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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Sep 27. 2024

지각한 김에 천천히 걸었어

미련 없이 포기하기

2024.  9. 26.


<사진 임자 = 글임자>


"우리 아들은 지각할 까 봐 뛰어가서 간신히 지각 안 했다던데 합격이 넌 안 뛰었어?"

"어차피 지각인데 뭐 하러 뛰어가? 그냥 천천히 걸어갔어."


어라?

이런 반응을 기대했던 게 아니었는데,

딸한테는 작전 실패다.


아침에 늦잠을 자는 아이들을 깨우지 않겠다고 (나 혼자만, 마음속으로만) 단단히 선언을 하고 남매가 하교한 날이었다.

아들의 반성 내지는 각오를 듣고 있던 차에 딸이 뒤늦게 집에 돌아왔다.

"우리 합격이도 오늘 지각했겠네?"

"응."

"그래서 어떻게 됐어?"

"청소했지."

"할 만했어?"

"그럼."

"좀 더 서둘렀으면 지각 안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미 지각인데 뛸 필요 있어?"

"그래도 이왕이면 지각을 안 하려는 모습이라도 보이면 좀 낫지 않을까?"

"힘들게 뭐 하러 그래?"

"선생님한테 혼은 안 났어?"

"왜 혼 나?"

"지각했다고 혼 나는 줄 알았지."

"요즘 누가 지각했다고 혼을 내?"

"지각하면 안 되잖아. 선생님이 등교시간 지키라고 했잖아."

"청소하면 돼."

"그래도 청소하는 것보다는 지각 안 하는 게 더 낫지 않아?"

"청소 하나도 안 힘들어."

"그래도 다음부터는 좀 더 일찍 가서 지각을 안 하는 게 어때?"

"알았어."

선생님이 정한 규칙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건 아닌가? 차라리, 혼이라도 났으면 저렇게 나오지 않았으련만...


딸은 그런 어린이다.

포기할 건(?) 과감히 포기해 버리는 어린이다.

미련이 없는 어린이다.

어차피 지각이 기정사실화 되어버린 상황에서는 이를 받아들이고 그에 따르는 응당한 대가를 치러 버리는 어린이.

하긴, 딸 말도 일리는 있다.

그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차라리 일찌감치 현실을 순응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다만 너무 대놓고 지각을 했으면서도 반성의 기미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아 저러다가 괘씸죄가 더 가중되는 건 아닌가도 싶었다.

약했다.

벌칙이 약소했다.(고 나만 이제 와서 아쉬워하고 있는 중이다)

"지각하면 다른 친구들한테 방해가 될 수 있잖아. 그래서 지각하지 말고 선생님이 말씀하신 시간까지는 가도록 하라는 거야. 특히 수업이 이미 시작하고 난 후에 가면 정말 반에 피해를 줄 수도 있잖아."

평소에 나는 이렇게 말해왔다.

아이들 말을 들어 보면 수업이 시작한 지 한참이 지난 후에도 등교하는 아이들이 더러 있더라는 거다.

물론 병원을 다녀온다거나 급한 사정이 있어서 피치 못할 경우를 제외한, 순수하게 '단지 늦잠을 자서'라는 이유로 말이다. 물론 각자 나름의 '늦잠을 잔 사정'은 있겠지만.

게다가 가끔 학교 갈 일이 있어서 가 보면 가는 길에 놀이터에서 벗젓이 가방을 두고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는 경우도 있어서 놀랍기까지 했다..


그래도 전에는 지각할 까 봐 조마조마해하는 표정으로 집을 나서면서부터 전력질주하는 시늉이라도 보이더니, 딸이 요즘 달라졌다.

매사에 시큰둥해졌다.

지각, 그까짓 거,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물론 혼자만의 오해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반에서 정한 규칙이 있으니, 선생님이 정해준 시간이 있으니 이왕이면 그에 잘 따라 줬으면 좋겠는데 내 마음 같지 않다.


자식은 절대 부모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더니, 공부하는 건 절대 부모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더니, 그에 못지않게 지각만은 면하게 하고 싶은 내 마음은, 내 마음 같은 건 딸은 전혀 상관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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