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하소연
"하여튼, 너희 엄마는 맨날 엉뚱한 일만 저지른다."
이번엔 아빠가 하소연하셨다.
음, 또 두 분 사이에 뭔가가 있었군, 있었어.
분위기를 보아하니 이번엔 엄마가 반격할 여지 같은 건 없어 보였다.
아빠는 시시콜콜 엄마가 얼마나 아빠 말만 안 듣는지(?)에 대하여 세세한 사연을 늘어놓기 시작하셨다.
"아빠, 병아리 부화시키게?"
친정에 갔더니 거실에 병아리 부화기가 작동하고 있었다.
올봄에 한 번 부화에 성공하고 가을을 맞이하여 아빠는 다시 도전하셨다.
"저것이 잘 부화될지 어쩔지 모르겄다. 시원찮다."
아빠는 버젓이 잘 작동하고 있는 부화기 앞에서 한숨을 다 쉬셨다.
"왜? 잘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오래된 달걀 넣었수?"
"아니. 낳은 지 며칠 안된 거 다 모았다."
"근데 왜 부화가 안돼? 되겠지."
"너희 엄마가 어쩐 줄 아냐?"
"엄마가 왜?"
"어째 그렇게 내 말만 안 듣는가 모르겄다."
"또 어쨌길래?"
"내가 달걀 부화하려고 달걀 꺼내 와서 한쪽에다 놔뒀는디 아무리 찾아도 없더라. 너희 엄마가 그새 냉장고에 넣었더라. 다른 것은 냉장고에 넣으라고 해도 안넣음서 왜 하필이면 그런 것은 착실히 넣어 두는가 모르겄다. 알이 차가워서 저것이 부화가 될꺼나?"
"엄마한테 부화시킬 거라고 그냥 밖에 두라고 확실히 말씀을 하셨어야지."
"내가 다 생각이 있어서 냉장고에 안 넣었는디 보믄 모를까?"
"말을 해야 알지 말 안하면 어떻게 알겠수?"
"하여튼 너희 엄마랑은 안 맞다 안 맞아."
"냉장고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데?"
"한 시간이나 있었을까."
"그 정도면 괜찮겠지."
"만져보니까 차갑더라. 너희 엄마는 왜 하라는 건 안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그렇게 착실히 하는가 모르겄다. 집에서 사고만 통통 치고."
그나마 냉장고에 달걀이 들어가 있던 시간이 얼마 안 돼서 조용히 넘어간 것 같았다.
행여 반나절이라도 있었더라면 아마 아빠는 엄마에게 또 네버엔딩 잔소리와 함께 저 부화기의 달걀이 부화되지 않은 개수에 비례하여 두고두고 말씀하실 것이다.
"그러니까 앞으론 엄마한테 확실히 말을 하셔. 그러면 엄마도 안 하시겠지."
"언제는 엄마가 내 말 듣던?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해도 그런 것만 꼭 한단 말이다. 이렇게 안 맞아, 너희 엄마랑은."
"그런 줄 이제 아셨수? 어쩌겠어, 이제 와서."
엄마는 아빠랑 안 맞다고 하시고, 아빠는 또 엄마랑 안 맞다고 하시고, 누가 누구랑 도대체 안 맞는 거람?
가만,
서로 안 맞다고 하시는 걸 보니 천생연분은 천생연분이다.
안 맞기로는 세상 제일가는 천생연분.
이런 것도 천생연분이라면 말이다.
물론 두 분이 들으시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펄쩍 뛰시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50년 가까이 함께 살아오신 분들이 아닌가.
나는 소망한다.
다만 한 마리라도 더 병아리가 부화에 성공해서 엄마의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주어지기를.
나는 확신한다.
부부가 서로 안 맞다고 안 맞다고 저렇게 의견일치 보기도 힘든데, 우리 부모님은 아주 안 맞기로는 참 잘 맞는 부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