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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Sep 03. 2024

펑펑 쓰게 놔두라고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딴 소리네

2024. 8. 26.

< 사진 임자 = 글임자 >


"아무래도 합격이가 물을 펑펑 쓴 게 문제였어. 씻을 때 물을 너무 낭비하는 거 같다고 내가 얼른 하고 나오라고 하면 나보고 재촉하지 말라고 그랬잖아. 샤워할 때 얼마나 물이 낭비되는 줄 알아? 그때는 실컷 하라고 놔두라고 해 놓고 이제 와서 수도 요금 많이 나왔다고 그 소리야? 내가 말할 땐 건성으로 듣고, 이제 와서?"


이런 게 자업자득 아닌가?

아무리 봐도 집에서 물이 새는 곳은 한 군데도 안 보였고 우리 집 멤버들의 물 사용 시간이 문제인 듯 보였다.

그리고 그 화제의 중심에 딸이 있었다.


딸은 아무리 너그럽게 봐주려고 해도 씻을 때 물을 너무 낭비하는 것 같았다.

한 두 번이 아니고 하루 이틀도 아니다.

온천을 좋아하는 딸은 그저 따뜻한 물에 한없이 빠져 있는 게 좋다고 했다.

좋은 건 좋은 거고 현실적으로 따질 건 따져봐야 했다.

"샤워는 최대한 짧게  빨리 하고 나와. 너희가 어디 흙먼지 뒤집어쓰고 일하다가 온 거 아니잖아. 땀 좀 흘린 거 말고 없잖아. 그러니까 얼른 비누칠하고 얼른 헹구고 나와야 돼. 알았지? 우리나라 물 부족 국가인 거 알지? "

딸이 욕실에 들어가기 전에 거의 매번 저렇게 단속을 해도 딸은 '대답만 잘한다'.

5분 에서 10분 정도면 간단히 땀을 씻어 내기 적당한 시간이라고 생각하는데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도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욕실에서 나올 줄을 몰랐다.

아마 내가 자꾸 재촉하지 않으면 거기 눌러앉아버릴지도 모를 어린이다.(라고 강하게 확신한다)

기운도 좋지, 난 기운이 없어서라도 그렇게 오래는 못 있을 것 같은데.

욕실 앞에서 딸을 제외한 우리 집 멤버 셋이 돌아가면서 딸에서 적당히 하고 나오라고 재촉하는 게 다반사다.

"합격아, 너무 오래 있었어. 이제 나와. 그렇게 물을 낭비하면 안 되지."

내 눈에는 정말 낭비 그 자체였다.

딸을 욕실 밖으로 유인하기 위해 1차로는 아들을 파견하고 2차로 그 양반을 파견하고 마지막으로 내가 출동한다.

하지만 알았다고 대답만 하고 딸은 함흥차사다.

"보니까 합격이는 물 낭비가 너무 심해. 물을 10분, 20분 계속 틀어놓고 샤워하면 어떻게 해?"

처음에 딸이 오랜 시간 동안 물을 틀어 놓은 채 씻는다는 사실을 알고 그 양반에게 내가 말했다.

"그냥 놔둬. 따뜻한 물이 좋다잖아. 그거 요금 나오면 얼마나 나온다고 그래? 그냥 실컷 쓰라고 해."

이랬던 양반이 그 양반이다.

이 인간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또 그러네.

세상 물정이라곤 모르면서.

애초에 그렇게 말이나 하지 말든가.

"얼마 나오긴? 날마다 샤워를 그렇게 한다고 생각해 봐. 그 수도 요금 무시 못해. 요금은 둘째 치고라고 그렇게 물을 낭비하면 안 되지. 아프리카에선 당장 먹을 물도 없이 사는 데도 있다는데 말이야."

"잔소리하지 말고 그냥 하고 싶다는 대로 하라고 해. 때 되면 나오겠지."

때가 돼도 안 나오니까 하는 소리지 이 양반아.

눈으로 보고도 그렇게 말을 하시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고 하는 게 자식을 위한 건 아닌데, 그리고 특히 그런 부분에서는 하고 싶은 대로 절대 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세상에 무한정한 것은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아까운 줄을 알아야 한다.

아낄 줄도 알아야 한다.

내 생각만 하고 살아서는 안된다.

매일 그렇게까지 물을 많이 쓸 필요가 절대 없단 말이다.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잖아. 날마다 저런다니까. 내가 재촉 안 하면 나올 생각을 안 해. 큰일이야."

처음엔 살짝 관대하던 그 양반도 시간이 갈수록 심각성을 느낀 듯했다.

"지금 부모 밑에서 공짜로 쓰니까 별생각 없이 저러겠지. 나중에 혼자 살면서 물 펑펑 쓰다가 수도요금 폭탄 맞아 보면 그땐 정신 차리겠지."

그 폭탄을 굳이 맞을 필요가 있을까?

어쩌면 한 번쯤 호되게 당할 필요도 있긴 있겠으나, 지금부터 교육시켜서 그런 폭탄은 아예 피하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꼭 직접 경험하게 하는 것만이 최선일까?

그리고 이왕이면 지금부터라도 정신을 차리면 더 좋지 않을까.

딸이 욕실에서 나오자 그 양반은 장황한 훈화말씀을 이어가셨다.

"에, 또, 그러니까, 나중에 어쩌고 저쩌고..."

여름이라 씻지 않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특히 7월과 8월은 무더위가 절정이다.

방학도 있으니까 아무래도 집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고 상주 인원은 더 늘었으니 전기든 수도든 더 썼으면 더 썼지 덜 쓸 재간은 우리 집 멤버 그 누구에게도 없었다.

다만 나는 '적당히'를 실천하는 어린이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내 아이들이.

'물을 아껴요!'라는 문구를 자랑스럽게 내걸고 언젠가 내게 그 깜찍한 것을 들이밀며 딸은 말했었다.

"엄마, 물을 아껴 써야 돼. 낭비하면 안 돼요. 설거지할 때 물 틀어놓고 하면 낭비가 많이 된대. 우리나라가 물부족 국가인 거 엄마도 알지?"

학교에서 '세계 물의 날'을 맞아 뭔가를 만들어 오신 날로 기억한다.

그랬던 어린이가 저렇게 물을 아낌없이 마구 쓰고 있다니!

그나마 끈질긴 나의 잔소리로 요즘은 전보다는 덜한 것 같다.


하루만 살 것도 아니고 나도 살고 앞으로 너도 살아야 하는데 낭비까지는 하면 안 되겠지?

그리고 그 양반은 제~발, 이랬다 저랬다 할 거라면 내가 하는 일에 나서지 말아 줬으면...

옆에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잡수란 말이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나는,

정말이지 그 떡도 주고 싶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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