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임자 Aug 30. 2024

AI가 쪽파 김치를 담글 수 있을까

우리 집 소확행 이야기

2024  8. 25.


< 사진 임자 = 글임자 >


"얘들아, 이러다가 김치도 AI가 담그는 시대 오는 거 아니야?"

"그럴지도 모르지."

"AI가 김치를 담글 줄 알까?"

"나중엔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점점 별 걸 다 하는 세상이니까."


토요일 아침, 그날도 나를 제외한 세 멤버는 '소확행'을 몸소 실천하셨다.


소 : 소량이지만

확 : 확실한 쪽파를 다듬는

행 : 행동


그 양반과 남매는 먼저 아침을 먹었고 나는 다른 집안일을 하다가 혼자서 뒤늦게 아침을 먹던 중이었다.

"얘들아, 아빠랑 파 다듬자."

그 양반이 먼저 시범을 보이며 아이들을 불렀다.

기대도 안 했는데 웬일로 저렇게 적극적으로 나오시는 거람?

"아빠가 웬일이야?"

아들이 아침부터 소일거리에 집중하고 있는 제 아빠를 보며 슬금슬금 옆으로 다가왔다.

"근데 난 저번에도 혼자 다 다듬었는데?"

아들 말이 맞다.

며칠 전에 아들이 쪽파를 혼자 반 단 정도 다 다듬었었다.

"그래도 아빠랑 같이 하자. 우리 셋이 같이 하면 빨리 끝낼 수 있잖아."

그 양반은 포기하기 않고 끝내 남매를 포섭했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풍경이라니.

오손도손 아이들과 쪽파를 다듬는 그 양반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마도, 우리 집에서 쪽파 김치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그 양반이라서, 얼른 다듬어서 내게 넘겨줘야 내가 바로 김치를 담글 수 있으니 아침부터 서두른 것이리라.

직접 김치를 담그는 건 아니고 쪽파를 다듬는 일 정도는 우리 집 멤버 남녀노소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니 나는,

"평일 내내 일하느라 피곤한데 무슨 쪽파야?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마. 제발 그냥 쉬어줘!"

라고는 그 양반을 향해 입도 뻥끗하지는 않았다, 물론.

간헐적 집안일 참여, 그게 그 양반의 특기다.

자고로 특기는 살려주는 맛이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그의 재능 기부를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자신의 의지로 그 소일거리를 도맡았던 것도 아니다 물론.

먼저 아침을 먹은 그 양반 앞에 내가 다짜고짜 쪽파를 들이밀긴 했다.

"이 파를 다듬어야 쪽파 김치를 담글 텐데..."

그 말만 했다.

그랬더니 용케도 눈치를 채고 작업을 시작하신 거다.

대견하기도 하지.


쪽파를 다듬다가 무슨 얘기 끝에 'AI'가 나왔다.

"앞으로는 정말 많은 직업이 'AI'로 대체될 거라던데, 우리 애들은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까?"

"최대한 'AI'가 할 수 없는 그런 일을 찾아봐야 하겠지."

"그럼 그런 게 뭐가 있을까, 얘들아?"

아이들은 나름 들은 얘기를 가지고 과연 자신들은 앞으로 어떻게 미래를 살아낼 것인지에 대해 열을 올리며 말했다.

"엄마가 기사에서 봤는데 '일론 머스크'는 결국 인간이 노동에서 해방될 거래. 근데 그게 정말 가능할까?"

최근에 본 기사를 내가 이야기했다.

"글쎄. 뭐 그럴 수도 있겠지. 'AI'가 쪽파를 다듬어 줄지도 모르지. 그럼 우리가 힘들게 이렇게 일 안 해도 되잖아."

아드님이 나름 제 생각을 말했다. 안 듣는 것 같으면서도 내 말을 다 듣고 있었다.

아이들도 제법 쪽파 앞에서 진지했다.

하긴 쪽파를 다듬을 때 가장 적당한 화젯거리는 'AI 시대를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라든가 '향후 전도 유망한 미래 직업군은 어떤 것인가' 내지는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대체 불가능한 사람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하는 정도의 것일 테니까.

"모닝스페셜에서도 이제 AI가 실시간으로 뉴스기사를 받아쓰기해 줄 거라고 요즘 매일 방송하잖아. 너희도 들었지? 얼마나 정확히 듣고 그대로 옮길지 정말 궁금하다."

요즘 EBS에서 오디오어학당을 듣고 있으면 하루에도 몇 번씩 저 내용이 나온다.

"뉴스 기사도 AI가 받아 적는다고?"

딸이 신기해했다.

"그럴 거래. 모닝스페셜도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할 건가 봐."

"진짜 AI가 별 걸 다 하네."

"앞으론 진짜 더 별의별 걸 다 할 수도 있겠지."

"그래. 그럴 수도 있겠네."

딸은, 아직 체감할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어느 순간 여기저기에서 'AI'를 심심찮게 듣는 요즘 뭔가 세상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쯤은 눈치로 아는 것 같았다.

"인간이 노동을 안 하고 살면 좋을 것 같지? 안 그래? 당장은 놀고먹으면 편할 것 같지만 또 그게 아니라니까."

그 양반도 가세했다.

"왜, 아빠? 일 안 하면 좋지? 맨날 놀면 좋잖아."

철없는 우리 집 최연소자 아들이 말씀하셨다.

역시 넌 아직 어려.

어리고 말고.

"너희가 아직 잘 몰라서 그래. 사람이 할 일이 있어야지 일을 안 하면 활기도 없고 오히려 더 안 좋을 수 있어."

그 양반은 물 만난 고기처럼 장황한 훈화말씀을 이어 가셨다.

물론 아이들은 아직 아빠의 설명에도 잘 이해가 되지 않은 눈치였고 말이다.

"나중엔 인간이 노동에서 완전히 행방되고 결국 취미로 일을 하게 될 거래. 너흰 어떻게 생각해?"

내가 또 '일론 머스크' 아저씨의 말을 Ctrl+C, Ctrl+V 했다.

정말 그런 날이 올까 싶으면서도 그런 세상에서 살면 과연 인간이 자유로움을 느낄까, 아이들과 한참을 떠들었다. 이런 주제는 먼 나라 이웃 나라의 일이 아니다. 당장 내 아이들의 일이다. 그 양반과 나는 항상 '앞으로 생겨날 직업과 사라질 직업, 유망한 직업과 위기에 놓일 직업 등등, 장래에 대해 기하곤 한다. 그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막연했던 미래가 불안해지기도 하고 암담했다가 그래도 무슨 수가 있긴 하겠지 하면서 말이다.


확실히 시대는 변하고 있었다.

'엄마 아빠 어렸을 때는'이라는 라떼 한 잔으로는 감히 어찌해 볼 수 없는 오만가지 현상과 보고도 믿지 못할 해괴한 일들이 하루에도 셀 수 없이 쏟아지는 세상이다.

벌써부터 나는 (아직 미성년자인 남매를 보면서) 태어나지도 않은 '손자'들이 살아갈 세상을 생각하곤 한다.

그러면서 다짐을 한다.

내 힘이 닿는 데까지는, '쪽파 김치 정도는' 내가 직접 담가봐야겠다고.

그 정도의 능력은 내게 있다고, 앞으로도 을 거라고,  최대한 있을 예정이라고.

역시 사람은 무언가 활동을 할 때 존재의 이유를 확인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매거진의 이전글 아들이 웃잖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