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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Nov 22. 2024

엄마한테 또 그런다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는 국민학교 다녔어?

"응."

"진짜 옛날 사람 맞네."

"국민학교 다니면 옛날 사람이야?"

"지금은 초등학교라고 하잖아. 옛날 사람들은 국민학교 다녔다며?"

"그래도 엄마는 오전 반 오후 반으로 나눠서 할 때 다닌 건 아니야."

"아무튼 옛날 사람 맞잖아."


옛날 사람이면 뭐 하고 요즘 사람이면 뭐 하려고 그러지?

내가 국민학교를 다니면 뭐 하고 초등학교를 다니면 뭐 한다고 걸핏하면 나의 과거를 들추는지 모르겠다.

가만 보면 딸은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하며 내가 발끈하는 모습에 재미가 들린 것 같았다.


또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뭘 배워서 저럴까?

수업 시간에 무슨 내용을 보았길래 이렇게 집에 와서 확인하려는 걸까?

가끔 딸은 뭔가 단단히 착각하는 것 같았다.

"너희는 정말 좋겠다. 날마다 학교에서 맛있는 급식 먹을 수 있잖아."

아침마다 급식 메뉴를 확인하고 진심으로 내가 그렇게 말하면 딸은 또 난생처음 들어 보는 소리라는 표정으로 이렇게 대꾸한다.

"엄마, 엄마는 학교 다닐 때 급식 안 먹었어? 학교에서 다 주잖아. 엄마, 초등학교 안 다녔어? 아, 맞다. 엄마는 옛날 사람이라 국민학교 다녔지."

이런 유치한 말도 내 앞에서 서슴지 않는다.

"엄마가 학교를 왜 안 다녀? 엄마는 거의 40년 전에 유치원도 다닌 사람이야. 외삼촌들 세 명은 아무도 안 다닌 병설 유치원에 엄마만 다녔다고! 엄마 병설 유치원 나온 사람이야."

'영어 유치원'도 아니고(하긴 그 옛날 그 시골에서 나는 '영어 유치원'이란 게 있는 줄도 모르고 살긴 했었다.) 작은 시골 학교의 자랑스러운 병설 유치원 출신임을 분명히 짚고 넘어갔다.

그리고 살짝 어이가 없긴 하지만 눈 질끈 감고 나는 또 딸에게 이실직고를 해야만 한다.

또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옛날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엄마 학교 다닐 때는 급식이 없었어. 날마다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어. 도시락 싸는 게 보통 일이 아닌데 말이야."

"정말 급식을 안 먹었어?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다고?"

"그래. 지금 어쩌다 한 번씩 너희 도시락 싸는 것도 쉬운 게 아닌데 날마다 외할머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루에 네 개가 기본이었을 거 아니야."

"그게 더 좋은 거 아니야? 그러면 집에서 맛있는 것만 싸서 가져갈 수 있잖아. 학교에서 급식 먹으면 싫어하는 것도 억지로 받아야 하는데."

"합격이 네가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같다. 그게 네 생각처럼 되는 줄 알아? 우리가 먹고 싶다고 해서 그것만 반찬으로 싸 갈 수 있었던 게 아니라니까. 외할머니가 싸 주시는 대로 그냥 가져갔지. 어떻게 자식들 네 명이 먹고 싶은 대로 다 맞춰서 쌀 수 있겠어. 그게 보통 일이 아닌데. 그것도 일주일 내내 말이야."

"그렇긴 하겠다."

"그래. 그래도 친구들이랑 모여서 같이 밥 먹으면 다들 다른 반찬 싸 오니까 남의 집 반찬도 먹어 볼 수 있고 그건 좋았지. 오늘은 친구들이 무슨 맛있는 반찬을 싸 왔을까 기대하면서 말이야. 요즘 너희는 아침마다 급식 메뉴가 알림으로 와서 다 알고 학교에 가잖아. 엄마 학교 다닐 땐 도시락 임자도 무슨 반찬이 들어 있는지 잘 몰랐어, 열어 봐야 알지. 물론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먹어 본 기억이 거의 없긴 하지만 말이야."

"점심시간에 안 먹으면 언제 먹었는데?"

"일단 1교시나 2교시 끝나면 1차로 먹고, 오후에는 3시 넘어서 먹었던 것 같은데. 고등학교 다닐 때는 도시락을 저녁까지 두 개씩 싸가지고 다녔거든."

"그렇게 아무 때나 도시락 먹어도 돼?"

"배고프니까 먹었지. 꼭 시간 맞춰서 밥 먹으란 법은 없잖아."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1,2 교시가 끝나면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순식간에 도시락을 비워버리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도시락 까먹는다'라고 한다지 아마?

교복 치마 안에 체육복 바지를 굳이 또 입고 조신하게 모여 앉아 허겁지겁 도시락을 흡입하던 그 시절의 청순한 소녀들, 자고로 한 번도 도시락을 까먹지 않은 소녀는 있을지언정, 한 번만 도시락을 까먹은 소녀는 없었다.(고 나는 굳게 믿는다. 적어도 나의 무리들은 그러하였다.)

"학생이 그래도 돼? 정해진 시간에 먹어야지."

가끔 딸은 너무 곧이곧대로다. 융통성이란 걸 모른다. 하지만 이런 내 딸도 머지않아 교복 치마 안에 체육복 바지를 껴 입고 학교 담장을 넘을지도 모른다.

"학생이니까 그랬지. 생각해 보면 그때가 정말 좋았는데. 친구들 반찬이 정말 맛있었어. 아직도 생각 나."

나 혼자만 추억에 감겨 있는 사이 갑자기 딸이 제 동생과 아빠를 급히 찾았다.

"야, 너 그거 알아? 엄마는 학교 급식 안 먹었대. 날마다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대. 세상에!"

"아빠, 아빠! 엄마가 옛날에 도시락 싸가지고 다녔던 거 아빠도 알고 있었어? 학교에서 급식을 안 줬대."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그러나 이내 딸은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학교  급식을 시작한 지가 언젠데 그것도 안 먹고. 역시 엄마는 옛날 사람이 맞았어!"


옛날 사람이면 어떻고 요즘 사람이면 어떠랴.

내게 중요한 건 그 옛날 친구들과 함께 했던 많은 시간들, 자꾸 떠올려도 지겹지 않은 기억들, 잡히지 않아 더 애틋한 그 시절의 모든 것이다.

옛날에 우리는 얼마나 좋았던가.

옛날에 우리는 얼마나 풋풋했던가.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아보면 정말 좋았던 시절.

옛날이 좋았어, 옛날이.

이런, 

또 옛날 사람 같은 소리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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