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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Sep 24. 2024

공개 수업에 가야만 하는 이유

친구들이 궁금해

2024. 9. 16.

< 사진 임자 = 글임자 >


"혹시 그 친구가 우리 아들 좋아하는 거 아니야?"

"엄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나는 아들에게 물었는데 딸이 발끈했다.

왜 말도 안 돼?

그럴 수도 있지.

그러리라고 엄마는 강하게 확신이 드는데.(물론 그러리란 증거는 확실히 없지만서도 말이다)


"엄마가 공개 수업에 가야겠지?"

곧 공개수업이 있다.

일 년에 한 번뿐인 귀한 날이다.

남매의 친구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유별난 엄마란 뜻은 아니다,

내가 가서 한 번 봐야겠어, 친구들을.


지난주에 아들이 과자 한 꾸러미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하교했다.

"누나, 내가 뭘 가져왔게? 이거 내가 게임에서 1등 해서 받은 거야. 누나도 줄게."

"그게 뭐야? 누가 이렇게 많이 줬어?"

"OO이가 갑자기 이벤트를 했어. 게임을 했는데 거기서 1등 한 사람한테 이걸 다 준다고 했는데 내가 거기서 1등을 했지."

가만,

이거 뭔가 좀 수상한걸.

왜 갑자기 그 여자 사람 친구가 그런 일을 벌인 거람?

그런데 듣고 보니 그 이름이 낯설지가 않아.

전에 아들이 종종 입에 올리던 이름이잖아?

"우리 아들은 아마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겠지? 남자 친구들한테도 인기 많지만 여자 친구들한테도 인기가 아주 많겠지? 우리 아들이 반에서 제일 인기 있겠지?"

라며 나는 종종 아들 앞에서 팔불출 행세를 했었다.

"엄마, 그게 무슨 말이야? 난 그냥 친구들하고 다 친해."

그럴 때마다 아들은 콧방귀를 뀌었고 말이다.

"그래도 우리 아들은 인기가 많을 거야. 그러니까 걸핏하면 친구들이 과자를 주지. 안 그래?"

내가 무턱대고 호들갑을 떨었던 건 아니었다.

정말 아들은 하교할 때마다 뭔가를 자주 들고 오곤 했다.

친구가 줬다며, 친구가 사줬다며, 자신에게만 줬다며.

음, 뭔가 심상치 않아.

분명히 뭔가가 있어.

"근데 OO이 말이야. 전에도 너한테 과자 몇 번 주지 않았어?"

"그랬지."

"혹시 OO이가 우리 아들 좋아해서 그러는 거 아니야? 물론 우리 아들은 누구라도 좋아할 만 하긴 하지만 말이야."

"하여튼 엄마는."

어라?

아니라고는 말 안 하네?

"OO 이는 어떤 친구야? 친해? 왜 자꾸 우리 아들한테 뭘 주는 거지?"

"나도 몰라!"

모르긴 뭘 몰라.

이 엄만 다 알겠는데.

"엄마는 꼭 그러더라. 그냥 줄 수도 있는 거지. 별 걸 다 갖다 붙여."

옆에서 보다 못한 딸이 기어이 한 말씀하셨다.

"아니야. 엄마가 보기엔 뭔가가 있어."

"있긴 뭐가 있다고 그래?"

"안 되겠어. 이번 공개 수업에 반드시 엄마가 가야겠어."

아들이 가져온 과자 꾸러미 안에는 쪽지도 있었다.

역시, 내 짐작이 맞았어.

뭔가 있긴 있다니까.

쪽지의 내용은 '축하해" 달랑 세 글자가 전부였다.

축하한다고? 도대체 뭘 축하한다는 거지?

오호라, 쑥스러워서 다른 말은 못 하고 그 말만 적은 거로구나.

세상에, 과자를 종류별로 주는 것도 모라자서 쪽지까지 손수 작성해 주시는 여자 사람 친구라니!

"어마, 우리 아들 보고 축하한대. 우리 아들한테 편지까지 다 썼네. 좋겠다."

그냥 쪽지인데 그 세 글자 외엔 다른 어떤 말도 없었는데 나만 혼자 북 치고 신나게 장구를 쳤다.

"엄마 또 너무 멀리 간다."

딸이 제동을 걸었다.

"다른 말도 하고 싶었는데 쑥스러워서 못했나 보다. 그냥 과자만 줬어도 될 것을 굳이 쪽지까지 써 준 이유가 뭘까? 분명히 이유가 있겠지?"

"엄마, 그만 좀 갖다 붙여."

아들이 참지 못하고 나를 제지했다.

내가 정말 너무 멀리 갔나?


"이번 공개 수업에는 엄마가 꼭 가서 친구들 좀 봐야겠다. 우리 딸이랑 아들이 어떤 친구들이랑 노는지 한 번 정도는 볼 수 있잖아?"

다른 불순한 의도는 전혀 없다.

그저 아이들이 어떤 친구들과 어울리는지 친구들 얼굴이라도 한 번씩 보고 싶어서다.

선생님 얼굴이라도 한 번 뵙고 싶어서다.

그리고 '이왕이면 간 김에' 아들에게 과자 꾸러미를 주었다는 그 여자 사람 친구도 한 번 보고 싶다.(는 게 내 진심이라는 것, 그것이 공개수업 참석 이유의 8할이라는 것을 남몰래 고백하는 바이다)

적어도 아이들이 어떤 친구들을 사귀고 있는지는 엄마 된 입장에서 알고는 있어야 하니까, 표면적인 이유는 단지 그뿐이다.

"엄마가 왜 학교에 오려고 그래? 오지 마!"

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갈 수 있을 때 실컷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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