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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Sep 12. 2024

흐린 초점 속의 그대

스마트폰이 갖고 싶은 이유 하나

2024. 9. 10.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랑 아빠는 좋겠다."

"뭐가?"

"스마트폰이라 사진이 진짜 잘 나오잖아. 내 핸드폰은 뿌옇게 보여서 선명하지가 않아. 나도 스마트폰이 있다면 사진 잘 찍을 수 있을 텐데."

"사진 때문에 스마트폰이 갖고 싶어?"

"응. 스마트폰은 사진이 잘 나오잖아."

"그럼 사진이 목적이라면 집에 있는 디카를 쓰는 건 어때?"


백만 년 전에 신혼여행 간다고 급히 산 디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었는지도 모르는 마당에 나는 딸에게 디카로 어떻게든 무마시켜 보려고 했다.


"합격아, 너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고 싶어?"

"응. 완전 잘 나오잖아."

"그렇게 '사진 찍는 게 목적'이라면 굳이 스마트폰까지 살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렇긴 하지. 사진 잘 찍을 수 있는 거면 뭐..."

"일단 집에 있는 디카를 써 보자."

그리하여 나는 집 어딘가에 매몰되어 있는 그것을 발굴해 내기에 이르렀다.

"엄마 이거 작동 안 하는데?"

그러면 안 되는데, 작동 안 했어도 작동해야 하는데.

하긴 거의 구입한 지 15년이 되어가니 아무 반응이 없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일단 어떻게든 딸로 하여금 그것에 집중하게 해야만 했다.

"엄마 사진은 이렇게 화질도 좋게 잘 나오는데 내 핸드폰은 너무 안 좋아."

언제부터인가 딸은 사진 찍는 재미가 들려서 우주 만물의 많은 것을, 찍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 무엇이든 다 찍기 시작했다.

"엄마, 봐봐. 내가 찍은 거야. 어때?"

"우와, 진짜 잘 찍었다. 어쩜 이렇게 멋지게 찍었을까? 우리 딸 사진 찍는 솜씨가 남다른데?"

남달랐다, 사진이.

못 봐주겠다, 사진이.

흐리멍덩했다, 사진이.

분명히 딸은 심혈을 기울여 찍는다고 찍었겠지만 핸드폰 기계의 특성상(인지 어쩐 지는 나도 확실히 모르겠지만) 뭔가 선명하지 않았다.

소위, 효도폰이라 불리는 그런 종류의 것이 딸이 쓰던 핸드폰이었다.

폴더폰이라 펼치면 화면이 너무 겸손해서 딸의 작은 손바닥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줌이 된다거나 보정을 한다거나 하는 그런 위화감을 조성하는 기능 따위도 전혀 없었다, 물론.

그래서 딸은 항상 엄마 아빠의 스마트폰을 동경해 마지않아 왔던 거다.

매번 딸은 최대한의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 사진을 찍고 우리에게 보여주지만(보여 주기만 한다, 엄마 아빠에게 한꺼번에 공유할 수가 없다.) 그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흐린 화면 속의 인물과 사물들이 그렇게 안타깝게 보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은 '단지 사진을 찍는 용도'로 스마트폰을 장만해 줄 마음 같은 것도 전혀 없었다.

자고로 스마트폰이라 함은 정말 스마트하게 갖가지 방법으로 다방면에 최대한 알뜰살뜰 이용해 줘야 마땅하지 않은가.

스마트폰이 열일하게 만들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말이다.


아직은 약하다.

사진 찍기, 그 하나뿐인 목적을 위해서는 말이다.

시기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좀 더 그럴듯한 것, '그렇다면 이젠 사 줄 때도 됐다'라고 우리가 수긍할 만한 어떤 것, 그 요망한 것을 구입하지 않고는 배길만한 그런 납득 타당한 이유가 필요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목적을 생각해 봐. 단순히 사진을 찍기 위한 거라면 아직은 스마트폰이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정말 사진만 찍기 위해서라면 이참에 차라리 카메라를 한 번 알아보자. 그건 어때?"

"음, 그럴까?"


어쩌면 그 '사용 목적의 빈약함' 내지는 '근거 불충분'으로 딸은 스마트폰에서 또 살짝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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