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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Nov 23. 2024

엄마, 증거 있어?

증거가 어디있더라?

2024. 11. 22.

<사진 임자 = 글임자 >


"우리 아들, 오늘 학예회 잘했어? 우리 아들은 보나 마나 잘했겠지?"

"응. 잘했지."

"부모님들 많이 오셨어? 별로 안 오셨지?"

"아니, 그래도 많이 오셨던데? 꽃다발도 진짜 큰 걸로 사 오셨더라."

"꽃다발도 갖고 오셨어?"

"응. 학교 앞에서 팔았거든."

"그랬구나. 엄마 안 가서 혹시 서운했어?"

"아니, 괜찮아. 엄마 아프잖아."

"엄마도 갔으면 좋았을 텐데. 내년엔 꼭 가야겠다."

"아니야. 꼭 안 와도 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들 눈치를 보아하니 살짝 서운해하는 기색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다 끝나버린 일이었다.


"학예회 때 엄마 갈까?"

몇 주 전에 학예회에 참석 여부를 조사했었다.

가고 싶기도 하고 안 가고 싶기도 해서 아이들에게 물어봤었다.

"아니야, 엄마. 꼭 의무 아니니까 괜찮아."

하지만 그게 진심인지 어쩐 지는 나도 아리송했다.

당연히 오라고 할 줄 알았던 아들이 저렇게 나오자 아마 딸도 시큰둥할 거라고 혼자 지레 짐작하고 둘 다 참석하지 않겠다고 했다.

나중에 딸에게 물었다.

"합격아, 이번이 마지막 학예회인데 엄마 갈까?"

중학교에서 학예회를 한다는 말은 여태 들어 본 적이 없다,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이래로.

그래서 올해가 딸에게는 마지막이 될 테니 가능하면 가려고 했는데 아들의 반응을 보고 과감히 딸의 학예회 날에도 안 가도 괜찮겠다고 이미 다 결정하고 그냥 물어본 것뿐이었다. 그러나 딸의 대답은 놀라웠다.

"당연히 와야지, 엄마!"

어라? 내가 예상한 건 이게 아닌데?

이제 많이 컸으니까 괜찮다고 할 줄 알았다. 고학년이 될수록 부모님이 학교에 오는 걸 별로 안 반긴다고 들은 것 같은데 나 혼자만 착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번 공개 수업에도 갔으니까 학예회는 빠져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떡하지? 이미 안 가겠다고 제출해 버렸는데.


그리고 마침내 학예회날이 돌아왔다.

아들이 먼저고 딸은 다음날이었다.

아들도 4학년이라 부모님들이 거의 안 오실 거라고 난 또 혼자만 착각하고 있었다.

"엄마, OO 엄마는 꽃다발을 정말 큰 거 갖고 오셨고, OO 엄마는 마카롱 다발을 갖고 오셨고 또 OO 엄마는..."

아니, 이럴 수가!

엄마들이 그럴 줄 몰랐다.

아들 말로는 많이들 오셨다고 했다.

아들 말만 곧이곧대로 듣고 안 갔는데 갈 걸 그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번주 내내 내가 몸이 아파서 경황이 없기도 했다.

바로 다음날이 딸 차례인데 이를 어쩐담?

차도가 없어 계속 몸이 안 좋은 데 가 볼까? 그래도 마지막인데?

"합격아, 너 마지막 학예회 하는데 엄마 안 가도 괜찮아?"

"어쩔 수 없지. 엄마 아프잖아."

이렇게 아플 줄 예상도 못했지만 애초부터 나는 갈 마음이 없긴 했었다.

"간다고 안 했는데 가면 안 되는 건 아니겠지? 안 간다고 했어도 가도 되겠지?"

"되겠지."

딸은 그래도 은근히 내가 왔으면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결국 나는 가지 않았다.

하루 종일 자리보전을 하고 딸만 기다렸다.

"오늘 학예회 잘하고 왔어? 엄마가 못 봐서 아쉽다."

"응. 친구 부모님들이 다 꽃다발을 갖고 오셨더라."

"그랬어?"

"엄마는 나한테 꽃다발 한 번도 안 사줬는데."

느닷없이 불통이 나한테 튀었다.

"한 번은 사 줬겠지."

"안 사준 것 같은데?"

"아무리 그런다고 한 번도 안 사줬을까?"

"엄마가 꽃다발 사 줬다는 증거 있어? 사진이라도 있어?"

"있을... 걸?"

"그럼 증거를 줘 봐."

"찾아보면 있을 거야."

갑자기 딸이 증거를 내놓으라고 했다.

"다른 집 엄마들은 애들한테 꽃다발도 주던데 엄마는 꽃다발도 안 사주고."

그래도 언젠가 한 번은 사줬을 것 같은데(그러나 나는 자신 없다) 자꾸 딸이 저렇게 나오니 사 줬어도 안 사줬을 것 같다. 하지만 안 사줬어도 사줬어야만 한다.


사진이라도 어디서 나오면 좋으련만.

그러면 나는 딸에게 당당히 큰소리칠 수 있을 텐데...

그러나, 아무리 뒤져도 사진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안 사준 게 아닐 것이다.

사 줬지만 하필이면 사진을 안 찍었을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유치하지만 어린이집 다닐 때로 추정되는 사진 중에 꽃다발이 출연한 거라도 내놔야 할 판이다. 아무리 오래전 일이라도 증거 자료로는 그만큼 확실한 건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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