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쓰기 싫어서라도 지각만은 면해야겠다고 매일 아침 부리나케 학교로 달려가던 때가 있었다, 딸에게도.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10분 내외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그래도 일찍 일어나는 것 같더니 정작 입학을 하고 나자 딸은 전보다는 더 늦잠을 자는 것 같았다.
그래도 고학년이 된 후로는 매년 선생님이 등교 시간을 정해줘서 최소한 그 시간까지는 등교하라고 매일 아침 등 떠미는데도 여유 부리기 일쑤였다.
저학년 때는 담임 선생님들이 저학년이라 너그럽게 봐주신 것 같고 4학년부터는 최소한 언제까지는 학교에 오라고 못 박아 두셨다. 차라리 그렇게 특정 등교 시간을 정해 주는 게 내 입장에서는 더 반가웠다.
하지만 4학년이던 딸은 갑자기 생긴 등교 마감(?) 시간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했다.
거의 매일을 겨우 그 시간에 등교하곤 했었다.
물론 해가 서쪽에도 뜨지도 않았는데 아침 일찍 일어나서 가장 먼저 반에 등교한 날도 아주 간혹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나는 학생으로서 최소한 등교 시간을 잘 지키는 것부터가 단체생활의 기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반에서 정한 규칙 같은 건 가급적 잘 지키라고, 특히 선생님이 당부하신 내용은 특별히 더 신경 쓰라고 늘 말해왔다. 선생님이 그냥 하시는 말씀이 아니다,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정도는 아주 기본적인 것일 뿐이다. 그렇게 학교에서 배우고 익히고 점점 자라서 사회생활도 해 나가는 거다, 이런 말도 항상 덧붙이면서 말이다.
집에서 부모 말도 제대로 안 듣고 버릇없이 행동하는 것도 용납하기 힘들지만 함께 정한 규칙을 건성으로 듣는 것도 나는 못 봐줬다. 그리 힘든 일도 아니고 조금 더 신경 쓰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어겨도 괜찮은 것, 그리 별 일 아닌 것쯤으로 여기는 것도 자꾸 버릇이 되면 나중에 커서도 문제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세 살 버릇이, 특히 좋지 않은 버릇이나 남에게 피해가 가는 그런 버릇은 절대 여든까지 가지 못하도록 가정에서 잘 가르치고 잡아줘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결국엔 어느 면에서는 부모의 책임이 크니까, 그래도 우린 사람이니까 사람으로 길러내야 하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다. 초등학생이면 최소한 공식적인 약속을 지키는 일, 과제를 해 가는 일, 준비물을 챙기는 일, 이런 것들만 잘해도 무난하다고 믿는다. 어려서부터 그런 일들도 제대로 안 하면 나중엔 결과가 어떨지 빤히 보였다. 공부는 그 나중이다. 사람이 먼저 되고 공부도 하는 거지 '공부만 하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지 않는다.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별의별 일, 별의별 사람들을 다 겪으면서 늘 결론은 그 하나였다.
특히 초등학교 입학 후 내가 아이들에게 가장 신경 썼던 건 최소한 지각은 안 하도록 노력하라는 것이다.
"우리 선생님은 지각하면 시를 쓰라고 할 거래. "
4학년 때 어느 날 딸이 내게 말했다.
지각 벌칙으로 시를 쓰라니,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이렇게 낭만적인 벌칙이 다 있다니!
(물론 내 생각에서만이다.)
그런데 딸은 그 시를 쓰는 게 너무 싫다는 거다.
'서시'였던가, '자화상'이었던가?
"와, 어쩜 선생님은 그런 생각을 하셨을까? 좋겠다. 덕분에 시도 다 써 보겠네?"
"그게 뭐가 좋아? 난 시 쓰기 싫다고."
"왜?"
"너무 길어."
"그게 뭐가 길어? 아마 선생님이 윤동주 시인 팬이신가 보다."
"나도 몰라. 아무튼 시 쓰기 싫어."
"쓰기 싫으면 지각 안 하면 되지."
"앞으로 지각하면 안 되겠어."
시 쓰기의 결과는 아주 놀라웠다.
하루는 딸이 지각을 하고 시 한 편을 쓰고 집에 와서 하소연을 했다.
"엄마. 오늘 나 지각해서 시 썼어. 너무 팔 아팠어."
시라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 건데 아무 감정 없이 단지 지각한 대가로 시를 썼다는 사실이 (물론 내게만) 살짝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시를 다 써봤으니 좋은 경험한 거 아니냐고 묻는 내게 딸은 정색했다.
"시 쓰는 게 뭐가 좋아? 재미도 없고. 팔만 아프고."
그러니까, 그게 싫으면 지각을 안 했어야지.
원인 없는 결과는 없는 거라니까 그러네.
실로 선생님의 처방은 아주 놀라웠다.
한 번 지각하고 시를 쓴 다음부터 딸은 어떻게든지 지각을 하지 않으려고 아침마다 벌떡벌떡 일어났다.
이런 게 일종의 햇볕정책인 건가?
나그네의 코트를 벗게 하는 건 쌩쌩 부는 찬바람이 아니라 온화하고 부드러운 햇볕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