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건 많지. 일단 친구들이랑 점심 같이 먹고 노래방도 가고 놀이터에서 놀고 다있소도 가고."
"하루에 그걸 다 해?"
"그럼!"
"피곤하겠다. 적당히 놀아."
"에이, 괜찮아. 엄마는 나이 들어서 힘들겠지만 우린 하나도 안 힘들어."
가만, 갑자기 거기서 엄마 나이는 왜 나오는 거라니?
하긴 정말 나도 왕년에는 잘 놀긴 했었지.
물론 여기에서 '잘 놀았다'는 말의 의미는 정말 완전히 먹고 마시고 밤을 새우고 쓰러지기 직전까지 놀았다는 말은 아니다. 내 기준에서 잘 놀았다는 건 그냥 딱히 하는 거 없이도 친구들과 하루종일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먹다가 놀다가 물건을 사다가 해가 질 때까지 원 없이 바깥 활동을 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도 이제는 먼 옛날 옛적 이야기다.
배추도사 무도사를 소환해야 할 만큼 까마득한 오래전의 일이다.
나이가, 이제 나이가, 노화(라고까지 말하기는 좀 씁쓸하지만)된 신체가, 나를 자연스레 집에 조신하게 머물게 한다.
"저번 주에도 놀고 이번주에도 놀고 혹시 다음 주에도 놀 거야?"
"음, 별일 없으면."
"인간적으로 한 주 정도는 쉬어줘야 하는 거 아니야?"
"괜찮아. 주말은 원래 노는 거야."
"근데 갑자기 여행 일정이 잡힐 수도 있어. 아빠한테 혹시 주말에 일정 있는지 물어보고 약속해. 친구들하고 노는 것도 좋지만 가족이랑 같이 시간 보내는 것도 좋잖아."
요즘 들어 아이들은 가족과 다 함께 하는 시간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어쩌다가 여행이라도 가자고 하거나 가까운데 산책이라도 나가자고 하면 여지없이 듣는 말이 있다.
"또?"
내지는
"꼭 가야 돼?"
이렇게 말이다.
물론 '또'라고 반응을 보이기엔 그렇게 자주 가족 나들이를 하는 편도 아닌 것 같고 '꼭 가야 하는 것'은 아니긴 하다. 하지만 나도 다 들은 소문이 있다. 아이들이 고학년으로 갈수록 점점 부모를 안 따라나설 거라는 흉흉한 소문 말이다.
그리고그 소문은 점점 현실로 다가왔다.
"고학년 되면 친구들이 더 좋지. 엄마 아빠 안 따라다녀. 그러니까 애들 어릴 때 많이 여행도 다니고 그래."
그 말을 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빨리 그날이 닥칠 줄은 몰랐다.
슬슬 나도 마음의 준비는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었지만 아이들이 저렇게 나오면 당황스러운 건 어쩔 수 없다.
그래, 언제까지고 끌어안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긴 하지.
딸이 주말에 친구들과의 친교활동을 시작하자 아들도 덩달아 기회를 엿보고 있는 중이다.
서운하다기보다 그냥 아이들이 이만큼 컸구나, 내가 그만큼 나이 먹은 거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정도다.
친엄마가 확실히 맞긴 하지만 난 어서 빨리 아이들이 자신들의 방으로 들어가기를 바라왔다.
나도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했으므로.
아이들과 집에 같이 있어도 좋지만 없어도 썩 나쁘진 않았으므로.
그리고 주말에 가족이 함께 움직이는 건 '아이들도 없이' 그 양반과 집 밖을 나간다는 건 전혀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혼자 나가고 싶을 지경이다. 그나마 아이들이라도 있으니 멤버 네 명이 다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언제 해체될지 모르는 가족이다.
이제 아이들이 각자 제 갈 길을 가는 건가?
그래도, 가족 모임에는 참석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며 살짝 내게만 유리하게 하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