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어머님. 참기름을 이렇게나 많이 챙겨 주시다니요! 어머님 덕분에 맛있는 반찬 많이 먹을 수 있겠네요. 고맙습니다. 역시 어머님이 최고입니다."
라는, 입에 침을 잔뜩 바르고도 못할 그런 소리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았다 나는, 그 양반에게서.
자고로 소주병에 참기름을 한 번도 담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있어도, 그 병에 한 번만 담아 본 사람은 없다.(고 근거도 없이 또 마냥 확신한다.)
얼마나 쓰임새가 안성맞춤이냔 말이다.
친정 아빠가 항상 경계를 늦추지 않으시는 산패를 고려한 저 소주병의 색상을 보시라!
어쩌면 소주병은 쓰디쓴 그 술을 비운 후에는 애초에 참기름병으로 거듭나기 위해 저 초록 색깔을 입고 태어났는지도 모른다.(라고 또 혼자만 얼토당토않은 추측을 하기에 이르렀다.) 소주병의 이모작 인생, 바로 이런 게 아니겠는가. 소주병에게도 다시 태어날 기회를 주어야 마땅하다.
다만, 이번에는 안타깝게도 소주병의 뚜껑이 분실된 관계로 엉뚱한 다른 병의 뚜껑이 살포시 얹혀 있었다는 사실은 나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 뚜껑이든 저 뚜껑이든 기름이 새지 않게 잘 막아주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다행이다, 그 인간이 소주병과 뚜껑이 세트가 아닌 상태로 존재하는 이 모습까지는 목격하지 못하였으니.
참기름 병이 소주병인 것도 못마땅한 마당에 느닷없는 병뚜껑의 출연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뻔했다.
엄마는 그저 소주병의 새로운 쓰임새를 찾았을 뿐이다.
나도 어떤 용기의 내용물이 다 비워진 후에는 다른 용도로 종종 사용하기도 했었다.
다른 집들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나는 생각해 왔다.
참기름 병의 출신에 대해 이렇게까지 따지고 들 줄은 몰랐다.
(아니 관심도 없었다.)
그 고소한 참기름, 들기름으로 반찬을 만들어 먹노라면 나는 그 맛에서 우리 부모님의 짜디 짠 땀 냄새가 다 나는데, 일 년 내내 먹을거리를 대 주시는 부모님을 보면 고맙다가도 딸인 나는 안쓰러울 때가 많은데 어쩜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저렇게 야박하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