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노란 단호박이 초록색은 온데간데없고 온통 샛노랗기만 해서 아빠는 그 점에 대해 분명히 짚고 넘어가고자 하셨다.
"껍질 그런 건 뭐 하러 먹는다고 그러요? 그런 건 다 버려야제."
자고로 늙은 호박이든 단호박이든 호박의 껍질이란 다 깎아서 버려줘야 마땅하다고 70 평생을 살아오신 엄마다.
그러나, 최근에 '그런 껍질도' 다 쓸데가 있다며, 오히려 거기에 좋은 영양분이 많다고 철석같이 믿고 계신 아빠다. 이것도 다 그 '너튜브'의 그 사람들 때문이다. 아빠가 너튜브에 빠지신 지는 꽤 됐다. 거기 나오는 이들의 오만가지 말들을 믿어 의심치 않고 계신다는 점이 두 분 사이의 불화의 시작인 거다.
"껍질에 영양소가 더 많이 있다고 하는 소리 못 들어 봤어? 그것까지 다 먹어야 제대로 먹는 거라니까. 자, 여기 봐 봐."
"그렇게 좋으믄 혼자 많이 잡수쇼."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된다니까."
"하여튼 너희 아빠는 어디서 또 뭘 보고 저럴까나?"
"진짜 좋은 것은 그것인디 그것을 다 버려버렸구만."
"해 주는 대로 잡수기나 하슈. 잔소리 좀 그만하고."
"왜 멀쩡한 껍질을 버리냐고?"
"그러믄 직접 해서 잡솨! 하지도 않음서 잔소리만 많네."
엄마와 아빠 사이에 껍데기 보다 더 단단한 앙금이 가라앉는 느낌이다.
도대체 또, 어디서 그 껍질 영상을 보신 거람?
나도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은 있다.
어떤 과일은 껍질째 먹으면 더 좋다고, 어떤 곡식은 최대한 껍질까지 다 먹어주면 더 좋다고.
그래, 좋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내가 좋다고 무조건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렇게 좋으믄 혼자 다 먹으믄 되제 왜 남한테도 강요하냐고?"
엄마의 불만은 바로 이것이다.
좋은 사람은 취하고 내키지 않는 사람은 사양하더라도 그런가 보다 해야 하는데 아빠는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으신다.
"다 생각해서 그러는 줄 모르고 너희 엄마는 내 말만 안 듣는다."
급기야 아빠는 내게 하소연을 하셨다.
"엄마, 아빠가 그렇게 엄마를 생각해 준다니까. 역시 아빠 밖에 없네. 좀 잡솨 봐~"
나까지 나서서 아빠를 지원했지만 엄마는 단호하셨다.
"나는 안 먹을란다. 먹고 싶은 사람만 먹으믄 되제 먹기 싫다는 사람한테 어째 그럴꺼나?"
그렇다면 작전 변경이 필요하다.
"아빠, 엄마는 안 드시고 싶다고 하잖수. 그냥 아빠만 잡솨~"
그래도 아빠는 쉽사리 포기하지 않으신다.
"너도 한 번 먹어 봐라. 얼마나 맛이 좋은지 아냐. 한번 먹어 보고나 말해."
나를 포섭하려 드신다.
그러나, 역시나, 예상한 대로 가끔은 모든 껍질이 다 맛있지는 않았다.
그나마 단호박 껍질은 먹을만했지만 엄마는 웬일인지 그마저도 거부하셨다.
사람 입맛이라는 게 다 다르기 마련이니까.
아빠도 엄마의 취향을 좀 존중해 줄 필요가 있었는데.
"엄마, 단호박은 나도 한번 껍질까지 쪄서 먹어 봤는데 맛있습디다. 먹을 만 해. 아빠 소원이라는데(물론 아빠는 소원의 '소'자도 말씀하신 적은 없다) 한 번 들어 줍시다. 다음엔 껍질 깎아서 버리지 말고 같이 쪄 보셔."
나는 힘닿는 데까지 아빠를 지원했다.(고 믿었다)
"그러던? 껍질을 같이 먹어도 괜찮할랑가 모르겄다."
엄마 마음이 살짝 동한 것 같았다.
"찌면 괜찮다니까. 그리고 진짜 껍질도 달고 맛있습디다."
"그래?"
"그래. 아빠가 껍질도 다 잡수고 싶다고 하잖수. 버리지 말고 같이 쪄 줘."
"하여튼 너희 아빠는 나만 귀찮게 한다. 나랑은 이라고 안 맞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는 그 시는 아빠 앞에서는 절대 읊어서는 안 되겠지?
알맹이도 남고 껍데기도 껍질도 모두 모두 다 남아야 마땅하겠지?
단호박 껍질 사건이 있은 후 다시 친정을 갔던 날, 나는 엄마에게서 뜻밖의 말을 들었다.
"단호박 껍질도 같이 먹으니까 그라고 맛있더라. 껍질이 속보다 더 달더라. 너도 인자 껍질 버리지 말고 다 쪄서 먹어라잉. 버릴 거 하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