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때는 (나만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초등학생이 PC방 간다는 건 상상도 못 했었는데. 대학교 때도 숙제하러 PC방 간 거지 놀러 간 건 아니었어."
"숙제를 왜 거기서 해?"
"집에 컴퓨터는 있었는데 프린터가 없었거든. 그래서 출력하려고 가끔씩 갔었지."
"PC방에서 그런 것도 해?"
"그럼. 엄마는 그런 목적으로만 다녔어. 가서 게임을 한다거나 놀고 그러진 않았어. 일단 담배 냄새가 심하고 공기가 너무 안 좋았거든. 엄마가 그런 거에 민감하잖아."
"PC방 가면 놀아야지. 맛있는 것도 먹고."
"근데 PC방 가서 뭐 할 건데?"
"게임하지, 친구들이랑. 그리고 음식도 먹고."
"거기 공기도 안 좋을 텐데..."
여기까지 잠자코 듣고만 있던 그 양반이 마침내 출동하셨다.
"요즘은 PC방도 관리 잘 돼서 공기 괜찮아. 금연시설이고. 옛날같이 그렇게 안 좋진 않아."
왕년에 PC방 좀 왕래하셨나 보다.
제 아빠의 증거자료 제출에 딸은 신이 나서 더 밀어붙였다.
"거봐 엄마. 요즘 PC방이 옛날 PC방인 줄 알아?"
"엄마 다닐 때는 정말 공기도 안 좋고 좀 불량한(?) 애들이 와서 죽치고 앉아서 놀고 게임하고 그랬던 것 같은데, 담배 마구 피우면서."
"에이, 엄마는 언제 적 얘기를 하는 거야. 요즘은 안 그런다니까."
하긴, 내가 그 신성한 곳에 발길을 끊은 지가 20년도 넘었으니까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모를 수밖에.
내 기억에 PC방이란 곳은(그렇다고 무작정 PC방이 안 좋다고 단정 짓는 것은 아님을 전국의 PC방 관계자 여러분께 고합니다.) 왠지 어두운 곳,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곳, 어린 학생들이 발을 들여서는 안 될 곳 같은 그런 장소로 인식되는 것은 나도 어쩔 수 없다.
그런데 그런 곳에 딸이 가겠다니, 고작 6학년 짜리가, 게임씩이나 하겠다니, 게다가 뭐라고? 음식도 먹겠다고?
어쨌든, 딸은 갔다, PC방씩이나.
"근데 거기서 음식은 어떻게 먹어?"
PC방에 가서 출력만 하고 볼일만 딱 보고 빠져나오는 게 전부였던 그 시절의 나는 거기서 음식을 먹는 줄은 전혀 몰랐다. 물론 컵라면이나 간단한 과자가 있다는 것 정도는 풍문으로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말이다.
참고로 나는 편의점도 서른이 훌쩍 넘어서 가봤다. 시골에서 살았던 것과 군것질을 거의 하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갈 일이 없었다. 그래서 마흔 중반이 된 올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는 신기한 체험도 다 해봤다.
학교, 집, 그 외에는 경로를 이탈한 적도 거의 없는 그런 학생이었다.
옆에서 보기엔 답답해 보일 만큼 말이다. 약간 모범생 스타일이었다고나 할까? 물론 성적은 빼고 말이다. 그리고 짐작했겠지만 모범생도 아니었다 물론..
"하여튼 엄마는 진짜 옛날 사람이라니까. 거기에 맛있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데?"
"거기에 있어봤자 얼마나 있다고? 그리고 어떻게 사 먹는다는 거야?"
"주문하면 돼."
"어떻게? 주인한테 가서 말하고 돈 내면 돼?"
아니 이게 무슨 옛날 점방에 가서 건빵 사 먹는 소리란 말인가.
"아휴, 정말 엄마는 그것도 모르네. 그냥 자리에 앉아서 하면 돼."
"거기 앉아서 어떻게 주문을 한다는 거야?"
"내가 알려줄게. 잘 들어봐. 컴퓨터 화면에 다 있어. 거기서 주문하는 거야."
세상에, 만상에!
그런 거였어?
가봤어야 알지.
"안 되겠어. 내가 나중에 엄마 PC방 가서 가르쳐줘야겠어."
"아니. 난 PC방 안 가도 돼. 갈 일도 없을 것 같고."
"엄마는 정말 너무 몰라."
"엄마가 꼭 다 알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 관심이 없는데 어떡해 그럼?"
10년이면 강산이 변하고 20년이면 PC방도 변하는 거였구나.
그래도 나는 자꾸 비행 그 생각만 난다.
어두침침한 실내, 뿌옇고 흐릿한 시야, 자욱한 담배 연기, (물론 내 눈에만)껄렁거리는 (물론 편견에 휩싸인 내 눈에만 비행 청소년들로 보이는) 철없고 어린 거친 말투의 학생들...