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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Sep 17. 2024

엄마는, 3초 만에

그래, 아들 덕분이지

2024. 9. 13.

< 사진 임자 = 글임자 >


"잘 시간에 까불고 놀더니, 이게 뭐야?"


3초만 기다렸다가 말하라고 했는데 0.1초도 못 기다리고 또 버럭 했다.

그리고 3초도 안 돼서 또 후회했다, 물론.


우리 아이들은 참, 참으로 밝다.

보는 사람들마다 말한다.

"애들이 참 밝아."

정말 밝디 밝다.

가끔 혼 내도 그때뿐이다.

그러니까 뒤끝이 없다.(없는 편이라고 믿고 싶다)

바야흐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려는 순간이었다.

"얘들아, 내일 학교 가려면 이제 정리하고 자야지."

처음엔 물론 나도 인자하게(?) 나온다.

나는 자애로운 어머니니까.

"시간을 봐봐. 지금 몇 시야?"

두 번째는, 그래, 두 번째도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천진무구한 두 어린이는 전혀 잠자리에 들 생각이 없어 보였고, 내가 하는 말 같은 건 가볍게 흘려보내는 것 같았다.

"내일 학교 안 갈 거야?!"

삼 세 번의 민족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그날도 나는 목소리가 커졌다, 세 번만에.

애들이 밝아서, 너무 밝아서(=내 말이 안 먹혀서) 내 말 같은 건 들은 척도 안 하다가 급히 정리를 하느라 급기야 사달이 나고 말았다.

정리를 하는 것인지 까부는 일의 연장선인지 헷갈리게 여전히 둘이 까불면서 거실 정리를 하다가 말이다.

식탁 위에 있던 물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컵에 담겨 있던 것도 아니고 자그마치 1.5 리터들이 물병에 담겨 있던 물이었다.

게다가 맹물도 아니고 그날따라 진하게 우린 작두콩물이었다.

이불에 그 갈색물이 스며든 건 찰나였다.

방은 덥다며 에어컨을 틀고 거실에서 자느라 이불을 가져와서 "또 까불다가' 그랬다

"잘 준비하라고 할 때 안 하고 까불기만 하다가 이게 뭐야! 이불 빨래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 와중에 나는 이불 빨래를 한 지 일주일도 안된 상황에서 다시 또 빨래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스치면서 화를 내고 말았다.

이게 화를 낼 일이었던가?

화까지 낼 일이었던가?

그저 세탁기에 한 번 넣어 주면 될 일을.


여태껏 그 어떤 명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것도 거리낄 것 없이 자유분방하던 두 어린이는 잠시 일단 멈춤 했다. 물론 (아주 잠깐만) 웃음기는 싹 가셨고 말이다.

"왜 엄마가 한 번 말하면 안 듣는 거야? 잘 시간까지 이렇게 노는 애들이 어디 있어?(물론 지구 반대편에서, 어쩌면 바로 옆집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있어도 없다) 엄마 말 안 듣고 계속 까불다가 이렇게 됐잖아."

부끄럽게도 나는 무조건 아이들 탓만 하고 싶었다.

애들이 놀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건데.

깨고 엎지르고 쏟고, 그런 일은 다반사인데.

하지만 이미 내 기분이 상해 버린 후라 마음이 후해지지는 못했다.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기분을 결정한다던데, 그동안 헛공부했구나.

맨날 책 보고 강의 들으면 뭐 하나.

실전에는 이렇게 약한걸.


아이들도 (당장 그 순간만큼은) 표정이 침울해 보였다.

"너 때문에 이불 또 빨게 생겼잖아!"

사건의 주인공인 아들을 향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다 쏟아냈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당장 화가 나니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해 본다)

아들의 얼굴은 더 어두워졌고 눈치를 보며 곧장 자리에 누웠다.

화를 낼 상황까지는 안 가려고 하는데, 화를 내면 서로 좋을 게 없는데, 내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별 것도 아닌 일로 화내는 순간이 있다, 아직도 여전히.

나는 '화를 무조건 참지는 말자'는 주의다.

화가 나면 화를 내는 게 더 낫지 무조건 참기만 한다고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으로는 말이다.

그러고 나서 대부분 후회를 하곤 한다 또.

화 낼 상황은 아니었는데, 화까지 낼 것은 없었는데, 하면서 말이다.

나는 이제 온통 이불 빨래 생각만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이불 그거 세탁기가 하지 당신이 하는 거 아니잖아?"

라고 말하는 우리 집 성인 남성은 별 것도 아닌 걸로 아이들에게 화를 낸다며 한소리 하셨고 듣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무튼 당시에는 그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미 화를 내버린 상황에서 그렇게 나오는 그 양반의 말도 거슬리기만 했다.

아들이 누워서 눈을 질끈 감고 있어다.

그제야 나는 아차 싶었다.

그렇게까지 화를 낼 일도 아니었는데 내가 너무 심했구나.


화낼 때는 언제고 아들 옆에 바짝 다가가 누워서 아들 기분을 살폈다.

"엄마가 아까 화 내서 미안해. 실수로 그런 건데, 우리 아들이 일부러 한 것도 아닌데 화를 내 버렸네. 그래도 우리 아들 '덕분에' 이불 빨래를 할 수 있게 됐네. 엄마가 새로 깨끗이 이불 빨아 줄게. 그럼 상쾌해서 우리 아들이 잠을 더 잘 잘 수 있겠지?"

그제야 아들은 눈을 떴다.

눈물이 살짝 그렁그렁한 것도 같았다.

그깟 이불 빨래 한 번 더 하게 된 게 무슨 대수라고 그렇게 화를 냈을꼬?

결국 내가 귀찮은 일이 생기니까 아들 탓만 했구나.

"우리 아들, 사랑해, 잘 자. 예쁜 꿈 꿔."

어김없이 매일 밤 아이들에게 하는 말을 건넸다.

볼에 뽀뽀를 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론.

"네, 엄마도 사랑하고 예쁜 꿈 꿔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들의 답이었다.

역시 우리 아들은 뒤끝이 없다니까.

뉘 집 아들인고 참 밝단 말이야.

밝아, 참 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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