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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un 19. 2024

누워있으면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있어

때 늦은 고백

2024. 6. 18.

< 사진 임자 = 글임자 >


"근데, 엄마. 내 수영 가방은 어디 있지?"

"이상하다. 누나 가방이랑 같이 네 방에 뒀었는데 안 보이네."

"설마 버린 건 아니지?"

"버릴 게 따로 있지 멀쩡한데 그걸 왜 버려?"

"그럼 어디 있어?"


그야, 나도 모르지.

기억 안 나지.

그래서 지금 나도 당황스러운 거 아니겠냐고.


"안 버렸으면 있겠네, 수영 가방 좀 찾아 줘. 엄마,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알았어."

하지만 아무리 온 집안을 다(는 아니지만 거의 모든 곳을 구석구석 샅샅이는 아니지만) 뒤져도 그 요망한 것이 어디로 숨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내 심기를 건드렸으니 아들의 수영 가방은 이미 내겐 요망한 물건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딸의 것과 같이 나란히 아들 방에 얌전하게 놓여 있었던 것 같은데(있었던 것 같기는 했지만 확실히 언제까지 그랬는지조차 가물가물하다.)

아들의 성격을 아는지라 사실 아들이 미리 선수 치기 전에 나도 나름 대비하느라고 그 가방을 찾아 아들방을 뒤지고 또 뒤졌던 전과가 있었다.

아들의 잔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내가 한 발 먼저 빨라야만 했다.

건망증이 심한 나는 혹시 친정에 갖다 두고 속없이 지금 우리 집에서 혼신의 힘을 기울여 찾고 있는 건 아닌가, 괜한 헛수고만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친정으로 가져간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 손바닥만 한 아들 방이 크면 얼마나 크다고 몇 번이나 뒤졌으니 나와야 맞는데 이상하게 찾을 수가 없었다.

점점 나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급기야는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이런 마음으로 아들에게 폭탄선언을 했다.

"엄마가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 그냥 다른 가방에 가져가자."

"아니야, 있을 거야."

"지금까지 안 나오는 거 보면 혹시 집에 도둑이 들었을까? 왜 없지?"

얼굴 한 번 마주친 적 없는 애먼 정체불명의 도둑까지 만들어냈다.

"엄마, 그래서 가방을 안 찾겠다는 거야?"

"아니, 안 찾겠다는 게 아니라 못 찾겠어."

"잘 생각해 봐. 어디에 뒀는지 기억 안 나?"

"기억이 안 나. 분명히 네 방에 누나 가방이랑 같이 뒀었는데."

나는 이제 '설마 그 양반이 날 골탕 먹이려고 슬쩍 해 간 건 아닐까' 하는 얼토당토않은 의심마저 하기에 이르렀다.

혹시 평소 나에 대한 앙금에 대한 복수로?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생사람 잡는다'라고 한다지 아마?

재미도 없고 그럴 가능성도 없는 삼류 소설을 혼자 쓰면서 아들의 눈치를 살폈다.

"우리 아들, 엄마가 못 찾겠어. 그냥 누나 가방에 담아 가면 안 될까? 어차피 똑같잖아."

슬슬 협상을 시도해 보았지만 아들은 완강히 거부했다.

"누나 이름이 쓰여 있잖아.  그걸 어떻게 가져가?"

누나 것이라면 치마도 마다하지 않고 저도 입겠다고 달려들던 애가 누구였는데?

누나 머리띠며 머리핀이며 각종 액세서리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며 좋아라 하던 애가 누구였는데?

누나 이름 석 자 쓰여 있는 거 그까짓 게 무슨 대수라고. 단지 수영에 필요한 물품들을 담아가는 가방일 뿐인데.

"그럼 스티커로 이름 가리고 가면 되잖아. 아니면 누나 이름 지우고 네 이름 써도 되고."

"안돼. 내 가방 있는데 왜 누나 것을 가져 가?"

1차 협상이 결렬되고 말았다.

"네 것이 없으면 누나 것이라도 가져갈 수 있는 거지. 잠깐 이틀만 가져가면 되잖아. 융통성이란 이럴 때 발휘해야 하는 거야. 너무 원칙대로 할 필요는 없어. 그렇게 살면 세상 살기 힘들다, 너. 사람이 너무 원리원칙만 따져도 못써요. 적당히 맞춰서 살 줄도 알아야지. 거 참, 적당히 좀 하자."

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물론.

내가 죄인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젠 아예 가방 찾는 일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아들이 뭐라고 하든 그냥 딸의 것을 들려 보내려고 작정했다.

하지만 내 아들은 쉽지 않은 어린이다.

"엄마, 생존 수영이 내일이니까 오늘 내가 학교 가면 그 사이에 엄마는 내 가방을 찾아봐. 내가 집에 왔을 때 엄마가 누워 있으면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거야. 하나는 가방을 찾느라고 너무 힘들어서, 또 하나는 아예 포기하고 찾지도 않고 그냥 쉬는 거."

아니, 어쩜 내 꿍꿍이를 이렇게 훤히 잘 알지?

나는 확실히 후자를 택할 예정인데, 이미 찾기를 포기해 버렸는데, 기원전 500년 경에 말이다.

그러나 아들에게 그런 내 결심을 들켜서는 아니 되었으므로 살짝 속마음과는 다른 말과 행동을 (인간적으로) 살짝 해 줘야 할 필요는 있었다.

"그래, 맞다. 아마 엄마는 네 가방 찾느라 탈진해서 누워있기 쉬울 거야. 우리 아들이 그렇게 원하는데 찾다가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찾아봐야지."

"아니야, 엄마. 너무 무리는 하지 말고 찾는데 정 없으면 어쩔 수 없지 뭐. 그래도 한 번만 더 찾아봐 줘요."

어쩜, 내 아들은 마음씨가 저렇게 비단 같을꼬?

살짝 미안해졌다.

하지만 찾아도 없는 가방을 만들어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나도 나름 성의는 보였다고 생각했다.(고 착각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나는 노벨 문학상 예선 탈락 자리에도 못 오를 내 시나리오대로 실행에 옮겼다.


아들이 집에 돌아온 인기척을 느낀 나는 최대한 초췌한 얼굴로 아들을 맞았다.

"엄마, 혹시 찾았어?"

하교하고 온 아들이 내게 경과보고를 바랐다.

그러나 나는 복음을 전할 수는 없었다.

"아니, 없어."

아들은 실망한 눈치였지만, 나도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란 게 있다.

아니라고 판단되면 과감히 접을 줄도 알아야 했다.

"어쩔 수 없지, 뭐. 엄마, 그래도 찾느라 고생했어요."

그 와중에도 아들은 저렇게 기특한 말을 다 했다.


아들아,

이제와 뒤늦은 고백을 한다.

...미안하다, 안 찾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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