각에만 그렇다는 거다.


"엄마, 우리 생존 수영 하러 간대요."

"아, 맞다. 안 그래도 선생님이 알려 주셨어. 한 달도 더 남았더라. 아직 멀었네."

한 달 쯤이야, 아직은 먼 나라 이웃나라 일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던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정작 생존 수영을 하러 가야 하는 당사자는 전혀 그렇지 않은가 보았다.

"엄마,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

"뭘?"

"한 달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알아?"

"아직 멀었잖아."

"아니지, 시간 금방 가. 생각해 봐. 엄마 나이가 몇이야?"

"갑자기 엄마 나이는 왜?"

"엄마가 벌써 사십 하고도 몇 살이야? 사십 살 지난 지가 언제야? 얼마 안 된 것 같잖아. 그런데 벌써 또 몇 년이 금방 흘러 버렸잖아. 시간은 이렇게 빨리 간다니까. 한 달 남았다고 여유 부리면 안 된다니까. 내가 언제 생존수영 하러 가는지는 알아?"

"알지, 금요일 하고 그다음 주 월요일이잖아. 엄마가 알람도 다 맞춰놨다고."

"그럼 수영복이랑 수영할 때 필요한 건 다 찾아 놨어?"

"나중에 챙기면 되지. 벌써부터 챙길 필요는 없잖아."

"엄만 그게 문제라니까. 미리미리 챙겨놔야지. 엄마는 건망증도 심하잖아. 그러다가 깜빡하면 어떻게 해?"

아니, 얘가 건망증 심한 엄마한테 속고만 살았나. 여기서 또 건망증이 왜 나오냔 말이다.

물론 아들의 말에 발끈하려다 말긴 했다.

아들 말 틀린 것 하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닥치면 어떻게든 다 돌아가긴 돌아갔다.

그러나 이미 우리 집 건망증의 최고봉인 나는 가끔 아이들이 염려할 정도로 심할 때가 있다.

아들은 벌써부터 걱정이었던 것이다.

행여라도 이 엄마가 또 까마귀 고기를 먹고 자신의 준비물을 하나도 준비해 놓지 않을까 봐 말이다.

"걱정하지 말라니까. 엄마가 때 되면 찾아서 줄 테니까 네가 챙겨 가면 되잖아."

"엄마, Time flies! 알지?"

저 말은 내가 걸핏하면  아이들에게 했던 말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기회만 생겼다 하면 써먹고 또 써먹고 우려먹고 또 우려먹어서 이젠 아이들도 저 말을 입에 달고 살  정도까지 되었다.

일요일 오후에, 방학이 끝날 무렵에, 한 학기가 끝나는 방학식을 할 때면 남매는 꼭 저 표현을 저희들끼리 사용해 왔다.

그러면 나는 또 옆에서 듣고 있다가 맞장구를 치며 참으로 그 상황에 쓰기 딱인 말이라고 얼마나 호들갑을 떨었던가.

어떻게든 한 마디 건지게 해 보려고 남매 앞에서 남발했더니 어쩔 땐 아이들이 내게도 그 표현을 쓰기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어쩜, 이렇게도 시의적절하게 그 표현을 접목해서 이 엄마를 바짝 정신 들게 하는 차는 거람?

그 와중에 나는 아들이 대견하기까지 했다.

건망증이 심하다 심하다 해도 그런 나를 알기 때문에 미리미리 알람도 맞춰놓고 더 신경 써서 아이들 준비물을 준비한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아이들 보기엔 또 불안한가 보았다.)

"엄마, 그러지 말고 지금 찾아 놓자. 그러면 나중에 급히 찾을 일이 없잖아."

"그래도 아직 한 달도 더 남았잖아?"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니까. 안 되겠어. 내 수영복이 어디 있지?"

아들은 기어코 자신의 수영복을 내놓으라며 나를 닦달했다.

수영복은 정확히 어디에 보관하고 있는지 다행히 기억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자신 있었다.

아들에게 보란 듯이 수영복 두 벌을 갖다 줬다.

작년에 수영장을 다니며 수영을 배우느라 새로 산 수영복들이었다.

지체 없이 수영복을 대령하자 아들도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건망증도 심한 엄마가 그렇게 잽싸게 찾아오리라고는 예상치 못했겠지.

"자, 봐봐. 엄마가 이렇게 잘 보관하고 있었다니까. 걱정하지 마. 다시 잘 넣어 두고 수영하러 갈 때 다시 빼자. 알겠지?"

"정말 빨리 찾았네. 알았어. 그럼 엄마를 믿지."

다소 위태로웠던 프로 건망증러는 금세 아들에게 신뢰를 회복했다.(고 그때는 믿었다.)


 "엄마, 그런데 수영모자랑 안경은 어디 있어?"

그것도 자신 있었다.

서너 살 먹은 아이가 어른이 일부러 감추어둔 물건을 하나씩 찾아오며 제 부모에게 의기양양해하듯 나는 또 보란 듯이 아들이 원하는 물건들(이 담긴 것으로 추정되는 가방들)을 대령했다.

그런데 아뿔싸, 보관 가방에 들어있어야 할 수영모와 수경이 안보였다.

"엄마, 왜 가방만 있어?"

아들은 한숨을 쉬었다.

어쩐지, 출발이 순조롭다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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