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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Sep 14. 2024

콩밭에는 그게 아주  많거든

콩으로 일심동체

2024. 9. 12.


< 사진 임자 = 글임자 >


"아빠, 캄캄한데 거기서 뭐 해요?"

"뭐 하기는, 벌레 잡는다."

"무슨 벌레?"

"벌레가 콩 다 먹는다."

"그것들이 콩을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밤중에 그러셔?"

"너는 알지도 못하면서 그러냐. 이것들이 우리 콩 다 먹는단 말이다. 요놈들 내가 다 잡을란다."


그 넓디넓은 콩밭에서 아닌 밤중에 벌레 잡기라니!

어두컴컴한 콩밭에 손전등은 비춰주지 못할 망정 딸이라고 하나 있는 것이 잘 알지도 못하고 또 참견만 하고 왔다.


"아빠 못 봤냐? 고추밭에 안 계시던?"

"고추밭은 무슨. 콩밭에 계시던데?"

"콩밭에서 지금까지 뭐 한다고? 캄캄해서 보이지도 않을 것인디?"

"내 말이 그 말 아니오. 벌레 잡고 있습디다."

"아이고, 하여튼 아빠는 일이 그렇게 하고 싶은갑다."

"그러게 말이네."

"뭣이 보이긴 할꺼나?"

"불 켜고 잡고 있던데?"

"낮에는 날마다 풀 뽑으러 다니고 인자는 밤에 벌레 잡으러 다니구만."


아빠는 맨날, 정말 맨날 밭에 풀을 뽑으러 다니신다.

"그라고 일이 하고 싶소? 나는 옛날에 하도 많이 해서 징글징글하구만."

엄마는 정말 진저리를 치며 말씀하신다.

나도 옆에서 다 봤기 때문에, 종종 나도 동원되었기 때문에 얼마나 그 시절이 고단했는지 잘 안다.

이젠 좀 편히 사셔도 될 텐데 아무리 땡볕 내리쬐는 한여름이라도 아빠는 밭으로 출근하신다.

풀을 뽑고 또 뽑기 위해서.

아무리 뉴스에서 한여름 햇볕은 위험하니 절대 들에 나가지 마시고 물을 챙겨서 수시로 수분보충을 해야 한다고, 특히 노약자(아빠 연세도 여든을 향해 가니 이 정도면 노약자에 해당될 텐데)는 더욱더 조심하셔야 한다고 해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신다.

덕분에 엄마만 일이 늘어났다.

"물이라도 갖고 다니든가. 그렇게 물 가지고 다니라고 해도 안 갖고 다니고 핸드폰도 집에 놔두고 다닌단 말이다. 핸드폰 있어도 전화하믄 받도 않고. 내가 성가셔서 못살겄다. 아빠는 맨날 내 일만 만들고.이라고 나랑은 안 맞다."

또 그 예의 '안 맞다'는 하소연이 재생됐다.

"아빠, 아직도 한낮에는 더우니까 조심해야 돼. 핸드폰이랑 물은 꼭 갖고 다니셔야지."

내가 친정에 갈 때마다 잔소리를 해도 소용이 없다.

"내가 한두 번 말한 줄 아냐. 내 말은 안 듣는단 말이다. 그러다가 쓰러지기라도 하믄 누구를 성가시게 할라고 저런가 모르겄다. 어째 저렇게 내 말만 안 들을 나."

엄마도 다 걱정이 돼서 하시는 말씀이다.

"그 뉴스 너도 봤냐? 어디서 할매가 깨밭에서 쓰러졌다고 안 하던? 느이 시어머니, 시아버지도 조심하시라고 해라."

갑자기 사돈들의 안부까지 챙기셨다.

시골 어른들에게 경각심을 주기에 충분함을 넘어 겁을 먹게 하는 그런 안타까운 소식에도 아빠는 끄떡도 안 하신다.

나도 그 부분이 가장 걱정이다.

그나마 젊은 나도 무더위에 취약한데 어른들은 오죽할까.

가끔 일하고 들어오시면서 기진맥진한 아빠를 보면 저러다 쓰러지지 싶었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될 텐데 왜 그렇게 고집이실까?

일을 하시는 건 좋다.

하지만 정도가 있어야 한다.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치면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을 텐데.

한 번씩 아빠가 점심때가 되어도 집에 안 오시고 핸드폰도 안 가지고 가셔서 연락이 안 되면 엄마는 가슴이 철렁한다고 하신다.

그런 날은 여지없이 내게 전화를 걸어 아빠가 얼마나 엄마 말을 안 들으시는지, 결론은 엄마랑 아빠가 얼마나 안 맞는지에 대해 구구절절 하소연을 늘어놓으신다.

"핸드폰이 있으믄 뭣한다냐. 밭에 갖고 다니지도 않는 거 그거 내가 어디 갖다 버려야쓰겄다."

다소 과격한 발언도 서슴지 않으신다.

그렇다고 그걸 버릴 필요까지야...


낮에는 풀 뽑는 것도 모자라 밤엔 불을 켜고 콩 잎에 붙은 벌레를 잡는다고 요즘 아빠는 무척이나 바쁘시다.

올해 유난히 콩밭에 애정이 많으신 것 같다.

"콩이 지금 얼마나 잘 열렸는지 아냐? 나중에 봐봐라. 콩 많이 수확할 것이다."

벌써 아빠는 주렁주렁 열린 콩이 대견해서 함박웃음이셨다.

생각만 해도 좋으신가 보다.

나중에 확인차 콩밭에 한번 들러봐야겠다.

"올해 콩이 많이 열리긴 했더라. 병만 안오믄 많이 따겄더라."

엄마도 옆에서 거드셨다.

오래간만에 두 분이 의견 일치를 보았다.

그런데 거기에 불청객이 찾아왔으니 이제 그 몹쓸 것들을 소탕하기 위한 일에 아빠는 지극정성이시다.

그런데 그 많은 벌레를 어떻게 사람 손으로 잡아낸단 말인가.

그 일이 가능하기나 할까?

농사를 잘 모르는 나는 그게 무모하게만 보였다.

최대한 약을 안 쓰려다 보니까 그런 무모한 일도 할 수밖에.


친정 집을 나서며 다시 한번 나는 엄마에게 신신당부를 한다.

"엄마, 아빠한테 밤에 콩밭에서 벌레 잡지 마시라고 해. 캄캄해서 위험해. "

"콩밭에 벌레가 많긴 많더라. 그놈들은 잡아야제. 안그러믄 올해 콩 구경도 못한다."

뭐야,

엄마는 아빠 편이네?

안 맞다 안 맞다 하면서도 결국에 일심동체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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