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는 너희한테 진짜 전화도 자주 하시지? 아마 오랫동안 데리고 키워서 그러신가 봐. 맛있는 것만 있으면 너희 먹으라고 다 주시고. 그치?"
"어? 엄마, 엄마가 나 키워준 거 아니었어?"
출생의 비밀을 난생처음 듣게 된 사람마냥 딸은 정색을 하며 내게 물었다.
어마? 얘 좀 봐?
진짜 기억도 안 나나 보네.
육아의 비밀,
그 옛날 친정에서는 육아의 비밀(이랄 것까지도 없는 것)이 있었다.
"너 어릴 땐 외할아버지 집에서 자랐지."
"내가 왜 거기서 살았어? 엄마 아빠랑 안 살고?"
"엄마 아빠가 둘 다 직장 생활하니까 그랬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나를 키웠어야지. 자식을 키웠어야지."
"너 태어나고 출산휴가 3개월 쓰고 육아휴직도 6개월 썼지. 9개월 동안 그땐 엄마 혼자 키웠지. 아빠는 그때 섬에서 근무하느라 주말에만 집에 오는데 엄마 혼자 일하면서 키울 자신이 없었어. 또 네가 첫째라서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래서 복직하고 나서부터는 외할아버지 집에서 컸지."
"왜 육아휴직을 그것밖에 안 했어?"
"그땐 그랬어. 그리고 엄마랑 아빠랑 같이 돈을 벌어야 너를 키우지. 그땐 둘 다 월급이 백만 원 초반대라 얼마 되지도 않았거든."
"왜 그렇게 월급을 조금밖에 안 줘?"
"원래 처음엔 다 그렇게 적어. 시간이 가면서 조금씩 오르는 거지.(진짜 조금씩, 아~~~ 주 조금씩)"
"육아휴직도 왜 그렇게 짧게 했어? 어차피 휴직 수당도 나오잖아? "
이런,
넌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구나.
"그때 엄마가 매달 육아휴직 수당 45만 원 받았어. 솔직히 그게 많은 돈은 아니잖아?"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나를 두고 출근을 할 수가 있어?"
"그럼 엄마가 출근은 해야 하는데, 너 업고 출근하리?"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지 몰라도 친정 부모님의 외손주 사랑은 끔찍하신 것 같았다.
딸은 5살이 넘을 때까지, 아들은 4살이 되어 갈 때까지 키워주셨다.
(딸은 9개월간, 아들은 15개월 간 내가 키웠고 나머지 기간은 부모님이 맡아주셨다.)
부모님은 지금도 종종 옛날에 우리 아이들 키우던 때를 회상하시곤 한다.
물론 남매는 그게 다 무슨 소린고? 하면서 처음 듣는 소리처럼 반응하지만 말이다.
"어머니,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지극하고 정성스러운 돌봄 덕택에 오늘날 저희가 이렇게 잘 자라날 수 있었사옵니다. 그 은혜 각골난망하옵고 언젠가 그 은혜에 보답할 날이 오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소자 어떻게 그 은혜를 갚을 도리가 있겠사옵니까? 매일 안부 전화라도 여쭙까요? 평생 매일 전화 한 통씩 드린다고 해도 하늘처럼 넓고 바다처럼 깊은 그 은혜 차마 다 헤아리기 어렵겠나이다."
라는 식의 대답은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왜 자신을 외가에 맡겼느냐고 따지고 들면 어쩌자는 거람?
별 탈 없이 잘 자라왔잖아?
이 정도면 됐지.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
애초에 그 말을 한 건 항상 너희를 위해주고 사랑해 주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 고마운 마음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