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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Sep 28. 2024

그러지 마요, 세 며느리들한테는

죽염에 비타민 D 더하기

2024. 9. 26.

< 사진 임자 = 글임자 >


"아빠, 그런 말은 며느리들한테 하지 마요."

"내가 며느리들한테 뭐 하러 그런 말을 하냐."

"아무튼 아들 며느리 알아서 하라고 하셔."

"그럼 놔두제, 내가 뭐라고 한다냐?"


아들, 며느리한테는 절대 안 하시고 엄마와 딸에게만 자꾸 말씀하신다.

한 얘기를 하고 또 하시고 그리고 다시 시작하시고...

언제나 아빠의 주요 단골 고객은 엄마와 나 딱 둘뿐이다.


"죽염을 물에 타서 자주 마시믄 좋다고 하더라. 염증도 사라지고. 내가 다 봤다."

그날도 아빠는 어떤 정보를 내게 주셨다.

또,

필시,

뭔가를 보신 게 틀림없다.

"느이 아빠 또 시작한다."

옆에서 엄마가 내 대신 답하셨다.

"다 좋으라고 하는 말이제."

아빠는 엄마의 반응 같은 건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꿋꿋하게 이어 나가셨다.

"사람이 염분이 좀 있어야 된다니까. 옛날 어른들이 그러셨다. 짜게 먹고 물을 많이 마시고 일하라고 하신 게 다 일리가 있다니까 그러네. 너도 날마다 싱겁게 먹으니까 그렇게 비실비실 해갖고 기운이 없제. 너무 소금을 섭취 안 해도 못써. 애들도 소금 좀 먹이고 그래야 건강하제."

아빠는 '소금 전도사'가 되셨다.

(평소 아빠는 내가 조금씩 먹는 것과 싱겁게 먹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셨다. 하지만 요즘은 예전과 다르게 어느 정도 간을 해서 먹는 중이다.)

언젠가 어디선가 어떤 영상을 보시고는 거기에 푹 빠지셨다.

"요새 잇몸이 아프고 부어서 소금물로 계속 헹구니까 가라앉더라."

아빠는 체험으로 입증하려고 하셨다.

"아빠. 그게 잠깐만 가라앉은 것처럼 느낀 것뿐이지 진짜로 염증이 다 없어진 건 아니잖수? 소금물로 어떻게 염증을 없애? 그냥 잠깐이라니까."

내가 의학적인 상식은 없지만 그냥 그럴 것 같았다.

임시처방은 될 수 있을지언정 근본적인 해결은 안 될 것 같았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아빠는 치과에 가셔서 잇몸 염증을 진단받고 약 처방전까지 살뜰히 챙겨 오셨다.

"느이 아빠가 나를 얼마나 성가시게 하는지 아냐? 소금이 그라고 좋으믄 혼자만 많이 쓸 것이지 나보고 안 한다고 맨날 잔소리만 한다. 하기 싫은 사람한테 억지로 하라고 하고. 안 한다고 뭐라고 하고."

"엄마, 아빠가 다 엄마 생각해서 그러잖수. 아빠나 되니까 엄마 그렇게 생각해 주지. 역시 아빠밖에 없구만."

엄마 앞에서 나는 또 실없는 소리만 했다.

"나 진짜 성가셔서 못 살겄다."

엄마는 한숨이 끊이질 않으셨다.

다 좋다.

아빠가 엄마 생각하셔서(정말 생각해서 그러시는 거겠지? 그렇게 믿기로 했다. 그래야 그나마 마음이 편하다) 그러시는 건 잘 알겠는데 왜 자꾸 싫다는 사람한테 강요하다시피 하시는지.

"엄마 그 약 안 먹어도 되는 거 아니냐?"

갑자기 이제는 엄마가 복용 중인 약을 걸고넘어지셨다.

"그 약을 안 먹으믄 어쩌라고 먹지 말라고 그러요?"

엄마도 발끈하셨다.

"아빠, 다 필요하니까 병원에서 먹으라고 하는 건데 안 먹어도 되면 왜 처방해 주겠수?"

내가 엄마 지원 사격에 나섰지만 이번엔 느닷없는 '비타민 D'로 불통이 튀었다.

"비타민 D도 먹을 필요가 없어. 햇빛을 충분히 쬐믄 되는 것이제, 뭔 비타민 D를 먹는다고. 비타민 C야 음식으로 잘 섭취를 못하면 먹을 수도 있지만 햇빛만 잘 쬐도 아무 문제없다니까."

또 이번엔 도대체 어떤 영상을 보신 걸까?

"온몸을 다 가리고 눈만 쬐끔 내놓고 그라고 다님서 비타민 D는 뭐 하러 먹어? 사람이 햇빛을 쬐야제."

아니, 이건 나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인가?

갑자기 제 발이 저린 도둑은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햇빛에 취약해 금방 몸이 아파버리니 어쩔 수 없다.

"느이 아빠랑은 말이 안 통한다. 나보고 맨날 잔소리만 한다."

아무렴요, 그러시겠죠.

제가 엄마 마음 다 알죠.

안 봐도 눈에 선~합니다.

아빠 말씀은 이론상은 어느 정도 맞을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힘들 수가 있으니까, 게다가 엄마는 자식을 넷이나 낳으셨고 골다공증도 있으시고 젊어서 하도 고생을 많이 하시고(이건 엄마 단골 레퍼토리다, 아빠랑 결혼 후 고생만 하고 일만 하고 사셨다는)... 아무튼 아빠랑 엄마는 각자 처한 환경이 다르다고 똑같이 생각하시면 안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으나 섣불리 시작해서는 아니 된다.

그냥, 아빠는 아빠 원하시는 대로, 엄마는 엄마 원하시는 대로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걸까?

그냥 아빠 마음만 받고 싶다.

엄마나 나를 생각하는 그 마음, 딱 거기까지만 말이다.


"아빠, 나한테는 죽염 물 먹어라, 햇빛 쬐라 이런 말 해도 절대 며느리들한테는 말하면 안 돼요. 그냥 아빠 혼자만 죽염 물 드시고 햇빛 많이 쬐시라고. 알았지? 며느리들 알아서 잘 사니까 절대 말하지 마시라고요."

"안 되제. 그런 소리 하믄 못 쓰제! 며느리들한테 그런 소리 하믄 안되제. 날마다 내가 듣는 것도 징한디 며느리들 앞에서는 그런 소리 하지도 마슈!!!"

엄마가 더 정색하셨다.

"안 해. 내가 뭐하러 해?"

아빠는 자신 있게 말씀하셨다.

친딸인 나도 자꾸 잔소리라고 느껴지는 말을 시도 때도 없이 들을 때면 감당하기 힘든데 남의 딸인 며느리들은 오죽하랴.

며느리는 며느리 인생을 살도록, 며느리 하고 싶은 대로 그냥 두면 큰 탈은 없을 것 같다.


적어도 엄마나 아빠는 며느리들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고 계신 것 같았다.

다행이다.

(설마 오빠들이나 동생이 벌써 하고 있는 건 아, 니, 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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