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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Oct 15. 2024

남이 하면 간섭

본인이 하면?

2024. 10. 11.

<사진 임자 = 글임자 >


"왜 얼음 넣는 것까지 간섭하고 그래?"

"그게 무슨 간섭이야?"


정말 지금 간섭을 누가 누구한테 하는지 모르겠다.

그게 간섭이 될 수 있나?

그런 게 간섭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양반이 내게 그렇게 말하는 게 더 간섭하는 것만 같았다.


"날씨도 쌀쌀하고 요즘 감기 걸리기 딱 좋은 날씨야. 몸도 안 좋은 것 같은데 그냥 물 마시는 게 어때?"

아들이 밤늦게 찬물에 얼음까지 넣어 마시려고 해서 나는 그 말밖에는 안 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그 양반이 끼어들었다.

"그냥 얼음 먹으라고 하지 왜 못 먹게 하고 그래? 그런 것까지 간섭하면 어떡해?"

왜 그러기는 이미 앞서 내가 다 말했잖아.

컨디션도 별로 안 좋은 것 같고 이제 곧 자러 가야 하는데 밤 10시가 다 되어가는데 너무 차가운 얼음을 넣은 찬물을 먹는 건 별로 좋지 않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지 내가 무턱대고 결사반대 하는 건 아니지 않느냔 말이다.

한여름도 아니고, 결정적으로 내가 얼음을 못 먹게 한 것도 아니고 그냥 물을 마시는 게 어떠냐고 한마디 했을 뿐인데 그 말한 것 가지고 간섭을 다 당했다.

참 재주도 용하다. 다른 때는 아이들 일로 얘기하고 또 얘기하고 예고하고 알려주고 일일이 다 말해줘도 건성으로 듣고 별 반응도 없으면서 꼭, 하필이면 이럴 때만 출동하시다니. 어디선가 우리에게 전~혀 무슨 일이 생기지도 않았는데 어김없이 나타나는지 희대의 미스터리다, 물론 우리 집에서만.

"내가 괜히 그렇게 말한 줄 알아? 요즘 거의 습관적으로 밤마다 꼭 자기 직전에 얼음물을 마시니까 하는 소리지."

한여름 낮에 물 마시던 습관이 이상하게 한밤중으로 옮겨온 것 같았다.

뿐이랴, 아들은 요즘 밤참 드시는 일에 맛 들인 것 같았다.(고 내 눈에 보였다)

"출출한 것 같은데 뭐 먹을 거 없나? 뭔가 모자란 것 같은데."

이렇게 말하면서 내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면 나는 그 두 손을 맞잡아 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처음에는 정말 뭔가 부족한가 싶었다.

한꺼번에 많이 먹는 스타일이 아니니(어쩜 이리 나를 쏙 뺐는지 몰라) 그럴 수도 있겠다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꾸준히 축적해 온 나만의 스몰 테이터를 분석해 본 결과 나중엔 순전히 상습적이 되었다.

저녁을 다 먹고, 그날 하루치의 음식을 다 먹고 꼭 9시가 넘어가면 그때서야 활동을 개시한다.

"엄마. 나 아직 배가 덜 찬 것 '같'아. 아직도 배가 고픈 것 '같은'데."

처음엔 한창 클 때니까 그러나 보다 했었다, 당연히.

평소 음식을 마구 먹어대는 성격이 아니셨으므로 이때다 싶어 온갖 비위를 맞춰가며 먹일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대령해 줬었다.

그러나 이것이 습관성 야참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을 때쯤에는 작전 변경이 필요해 보였다.

"우리 아들, 잘 들어 봐. 배가 덜 찬 것 같은 거지, 확실히 덜 찬 건 아니잖아? 배가 고픈 것 같은 거지 배가 정말 고픈 것도 아니잖아. 안 그래?"

"응. 엄마 말이 맞네. 그래, 배가 고프지는 않아. 그냥 느낌이 그래."

"그러니까 그게 가짜 배고픔일 수 있대. 요즘 네가 밤마다 음식을 먹어서 습관이 돼서 그 시간이 되면 그냥 왠지 먹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 수도 있어. 엄마도 어쩔 땐 그렇더라. 정말 배가 고픈 거라면 먹어야겠지만 그냥 기분상 배고픈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는 꼭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 넌 어떻게 생각해?"

"맞아. 나도 알아. 지금 보니까 배가 고픈 건 아니야."

"그래. 그 순간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그래도 계속 배 고프면 그때 진짜로 먹으면 되겠다. 그치?"

라고 아드님과 정답게 오손도손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는데 또 난데없는 불청객이 깜짝 출연하시는 걸 잊지 않으셨다. 카메오치고는 너무 빈번하다.

"먹고 싶다는데 그냥 주지 그래? 애들이 먹어야 잘 크지."

뭔가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지 언제 먹고 싶다고 했다는 거지?

그리고 지금 시간을 좀 보라고.

"지금 저렇게 밤마다 말한 지 한참 됐어. 아무래도 습관적으로 먹고 있는 것 같다니까. 저녁을 적게 먹는 것도 아니고 중간에 간식을 안 먹는 것도 아니라고. 그리고 밤늦게 잘 시간에 그렇게 아무 음식이나 먹고 자면 몸에는 좋겠어? 내가 무조건 못 먹게 해? 잘못 습관이 들까 봐 그러지. 요즘 밤마다 자기 전에 단 음식 먹고 과자도 먹고 자몽차도 한 사발씩 마시고 그러고도 또 음식 찾는다고. 알기나 해? 그리고 이왕 먹을 거면 몸에 덜 해로운 걸 먹었으면 하는 거지, 모르면 제발 가만히나 있어."

이 말을 앞으로 몇 백 년 동안 계속해야 하는 걸까?

잘은 모르지만 음식을 먹고 최소한 소화할 시간은 줘야 하지 않나? 적어도 자기 전에 너무 달거나 짠 자극적인 음식은 피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먹일 때 먹이더라도 가능하면 몸에 이로운 음식을 먹여야 하는 거 아닌가?

(이렇게 말하면서도 아이들이 다 잠든 한밤중에 종종 달고 짠 음식을 남몰래 흡입하는 나의 모습을 나머지 세 멤버에게 발각되지 않은 게 얼마나 천만다행인가.)

"우리 아들, 잘 들어 봐. 엄마가 무조건 못 먹게 하는 건 아니잖아. 이렇게 늦게 먹는 것보다는 가능하면 저녁밥을 먹을 때 든든히 먹어 두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그러고도 약간 모자란다 싶으면 최소한 자기 한두 시간 전에 먹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래. 밤늦게 음식 먹고 바로 눕는 게 그렇게 몸에 안 좋대. 소화기간이 쉴 시간도 필요하대. 우리 아들 몸에 안 좋다는 건 안 했으면 좋겠어. 엄마도 예전에 자기 직전에 그냥 단 과자를 매일 먹었었어. 처음엔 그냥 진짜로 배가 고파서 먹기 시작했거든 근데 그게 습관이 돼서 배 고프지도 않은데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먹게 되더라. 그리고 자꾸 다른 음식도 먹고 싶어지고. 나중엔 안 되겠다 싶어서 정신 차리고 안 먹었지. 엄마가 경험해 봐서 네 기분이 어떤지 좀 알아. 엄마는 우리 아들이 건강했으면 좋겠어. 무슨 말인지 알지?"

"응. 이게 다 엄마가 나를 생각해서, 걱정돼서 그러는 거잖아."

참 희한하단 말이야.

어린 내 친아들은 이렇게 말귀를 잘 알아듣는데 어째서 남의 다 큰 아들은 이렇게 말이 안 통한담?


"아들, 얼음은 두 개만 넣어라."

그 양반이 갑자기 아들을 제지하고 나섰다.

기회는 이때다.

유치하지만 이때야말로 뭔가 갚아 줄 절호의 기회다.

"얼음을 두 개 넣든 백 개를 넣든 알아서 하라고 하지 뭘 그런 것까지 간섭하려고 그래? 나한테는 간섭하지 말라고 하면서 웬 간섭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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