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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Sep 25. 2024

엄마가 과장해서 다행이야

아들은 엄마 덕분에

2024. 9. 23.

< 사진 임자 = 글임자 >


"그래서 우리 아들이 뭘 느꼈지?"

"다음부터는 일찍 자겠습니다."

"그래. 늦게 자면 늦잠 자기 쉽지. 앞으론 더 일찍 자자."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나는 이미 계획했었다, 그런 깨달음을 얻으라고.


어린이들이 밤 9시가 넘도록 잘 생각을 하지 않아 여러 차례 경고를 했다.

"얘들아, 내일 학교 가려면 이제 잘 준비해야지."

소파에서 책을 보던 아이들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대답도 하지 않았다.

물론 처음에는 내 목소리도 크지 않았고 별 감정도 들어가지 않았었다, 늘 그렇듯이.

두 번, 세 번, 네 번, 그러다가 마침내 나는 결심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직접 당해 봐야(?) 정신 차릴 것 같아.

내가 아무리 입 아프게 일찍 자라고 노래 불러도 다음날 학교  갈 시간에 못 일어나고 있으면 어떻게든 깨워서 학교 보냈더니 이렇게 아이들이 안일해진 게 아닌가 싶었다.

지각만은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어떻게든 학교에 빨리 보내고 싶어서 나 혼자만 안달이 났었다.

알람 맞춰 놓고 일어나면 되는데 왜 그걸 못하는 거지?

아이들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도 해 봤다.

한 오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나의 과거는 어땠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지만 떠올려 봤다.

나는 그런 기억은 없었다.

맹세코 밤 12시가 다 되어 가도록 깨어있었던 적은 없었다. 물론 철없을 때 산타 할아버지가 정말 있는 줄 알고 최대한 안 자고 버티다가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기절해 버린 적은 종종 있었지만 말이다.

일요일 밤, 9시가 넘었는데도 남매는 책만 보고 있었다.

책을 보는 건 좋지만 이젠 잘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미루어 저러다가 또 무슨 사달(?) 이 날 것 같았다.

"얘들아, 엄마는 여러 번 말했어. 이제 잘 시간이야. 그러다가 내일 늦잠 자도 엄마는 안 깨워 줄 거야. 알람 맞춰 놓고 너희가 알아서 일어나."

나는 중대한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정말 안 깨워 줄 거야. 자라고 자라고 잔소리도 더 이상 하지 않을 테다.

늦잠 잔 인연의 과보는 너희가 각자 다 받으렴.

나름 독하게(이 정도면 독한 마음먹은 거 맞다) 마음먹었다.

그러다가 만약에 정말 아침 9시까지 못 일어나는 사태가 벌어지면 어쩐다지?

마음이 약해져서는 안 돼.

이번엔 정말 흔들리지 않겠어!

보자 보자 하니까 남매는 정말 밤 12시가 다 되어 가도 잘 생각을 하지 않았다.

둘이 여전히 소파에서 책을 정신없이 보고 있었다.

그 시간까지 깨어 있을 수 있다는 게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전에는 무조건 아이들이 먼저 잠자리에 들면 내가 나중에 자러 갔지만 점점 나이 먹고 체력도 떨어지니 그 일도 쉽지 않았다. 내가 왜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안 그래도 됐었는데. 언제까지 그렇게 애면글면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살벌한 분위기가 느껴졌는지 11시 반이 넘어가자 딸이 와서 물었다.

"엄마, 왜 안 자?"

"너희가 안 자니까 그렇지. 아무튼 너희 내일 안 깨워 줄 거야. 알아서 해."

쐐기를 박고 나는 불을 껐다.

그리고 아이들도 잠자리에 들었다.

요놈들, 내일 분명히 늦잠을 자겠지?

늦잠 잘 수밖에 없겠지?

그동안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잖아? 늦게 자면 꼭 늦게 일어나서 허겁지겁 준비해서 겨우 학교에 가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다를 거야. 절대 절대 깨우지 않겠어.


다음날 아침, 8시가 되었어도 나는 아이들을 깨우지 않았다.

(다만 모닝스페셜이 시작되자 볼륨을 한껏 높이기만 했다.)

그들은 일어날 기미조차 안보였다.

좋아, 계획대로 돌아가고 있어.

지각해서 선생님께 혼도 나 봐야 정신을 차리지.

(과연 혼이 날지 안 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지각하면 뭔가 벌칙이 있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그래야 다음부터는 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겠지.(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백날 천날 내가 아침마다 깨워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엄마, 몇 시야?"

갑자기 화들짝 놀라 깬 딸이 물었다.

"8시 20분."

"진짜? 큰일 났다."

큰일이겠지.

그래도 예상보다는 빨리 일어났는걸?

딸은 세수만 하고 머리를 산발한 채 등교했다.

물론 공복으로.

나도 할 일이 있어 거기 집중하느라 잠시 시간 가는 걸 잊고 있던 차에 시간을 보니 8시 36분이었다.

참, 아들이 아직 자고 있었지.

얘를 깨워 말아?

아들 앞에서는 그만 약해지고 말았다.

누구 보는 사람도 없는데 말이나 해봐?

"우리 아들, 지금 8시 40분이야."

"뭐?"

아들은 벌떡 일어났다.

내가 알기로 아들의 등교시간은 8시 45분이다.

그 바쁜 와중에도 밥은 굶어도 머리를 감고 등교하셨다.

둘 다 오늘은 지각을 면치 못하겠군.

그래도 뭔가 느끼는 게 있겠지.


"오늘 우리 아들 지각 했겠네?"

"아니야. 안 했어."

"어떻게?"

" 엄마가 8시 40분도 안 됐는데 40분이라고 과장해서 알려 줬잖아. 그래서 막 뛰어갔지. 다행히 딱 45분에 도착했어."

어라?

내 시나리오랑 좀 다르네?

"어머니, 소자 어머니의 말씀을 가벼이 흘려들은 과보로 오늘 지각을 면치 못하였나이다. 그리하여 소자, 선생님께도 혼나고 월요일 아침부터 기분이 몹시 상쾌하지 않았나이다. 과연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 지은 인연의 과보는 피하기 어렵더군요. '정업난면'을 오늘 비로소 몸소 체험하였으니 앞으로는 어머니의 말씀을 평생 금과옥조로 삼고 더욱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다짐하였나이다. 역시 어머니 말씀을 안 들은 게 가장 큰 실수였음을 뼈저리게 느꼈사옵니다."

라고, 눈물 뚝뚝 흘리며 참회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물론.

얼마나 전력을 다해 질주했으면 딱 그 시간에 학교에 도착한 거람?

그 와중에 장하다, 내 아들!

이어 아들은 상상하지도 못했던 말을 들려줬다.

"엄마, 엄마가 평소에 우리한테 시간을 과장해서 말하잖아. 다른 때는 그게 싫었는데 오늘 같은 날은 그게 더 좋았어. 8시 36분밖에 안 됐는데 엄마가 4분을 과장해서 40분이라고 과장해서 말했잖아.오늘같은 날은 오히려 엄마 과장법이 더 도움이 됐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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