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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ul 21. 2024

감히 '곰 세 마리'를 얕보았으렷다?

입으로 지은 과보

2024. 7. 20.

< 사진 임자 = 글임자 >


"아니 지금 나이가 몇인데 곰 세 마리가 뭐야, 곰 세 마리가?"

"곰 세 마리가 왜?"

"그건 유치원생이나 부르는 노래지. 지금 4학년이 곰 세 마리 부르는 게 말이 돼?"

"왜 말이 안 돼?"

"거기서 왜 그런 노래를 부르냐고."

"자기가 부르고 싶은 노래 부르면 그만이지 무슨 상관이야?"


그 양반은 혀를 끌끌 찼고 나는 그런  그 양반을 향해 더욱 혀를 끌끌 찼다.

노래방 잘 갔다 오시고 왜 이러실까 또?

도대체 뭐가 불만이실까 또?


오전에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도착했을 때 급히 자동차를 타고 집을 빠져나가는 한 무리의 (나만 빠진) 우리 집 멤버들을 보았다. 나는 더워서 앞만 보고 가는데 딸이 창문을 내리더니 알은체를 했다.

"어디가?"

"엄마, 우리 노래방 가."

"더운데?"

"갔다 올게."

또 어린것들을 선동했구나 저 양반이.

몇 주 전부터 노래방에 가자고 남매에게 애걸하더니(내 눈엔 애걸하는 걸로 보였다. 그렇게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기어코 목적을 달성하셨구먼.

"얘들아, 노래방 가자."

그 양반은 주말 아침마다 아이들에게 매달렸다.(정말 나는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아빠가 아이들에게 자꾸 매달리는 걸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시큰둥했다, 물론.

벌써 몇 주째인지 모른다.

"혼자만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애들은 안 가고 싶어 하잖아, 그냥 혼자 가."

길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못 걸어 다니는 것도 아니고(물론 코앞이라도 그 양반은 기어이 운전을 해서 갈 사람이긴 하다) 아무리 세상이 흉흉하다고는 해도 혼자 돌아다닌다고 해를 입거나 화를 당할 사람은 아닌데 왜 자꾸 아이들을 데리고 가고 싶어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동안 절대 아빠를 동반하여 노래방에는 안 갈 것 같던 두 어린이들이 웬 일로 따라나섰을꼬? 도대체 어떻게 꼬드겼길래?

분명히 꼬드겼을 것이다. 뭔가 대가가 주어졌겠지?

설득을 한 게 아니라 꼬드겼을 가능성이 거의 99.9%라고 나는 확신했다.

또 그런데, 두 시간 넘게 집안일을 하고 이제 막 숨 좀 돌릴까 싶었는데(어떻게 귀신같이 알고 나를 훼방하려고 딱 그 시간에 맞춰 컴백하셨는지 용하기도 하지) 세 멤버는 집에 돌아왔다.

또 또 그런데, 아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그 양반의 표정은 더 좋지 않았다.

뭔가 사달이 났구나.

"왜 그래 우리 아들? 무슨 일이야? 왜 표정이 안 좋아?"

나는 분명 내 아들에게 물었는데 남의 아들이 대답했다.

"거기 가서 곰 세 마리나 부르고 말이야."

곰 세 마리를 부르든 여우 다섯 마리를 부르든 그게 무슨 문제가 된다는 게지?

"그게 왜?"

"4학년이나 돼서 곰 세 마리가 뭐냐고?"

"뭐 어때? 얼마나 건전해? 우리 아들은 이렇게 건전하다니까. 다른 이상한 노래 부르는 것보다 훨씬 낫지 뭘 그래?"

"어휴, 하여튼."

"우리 아들이 원래 건전하잖아. 그게 뭐 어떻다고 그래? 저번에 수행평가도 우리 아들은 곰 세 마리 불렀는데. 그게 뭐 잘못됐어? 별 걸 다 트집 잡네."

"부른 노래가 '독도는 우리 땅' 그런 거야."

독도는 우리 땅이란 노래가 있으니까 부른 것뿐이지.

도대체 뭐가 문제지?

그럼 어린이가 노래방 가서  가곡 '선구자'라든가 '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라든가 '에디트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 이런 노래라도 불러야 한단 말인가?

 "저번에 나랑 다 같이 갔을 때도 '아리랑'이랑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불렀잖아. 그런 줄 몰랐어? 우리 아들은 정말 건전하기도 하지."

"노래방 가서 그게 뭐야?"

"본인이 부르고 싶은 노래 부르는 거지. 남이 듣고 싶은 노래 불러야 되는 거야? 왜 그래?"

"그리고 중간에 빨리 집에 가자고 계속 그러고."

그러니까, 이 양반이 마음에 안 드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구나.

"아빠가 '노래 한 두 곡만' 부르고 집에 가자고 했잖아. 그래서 그런 거지."

아들이 기회는 이때다 싶었는지 한마디 했다.

"뭐야? 아빠가 그랬어? 그렇게 말했으니까 우리 아들이 그랬구만. 본인이 한 두 곡만 하고 집에 가자고 했으면서 왜 애먼 애한테 뭐라고 그래?"

"아니 말이 그렇다 그런 거지. 한두 곡 부르고 간다고 했어도 서 너 곡 부를 수도 있는 거지."

그 양반도 발끈했다.

"그러면 처음부터 그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지. 우리 아들 FM인 거 몰라? 곧이곧대로인 거 모르냐고?"

그 양반은 할 말을 잃은 눈치였다.

가끔, 나도 아들이 너무 곧이곧대로라 속이 답답할 때가 있긴 하다, 물론.

하지만 눈치 없이 그 자리에서 그 일급비밀을 그 양반에게 누설해서는 아니 되리.

그러고 보니 그 양반이 잘못했네.

그냥 차차리 가만히 있었어야지.

"그러니까 말이나 말지. 뭐 하러 그런 말을 해가지고 그래? 내가 항상 말했지. 그냥 제발 가만히나 있으라고. 괜한 말 좀 하지 말고. 그리고 그러니까 애들이지. 그런 줄 알아야지. 그거 가지고 애한테 그러면 되겠어?"


정말, 진심으로 제발, 그냥 가만히나 있어줬으면 좋으련만.

입이 방정이지.

책임 못 질 말은 아예 하지도 말라니까.

입으로 지은 , 결국 지은 인연의 과보는 피할 수가 없는 법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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