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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Sep 04. 2024

바가지는 안 긁어도 이건 긁어주지

그러니, 잡수기만 하시라

2024. 8. 20.


< 사진 임자 = 글임자 >


"난 또, 웬일로 당신이 내 밥을 다 긁어먹나 했지."

"내가 그걸 왜 먹어?"

"내 밥그릇 달라고 하니까."

"그러면 못 써. 잡혀 가."


그러면 안 되지, 안 되고 말고.

남의 밥그릇 빼앗아서 긁어먹으면 절대 안 되지.

내 딸, 아들이 먹다 남긴 밥이라면 몰라도 그 양반이 남긴 건 정중히 사양하련다.


"밥그릇 줘봐."

"왜?"

"일단 줘."

밥을 다 먹은 것 같아서 그날도 나는 그 양반으로부터 밥그릇을 회수했다.

1차로 밥알을 남겼는지 먼저 점검 들어간다.

남은 밥알이 없다면(물론 정말 진짜로 단 한 톨도 남지 않아야 통과된다) 다음엔 혹시라도 밥그릇에 남아 있을지 모르는 '참깨'의 흔적을 찾아야만 한다.

"이게 뭐야? 깨가 100개는 더 붙어 있잖아?"

"있긴 뭐가 있다고 그래?"

"봐봐. 이걸로 참기름도 짜 먹고 볶아도 먹겠다."

물론 과장이 심하긴 하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하지만 가끔 그 양반은 너무 살림이 헤프다.

그러니까 음식 아까운 줄을 모르는 것 같다.

정말 그 양반에게 받은 밥그릇 안에 깨가 사방 천지에 붙어 있었다.

나물 반찬을 해서 밥그릇에 옮겨 담아 먹다가 그 사달이 났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나는 그 작은 깨 하나도 하수구로 흘려보낼 수는 없었으므로 숟가락을 신중히 움직여 전부, 죄다, 모조리 다 싹싹 긁어서 그 양반 앞에 내밀었다.

"자, 잡솨."

"에이. 그거 얼마나 된다고."

"얼마나 되긴? 이렇게 많은데?"

"하여튼 당신은."

처음에 그 양반은 내가 만에 하나라도 자신이 먹다 남긴 것들을 쓸어 먹을 줄 알았나 보다.

그건 단단히 착각한 것이다 물론, 혼자서만.

"하긴, 너희 엄마가 아빠가 먹다 남긴 걸 먹을 리는 없지."

느닷없이 그 양반은 남매에게 동의를 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남매는 그런 제 아빠의 말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각자 자신의 밥그릇을 싹싹 긁고 있었다.

음, 아주 바람직해.

자고로 밥은 저렇게 먹는 것이야.

밥 한 톨도 남겨서는 아니 될 것이다.

공양하고 발우를 물로 씻어 모조리 비워 먹는다는 마음으로 임하면 돼.

"엄마, 잘 먹었어요. 깨끗이 먹었지?"

그날따라 유난히 밥그릇을 윤기 날 만큼(물론 거짓말 좀 보태자면 말이다) 깨끗하게 비운 아드님께서 검사차 내게 자신의 그것을 내밀었다.

"우리 아들, 정말 잘했어! 통과!"

아드님은 무사히 통과했고, 딸은 보나 마나 확인해 보지 않아도 설거지 수준으로 밥그릇을 비워냈을 것이다.

항상 문제는 그 양반이었다.

가끔 내가 깜빡하고 검사(?)를 하지 않으면 대충 먹고 음식을 반은 버린다(물론 이렇게 표현했다는 사실을 알면 그 양반은 말도 안 된다고 펄쩍 뛰겠지만 그만큼 대충 먹고 버릴 때가 있다는 거다).

"그거 얼마나 한다고 그래?"

내지는

"에이, 그거 얼마 되지도 않는데 그래?"

라는 식으로 두루뭉술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려고까지 한다.

그래서 내가 결심했다.

내가 지금 이 순간 긁어야 할 것은 바가지가 아니라 그 양반의 밥그릇이다.

그 양반의 등도 긁어 줄 마음 전혀 없지만 밥그릇만큼은 긁어줘야겠다.

"이거 어머님이 힘들게 농사지어서 주신 거야.(=우리 엄마 말고 당신 엄마 말이야.) 깨농사짓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알아?(=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양반이 말은 많네.)한 여름에 수확해서 말려서 깨 털어야 돼. 깨 농사만큼 수고에 비해서 수확 안 나는 것도 없대.(=그러니까 더 귀한 줄 알고 싹싹 다 긁어 잡수시라.)"

어머님이 땡볕에서 힘들게 고생해서 농사지은 걸 보내주신 거다.

내가 직접 깨농사를 지어 본 적은 없지만 부모님이 다른 농사짓는 것을 많이 봐 왔으므로 농사가 얼마나 힘들고 고된 노동인지를 조금은 안다.

시가에 가서 한 번이라도 깻단을 나르고 탈탈 털어주지는 못할망정 우리 집까지 무사히 도착한 그것을 대충 먹고 흘려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절대.

그 참깨, 너무나 하찮을 만큼 작디작아서 더 아깝다.

어차피 다 안 먹고 설거지하면 그게 음식 쓰레기밖에 더 되나?

숟가락 들 힘만 있다면 그저 긁어먹어야 한다.

어머님 아버님이 저 깨를 수확하시느라 얼마나 고생하셨을지를 생각하면, 그러면 나는 더 그릇을 박박 긁어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쌀도 그렇지만 저 작은 깨 한 알도 밥상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험난한 여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겠냔 말이다.

"그냥 대충 먹고 씻어."

라고 말하는 남의 아들은 이런 내 마음같은 건 관심도 없는  듯하다.

"우리 아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너희 주려고 힘들게 농사지어서 보내신 거야. 항상 고마운 마음으로 먹어야 돼. 우리가 마트에서 사 먹는 것들도 다른 사람들이 고생해서 다 수확한 거야. 그래서 우리가 편하게 이렇게 앉아서 사 먹을 수 있는 거고. 알겠지?"

남의 아들은 이미 물 건너갔고 내 아들만이라도 세뇌교육시켜야겠다.

"알았어, 알았어. 먹을게."

그 양반은 마지못해 입을 벌리셨다.

애초에 밥그릇을 빼앗은 건 긁어 주려고 그런 거지, 내가 먹으려고 그런 거 아니었어.


명심해.

내가 당신에게 바가지는 긁지 않겠어.

하지만 밥그릇에 남긴 밥알이나 참깨는 결코 내가 허투루 보지 않아.

기억해.

내 사전에 한 번 밥그릇 안에 들어간 밥알과 참깨는 결국 당사자들의 입 속으로 들어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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