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나 안보나 매년 비슷하게 나와. 여름엔 에어컨 때문에 평소보다 몇 만 원 더 나오고."
"그러니까 줘 보라니까."
"안 봐도 된다니까. 20만 원 넘었어."
"어디 있어? 얼른 줘 봐."
이 인간이 평소엔 보라고 보라고 눈앞에 들이밀어도 관심도 없더니 그날따라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자꾸만 그 관리비 청구서를 내놓으라고 했다, 집요하게도.
내가 말했던 것처럼 평년과 다름없이 비슷하게 나온 달이었다.
"보면 뭐 해? 작년하고 비슷하다니까."
"내가 직접 봐야겠어."
갑자기 살림꾼이 되셨나.
왜 안 하던 살림에 눈을 뜨려고 하시는 거람?
내가 꺼내 오긴 했지만 어디다 뒀는지 또 생각나지 않았다.
버린 것 같기도 하고 어디다 착실히 둔 것 같기도 하고 그 양반이 달라고 재촉을 하니 더 생각이 안 났다.
"어디다 뒀는지 기억이 잘 안나네. 기다려 봐."
"얼른 찾아봐. 한 번 봐 보게."
하여튼 사람 닦달하는 데는 뭐가 있다.
기어코 그 청구서를 찾아내게 한 그 양반은 관리비를 훑어보다가 마침내 한 말씀하셨다.
"우리가 다른 집보다 7월에 더 많이 나왔네."
"우린 인덕션 쓰잖아."
"아, 맞다. 그렇지."
그래봤자 다른 집과 몇 십만 원씩 차이 나는 것도 아니었다.
다른 건 거의 비슷하고 전기요금에서 조금 차이가 났다.
"전기 요금이 좀 나왔네?"
"하루 세끼 다 집에서 해 먹는데 그럼 전기 요금이 안 나오겠어?"
"맞네. 그래도 전기 요금이 8만 원이면 많이 나온 거 아닌가?"
"주야장천 집에서 밥이랑 반찬 해 먹고, 애들 간식까지 만들어 주고 에어컨까지 쓰니까 그렇잖아."
"그렇긴 한데 더우니까 안 쓸 수는 없잖아. 우리가 전기 요금이 이렇게 많이 나왔었나?"
"이 정도 나온 지 10년 다 되어간다. 여름엔 5만 원에서 8만 원 사이야."
"밤에 잠은 자야 하니까 그건 어쩔 수 없지."
더운 건 못 참는 양반이라 전기 요금은 그쯤에서 넘어갔다.
다음엔 수도 요금이 문제였다.
"무슨 수도 요금이 3만 원이 넘어?"
"여름엔 그 정도 나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물을 얼마나 쓰길래 이렇게 많이 나와? 3만 원이면 엄청 많이 쓴 거야."
이 인간이 또 듣자 듣자 하니까 선을 넘으시네?
누가 들으면 나 혼자 그 물 다 쓰고 하루 종일 수도꼭지 틀어놓고 산 줄 알겠네.
"설마 내가 그 많은 물을 몰래 먹었겠어? 밥하고 설거지하고 반찬 해 먹고 빨래하고 게다가 우리 넷이 하루에 한 번씩만 샤워해도 최소 네 번 이상씩은 씻잖아. 그런 건 생각 안 해?"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한데? 물을 이렇게 많이 쓰는 집이 어디 있어?"
"다 필요한 데만 쓴 거지 어디 쓸데없이 낭비했을까 봐?"
"아니야, 이건 심해. 수도 요금이 너무 많이 나왔어."
"여름이라 빨래만 해도 하루에 두 번씩 하게 되는데, 그러니까 이 정도 나오는 거지."
"혹시 우리 집 어디에서 물이 새는 거 아니야?"
"그런가 보다. 어디서 새는지 한 번 찾아봐."
썼으니까 그만큼 요금이 나오는 거지.
그럼 집안에 우물을 하나 파시든지.
본인은 조금만 더워도 잠 못 잔다고 밤새 에어컨 틀어놓고 자면서 4인 가족 먹고 씻고 생활하는 데 수도요금이 지나치게 많이 나왔다며 계속 꼬투리를 잡았다.
"남들은 맨날 빨래한다면서? 날마다 하라면서? 날마다 하니까 그렇지. 그럼 며칠씩 같은 옷 입을래? 날도 더운데 한번 그렇게 해 봐. 샤워도 몰아서 일주일에 한 번만 하든지. "
아마도 빨래하는 데에 물이 많이 사용된 것 같다.
그리고 매끼 집에서 해결하니 아무래도 재료 손질이며 설거지 같은 이런 일도 무시 못할 것이고, 7월과 8월에 김치 담가 먹는다고 각종 재료를 사 와서 씻는다고 또 물을 많이 썼을 거다. 그렇다고 안 씻을 수도 없고 우리 가족이 먹을 거니 이왕이면 꼼꼼히, 깨끗하게 씻는다고 신경 쓰다 보니 그랬을 수도 있고 말이다.
새로운 김치를 내놓을 때마다 맛있다고 이젠 평생 김치 집에서 만들라고 엉뚱한 소리 할 땐 언제고 지금 수도요금을 잡고 물고 늘어지는 거지?
인과응잖아.
원인 행위가 있었으니 결과가 나온 거지.
물을 썼으니까 그만큼 수도 요금이 나온 거지.
그 간단한 걸 왜 모르시나?
그렇게 불만이면 앞으로 빨래하고 한 번만 헹궈서 그냥 줄까?
아니지, 그것도 아깝다면 헹구지 말까?
채소고 과일이고 씻지도 말고 줄까?
아침저녁으로 샤워하는 양반이 수도 요금을 운운하면 안 되지.
덜 쓰면 그만큼 덜 나오겠지.
"이참에 요강 하나 들여 주리?"
"갑자기 무슨 요강이야?"
"변기 물이 은근히 낭비가 많이 된다잖아. 집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요강 사용하면 되겠네. 내가 큰맘 먹고 이참에 하나 장만해 줄게."
쓸 일이 있으면 쓰고 아낄 부분이 있으면 아끼고 그렇게 사는 거지.
한쪽에서 더 쓰면 다른 쪽에서 더 아끼도록 노력하며 사는 거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양반 같으니라고.
40 평생 차라리 짠순이 소리는 들을지언정 헤프다는 말은 들어 본 적 없는 나인데(아낄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아끼려고 하지만 내가 무조건 악착같이 안 쓰려고 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래도 써야 할 일이 있으면 쓴다), 본인도 알 만큼 알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